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교육의 핵심, 내셔널 커리큘럼

영국의 내셔널 커리큘럼, 부모라면 꼭 알아야 할 이야기

한국에서 오신 부모님들과 대화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왜 교과서가 없어요?”

“학교마다 배우는 게 다르다던데, 정말인가요?”

처음 영국 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느낄 수 있는 막막함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히 ‘영국은 원래 그래요’가 아니다. 이는 영국 교육의 근본 철학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가 된다. 영국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따르는 내셔널 커리큘럼(National Curriculum)은 한국처럼 교과서로 딱 정해져 있지 않다. 국가가 “무엇을 배워야 한다”는 기준은 세워주지만, “어떻게 가르칠지”는 학교와 교사의 몫으로 남겨 두기 때문이다. 이는 영국 교육이 추구하는 ‘자율성(autonomy)과 전문성(professionalism)’이라는 가치의 핵심이다.

내셔널 커리큘럼(National Curriculum)의 시작과 철학

이 제도는 1988년에 처음 도입되었다. 그전에는 학교마다 교육과정이 천차만별이어서 같은 나이에 같은 지역에 살아도 어떤 아이는 과학을 배우고 어떤 아이는 전혀 배우지 못하는 식이었다. 이런 지역적·계층적 격차를 줄이고, 전국적으로 최소한의 공통 기준을 보장하기 위해 내셔널 커리큘럼이 탄생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통일된 교육'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 "broad and balanced" (폭넓고 균형 잡힌) 교육을 모든 아이들에게 제공하려는 영국 교육의 근본적인 철학을 담고 있다. 이 커리큘럼은 단순히 지식 전달뿐 아니라, 아이들이 비판적 사고, 창의성,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는 데 중점을 둔다.

내셔널 커리큘럼의 구성: Key Stage를 이해하자

영국의 내셔널 커리큘럼은 학년 대신 Key Stage(키 스테이지)라는 단위로 구분된다. 이는 단순히 나이로 교육 단계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기 동안 아이들이 달성해야 할 학습 목표를 명확히 제시한다.

EYFS (Early Years Foundation Stage): Nursery (만 3~4세)와 Reception 학년 (만 4~5세). 읽기, 쓰기, 수학 등 기본기를 놀이를 통해 배운다.

Key Stage 1: Year 1 & 2 (만 5~7세). 초등학교 저학년 과정으로, 기초 문해력과 수리력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Key Stage 2: Year 3~6 (만 7~11세). 초등학교 고학년 과정으로, 과목별 심화 학습이 이루어진다.

각 Key Stage의 끝에는 교사와 학생 모두 그 시기의 학습 목표를 잘 달성했는지 평가한다. 이처럼 큰 틀의 목표를 설정해 두고, 각 학교가 학생의 수준과 특성에 맞게 세부적인 내용을 구성하는 것이다.

자꾸 달라지는 이유: 교육 정책과 시대적 요구

내셔널 커리큘럼은 한 번 만들어진 뒤 그대로 유지된 적이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 방향도 달라진다. 보수당 정부는 파닉스 의무화, 전통적 문법 교육 강화 등 기초 학습과 전통적인 과목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노동당 정부는 창의적 커리큘럼(creative curriculum)을 강조하며 예술과 인문 교육을 확대하는 데 무게를 뒀다. 그래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커리큘럼도 조정되곤 한다.

또, 큰 틀의 개정이 아니더라도 매해 9월 새 학기가 시작되면 소소한 변화들이 뒤따른다. 예를 들어 SATs 평가 방식이 바뀌거나, 특정 학년에 새로운 단원이 추가되기도 한다. 교사들은 이런 내용을 새 학기 시작 전 INSET Day(교사 연수일)에 모여 함께 공부한다. 다들 9월이 되면 '올해는 또 어떤 변화가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연수에 참여하곤 한다. 그리고 내년에도 바뀔 텐데 굳이 깊이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교사들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