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영국에 오신 분들은 종종 이렇게 말씀하시곤 합니다.
“아니, 왜 아이들이 이렇게 일찍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나요?”
“영국은 숙제가 별로 없네요!”
또 어떤 분들은 정반대로, “과목도 많고 행사나 이벤트가 너무 많아서 정신없다”라고 하시기도 해요.
오늘은 영국 초등학교의 과목과 교육 방식을 중심으로, 실제 학교 현장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습까지 함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영국의 초등 교육이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 '놀이를 통한 학습'과 '자기 주도적 탐구'를 어떻게 중시하는지 함께 알아보시죠.
영국 교육의 핵심: 자기 주도적 학습
영국 초등학교는 단순히 교과 지식을 주입하는 대신, 아이들이 스스로 배우는 즐거움을 발견하도록 돕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바로 '자기 주도적 학습(Self-directed Learning)'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죠. 이것은 교사가 정해준 답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왜, 어떻게 배울지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며, 평가하는 전반적인 과정을 의미합니다. 놀이 중심의 교육, 풍부한 프로젝트 숙제, 그리고 정해진 답이 없는 질문과 토론 수업은 모두 아이들이 능동적인 학습자로 성장하도록 돕는 장치입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지식을 얻는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평생에 걸쳐 배움의 주체가 되는 힘을 기르게 됩니다.
한국은 만 6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하지만, 영국은 만 4세가 되는 해에 학교에 들어갑니다. 다만 이 시기의 Reception 학년은 초등학교라기보다는 ‘놀이 중심 유치원’에 더 가깝습니다.
그보다 더 어린 나이에 Nursery(만 3세 전후)에 다니기도 하는데, 영국 학교에서는 Reception부터 본격적인 학교 생활이 시작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Nursery와 Reception을 합쳐 EYFS (Early Years Foundation Stage)라고 부르며, 이 시기는 말 그대로 learning through play(놀이로 배우는 시기)입니다. 파닉스나 기초 수 세기도 배우지만, 무엇보다도 학교라는 공간에 적응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예를 들어, 교실 한쪽에서는 블록 놀이를 하면서 수학 개념을 배우고, 다른 쪽에서는 역할극 코너에서 친구와 대화하며 언어 능력을 키우는 식이에요. 이렇게 Year 1(만 5세)로 올라가면 비로소 ‘공식적인 학습’이 시작됩니다.
차이점: 한국은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뚜렷하게 구분되지만, 영국은 두 단계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그래서 Year 1 초반에는 갑자기 카펫에 앉아 배우는 시간이 길어져서 힘들다고 우는 아이들이 많지만, 금세 적응하고 학교를 즐기기 시작합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힘들어 보일 때 “너무 잘하고 있어”라며 안아 주고 격려하는 게 큰 힘이 됩니다.
영국의 하루는 크게 Core Subjects(핵심 과목)과 Wider Curriculum(심화 과목)으로 나뉩니다. 저는 2학년 교사라 2학년 아이들이 배우는 과목 위주로 설명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영어(English): 글쓰기, 말하기, 읽기를 통합적으로 배우며, 파닉스를 통해 읽기 능력을 기초부터 다집니다.
수학(Maths): 단순 연산보다 문제 해결력과 수학적 사고에 초점을 둡니다.
과학(Science): 실험과 탐구 중심.
역사·지리(History & Geography): 교과서를 넘어 이야기와 프로젝트 기반 학습. 보통 한 학기씩 번갈아 가면서 배웁니다.
컴퓨팅(Computing): 단순 컴퓨터 사용을 넘어 코딩까지. 제가 일하는 학교는 구글 레퍼런스 학교라 아이들에게 크롬북이 하나씩 지급되어 컴퓨터 관련 수업도 자주 하고 다른 과목들 액티비티도 온라인 플랫폼에 많이 올려서 하게 해서 온라인 안전에 대한 내용도 수업 중에 하고 있습니다.
예체능(PE, Music, Art, DT)과 종교 교육 (RE): 균형 잡힌 발달을 위한 교육으로 미술과 디자인 기술 역시 한 학기씩 번갈아 가면서 하고 있습니다.
PSHE와 Financial Literacy: 감정 관리, 사회성, 금융 문해력까지 다루는 실생활 교육.
오후에는 짧게 리딩, 문법, 수학 연산 훈련을 10–20분씩 매일 하기도 합니다.
차이점: 한국은 하루 종일 국어·수학·사회·과학 같은 교과 중심 수업이 이어지지만, 영국은 오전은 집중 학습 / 오후는 경험·탐구형 학습으로 나누어 균형을 맞춥니다.
영국 초등학교는 Key Stage라는 단위로 교육 과정을 나눕니다.
Key Stage 1 (Year 1–2): 기초 읽기·쓰기, 수학의 기반 다지기.
Key Stage 2 (Year 3–6): 제2 외국어(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수영 등이 정규 과목으로 편성되어 배우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학교는 Year 3부터 프랑스어를 시작하고, 어떤 학교는 Year 5부터 시작하기도 합니다. 수영 역시 학교마다 시기가 달라요.
차이점: 한국은 3학년부터 사회·과학·역사·실과 등 과목이 급격히 늘어나며 교과 중심으로 전환됩니다. 반면 영국은 조금 더 완만하게 과목을 확장해 나가면서 ‘흥미’와 ‘탐구 경험’을 중시합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파닉스 수업은 줄어들고 문해력으로 수업의 초점이 바뀝니다.
영국 초등학교는 숙제가 많지 않습니다. 대신 질(質)을 강조하지요. 아이가 학습을 즐기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매일 독서: 가장 중요한 숙제. 부모와 함께 책을 읽고 ‘리딩 레코드’에 기록합니다. 부모님이 매일 날짜, 읽은 책 제목 그리고 짧은 코멘트를 남겨 주시면 되는데 아이가 읽을 때 아래와 같은 질문을 하며 이해를 도울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누구야?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아 (prediction)?
이 인물은 왜 이렇게 했을까? 이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을 것 같아 (inference)?
이 책 읽으면서 비슷한 내용의 책 읽은 거 생각나는 거 있니 (connection)?
프로젝트 숙제: 역사·과학 등은 포스터, 모형 만들기, 발표 등 창의적 과제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런던 대화재에 대해 배운다면 당시 집 모양을 만들어 온다든지 특정 동물에 대해 배운다면 포스터를 만들어 보게 한다든지 하는 식이에요. 완성된 프로젝트는 사진을 찍어 학교에 공유하거나 직접 가지고 와서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을 장려해요. 이렇게 함으로 아이들의 성취감이 높아지고 자신감이 키워지기 때문에 중요한 경험이 됩니다.
차이점: 한국은 매일 수학·국어 문제집을 풀고 받아쓰기·단어 시험이 많지만, 영국은 ‘학습을 즐기는 과정’과 ‘자기 주도적 탐구’를 더 중시합니다.
영국은 학부모의 권리와 학생의 안전을 중요시합니다.
Opt-out 가능: 종교 교육(RE), 성교육(RSE). 무슬림 가정 중에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등의 교회 행사에 참석하지 않기를 원한다면 학교에 요청해서 해당 행사에 참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Opt-out 불가: 과학 수업의 인체 단원 (필수). 성교육이 포함된 PSHE 수업은 선택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수 있지만, 과학 시간에 배우는 인체의 생물학적 특성은 모든 학생이 필수적으로 배워야 하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사진·개인정보 동의서: 입학할 때나 학기 초에 학교에서 '자녀의 사진을 찍는 것에 동의하는가'에 대한 동의서를 받는데 이는 개인정보보호법 (GDPR)을 준수하기 위한 절차입니다. 아이들의 사진이 학교 홈페이지, 뉴스레터 또는 SNS등에 사용될 수 있는데 부모님이 동의하지 않으면 아이의 얼굴이 나온 사진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습니다.
차이점: 한국에서는 학교 교육 과정 참여 여부를 부모가 선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지만, 영국은 가정의 가치관을 존중하는 장치가 제도적으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영국 학교는 공부만이 아니라, 다양한 학교 문화를 통해 아이들의 사회성·창의성을 키웁니다. 아래 간단히 몇 가지만 소개합니다.
World Book Day: 책 주인공으로 분장하고 책을 즐기는 날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해리포터, 마틸다, 캣 인 더 햇 등 다양한 캐릭터로 꾸밉니다.
Red Nose Day: 코믹한 빨간 코를 달고 기부 활동을 즐겁게 실천하는 날
Mufti Day: 교복 대신 사복을 입고 오는 날, 보통 기부와 함께 진행.
차이점: 한국 학교는 축제·체육대회 같은 큰 행사 중심이라면, 영국은 소규모·다양한 이벤트가 잦아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경험이 쌓입니다.
영국의 모든 공립학교는 내셔널 커리큘럼을 따릅니다. 다만 ‘무엇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가르칠지’는 학교마다 자율성이 주어져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학교 홈페이지의 Curriculum Map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학년별 주제와 학습 목표가 공개되어 있어, 부모님도 자녀의 학습 흐름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올해 Year 2에서는 Great Fire of London을 배우고, 내년에는 Ancient Egypt를 배운다”는 식으로 공개되기 때문에 미리 준비하거나 가정에서 연계 학습을 하기도 편리합니다.
교사들은 학교에서 정한 계획을 기반으로 반별 시간표를 만들고 수업을 진행합니다. 주요 과목은 교육부 지침에 따라가지만, 수업 운영 방식과 부가 활동은 학교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관심 있으시다면 직접 커리큘럼을 찾아보시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