기대와 공포, 반전과 성장 이야기
요즘 영국에서 교사나 보조 교사 구하기가 힘들어서, 보조 교사에게 요구되는 NVQ 레벨 3 자격증보다 봉사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나는 아이를 맡길 사람이 없어서, 아이 학교에 갔다 하교하기 전에 집에 올 수 있고 방학에는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보조 교사 일이 정말 딱 맞겠다 싶었다.
친구에게 소개받은 교육 관련 에이전시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보내니 바로 인터뷰 제의가 왔다.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다면 구글에 teaching agency near me로 검색해서 후기가 좋은 에이전시 몇 곳에 연락하면 된다.
이력서는 보통 추천인 두 명을 요구하는데, 전문직이나 상사,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가 좋다. 특히 추천인의 이메일 주소는 회사나 기관 이메일이어야 하고 개인 이메일을 주면 다시 달라고 요구를 받게 되니 주의해야 한다. 내 경우 오랫동안 다녔던 교회에서 주일학교 봉사를 같이했던 의사인 헤이젤과 주일학교 담당자인 릴리에게 추천서를 부탁했다. 주일학교 봉사 경험도 아이들 가르친 경력으로 이력서에 쓸 수 있어 좋았다.
인터뷰에서는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다. 어떤 사람인지, 어떤 곳에서 일하고 싶은지 등을 물어봤고 내 경우 중고등학생처럼 큰 아이들은 조금 부담스러워서 초등학교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에 합격하면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할 때 필수적인 범죄 경력 조회(DBS)를 해야 한다. 그리고 내 이력서에 아이를 낳고 일하지 않은 시간 동안에 뭘 했는지 다시 써달라고 해서 start a family처럼 간단하게 적어서 다시 제출했다. 영국에서는 이력서에 공백이 있으면 직업윤리나 능력에 대한 의심을 받기 때문에,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적어서 채워 넣는 게 좋다고 했다. 내 추천인 중 한 명이 에이전시에서 보낸 이메일 확인을 늦게 하는 바람에 추천서 제출이 늦어져 4월부터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에이전시에 속하면 에이전시에서 하루, 이틀 전쯤에 A라는 학교에 가서 일해줄 수 있겠냐고 연락이 오기도 하고 더 많게는 당일 아침 7시쯤 연락이 와서 B라는 학교에 가 줄 수 있겠냐고 연락이 온다. 이 경우는 대체로 누가 갑자기 아파서 못 나오는 경우이기 때문에 미리 알 수 없지만 나는 갑자기 가라고 하면 딸 학교 보내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당일에 연락이 오면 못 갈 때가 더 많았다.
초기에는 이렇게 당일치기로 가는 걸 해서 동네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도 갔고 기차 타고 가야 하는 곳도 갔는데 학교마다 분위기도 다르고 아이들 면학 분위기도 동네마다 차이가 많은 것도 알게 됐다. 그러다 동네 근처에 있는 학교에서 오래 일 할 수 있는 1:1 보조교사를 원한다고 혹시 할 수 있는지 에이전시에서 물어봐서 당연히 근처니 걸어 다닐 수 있어 좋다고 하고 갔는데 첫날 무척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에이전시에서는 단순히 '잘 걷지 못하는 리셉션 여자 아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제로 만난 아이는 체격이 거의 3학년 수준으로 크고 배변을 가리지 못하는 등 예상보다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 아이는 walker라는 보조 기구를 쓰고 걷고 있었는데 방향 감각, 평형 감각도 덜 발달해서 자주 넘어지기도 했고 기저귀도 차고 있어 첫날부터 기저귀를 갈아줘야 했다. 아이가 영어도 못 알아듣고 못 해서 정말 당황했는데 아마 예전 같았다면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싶어서 바로 그만두고 나왔겠지만 나는 생활비도 벌어야 했고 이거 아니면 할 게 없다는 생각도 있어서 어떻게든 잘 버텨보자고 했다 (에이전시에서 보조 교사 일당으로 약 70파운드를 줬다).
내가 맡은 아나야는 앞서 서술한 대로 의사소통이 어렵고 행동이 거칠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리 지르면서 워커로 막 걷다가 넘어져서 다쳐 우는 아이였다. 첫날 아나야가 똥을 싸서 기저귀를 갈아주는데 체격이 큰 아이라 양도 많고 냄새도 고약해서 정말 울고 싶었다. 영국에서는 아이 뒤처리를 해주지 않지만 이렇게 신체적인 문제가 있는 아이의 경우는 어른들이 해줘야 하는데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절대 혼자 하지 않고 두 명이 같이 있어야 한다. 아마 나 혼자 해야 했다면 못한다고 도망 나왔을 것 같다. 다행히 학교에 있던 사람들 모두 나를 동정해 줬고 내가 열심히 한다고 고마워했다. 내가 그만둔다면 자기들이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만두지 말라고 옆에서 많이 도와주면서 칭찬도 해주고 해서 포기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절박한 현실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했다가 천천히 아나야와 친밀감도 쌓으면서 내가 맡은 아이가 영어도 잘했으면 싶어 시간 날 때마다 데리고 영어 알파벳도 가르쳐주고 포닉스도 같이 했다. 더하기, 빼기 같은 것도 하고 그림 그리기도 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모래 놀이터에도 데리고 가서 같이 놀고 하다 보니 일 년이 끝날 무렵에는 아나야가 놀라운 성장을 이루었다. 영어로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졌고, 기저귀도 떼서 혼자 화장실 가서 일처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들 내가 정말 잘해서 그렇다고 엄청 칭찬해 줬고 에이전시에도 내 칭찬이 많이 들어가서 그다음 해에는 같은 학교의 class TA로 일하게 되었다.
다시 리셉션에서 일하게 됐는데 전 해에 같이 일했던 선생님들과 보조 교사들이 그대로 있어서 많이 친하게 지내면서 우리 반 담임인 Hannah가 수업할 때 수월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하나와 나는 2년을 같이 교사와 보조 교사로 일해서 나중에는 눈빛만 봐도 뭘 원하는지 아는 사이가 됐다. 아이들 책 읽는 것도 매일 봐주고 학습이 느린 아이들은 포커스 그룹으로 좀 더 연습하고 하다 보니 아이들과 더 가까워졌다. 학교에서 일하다 보니 학부모로서 느꼈던 학교와 교직원으로 느끼는 학교의 차이도 많이 보이면서 학교에 불평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리셉션이나 널서리는 아직 어린아이들을 가르치기 때문에 놀면서 배우는 시기라 교사와 보조 교사들이 같이 이야기하면서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TA들의 근무 시간이 짧아 (계약상 8:20부터 3:10까지였다) 교사들은 업무 부담을 호소했고, TA들은 낮은 급여와 과중한 업무에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학교에는 의료진, 경찰, 교사 등의 key worker 자녀들과 학대나 방임의 위험에 노출된 아이나 특수 교육이 필요한 vulnerable children만 오게 됐다. 다들 처음 겪는 팬데믹이어서 겁도 많이 나고 앞으로 어떻게 될까에 대한 불안감이 많던 시기여서 그런지 서로 의지하면서 더 유대감이 깊어진 시기이기도 했다. 리셉션은 총 4반이 있었는데 록다운과 함께 2반으로 줄였고 총 20-30명 정도의 아이들만 와서 수업도 커리큘럼대로 하지 못한 시간이었다. 교사도 일주일에 한 번 로타를 정해서 왔고 TA들도 일주에 3, 4번 정도 로타를 정해서 나왔다. 그러다 보니 교사 한 명에 TA 세 명, 총 네 명이 두 반으로 나뉘어 교사처럼 수업을 해야 하는 일도 왕왕 생겨서 교사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TA들은 teaching staff가 아닌 support staff, 보조 인력으로 분류되어 교사와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교사는 교육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학생들의 학습을 이끌고, 교육 과정을 설계하는 책임을 지는 반면, TA는 교사의 지도 아래 학생들을 지원하고 수업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TA들이 교사와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아, 상대적으로 낮은 처우와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이 컸다. 특히, 교사들이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TA들에게 감사를 표하지만, 비공개적으로는 무시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종종 목격하면서 더욱 큰 박탈감을 느꼈다. 이러한 경험은 처음엔 '나도 해보자, 교사!'라는 오기도 생기게 했고 나아가 교육 현장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싶다는 욕구를 키웠다.
보이지 않지만 변화를 만드는 1:1 보조 교사
영국에서 1:1 지원이 필요한 아이들은 보통 행동 문제, 의사소통 문제나 신체적 어려움을 가진 경우가 많아, 보조 교사에게는 상당한 체력과 정신력이 요구된다. 실제로 많은 1:1 보조 교사들이 힘든 업무에 지쳐 오래가지 않아 그만두는 경우도 자주 보았다.
내가 맡았던 아나야는 발달이 늦고 제대로 걷지 못하는 문제도 있었지만 배변 훈련이 필요한 아이였다. 매일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은 쉽지 않았고 냄새와 위생 문제로 힘든 순간도 많았다. 내가 기저귀 갈아줄 때 옆에서 함께 있어야 하는 보조 교사들 중 아이 기저귀를 보고 구토를 한 보조 교사들도 몇 있었다. 내 경우 감사하게도 딸을 키우며 익숙해져서 그런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아나야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아나야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했다. 배변 훈련을 놀이처럼 진행하며 아나야가 화장실 사용하는 것이 어렵지 않도록 했고 자주 화장실 가고 싶지 않은지 물어서 혼자 뒤처리까지 하는 걸 연습하도록 했다. 내가 화장실 가면 너무 좋아하고 칭찬해 주니까 나중에는 화장실 가고 싶지 않으면서도 화장실 가고 싶다고 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이렇게 하다 결국 배변 훈련에 성공했을 때의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부모님조차 기대하지 않았던 성공이어서 그 이후로 부모님이 자기 딸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고 학교에서 하는 교육을 좀 더 믿고 지지해 주게 되었다. 이 경험은 단순히 아이를 돌보는 것을 넘어, 아이들의 성장을 돕고 가족에게 희망을 주는 사명감을 가지고 임해야 하는 직업임을 깨닫게 해 주었다.
요즘은 학교 재정이 부족해서 클래스 TA는 줄이고 1:1 TA를 늘려가는 추세라고 한다. 물어뜯는 아이, 욕하는 아이, 도망다니는 아이, 똥오줌 못 가리는 아이, 말 안 하는 아이 등 다양한 아이들을 맡게 될 텐데, 보조 교사를 꿈꾼다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수고도 있고 울고 싶은 힘든 순간도 있겠지만, 아이들의 성장을 함께하며 작은 관심과 노력으로도 아이들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