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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 김 Feb 23. 2022

이과생 엄마의 베드타임 스토리

매일 밤 이야기를 들려주던 세헤라자데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한국에서 아이를 재우기 전 딱 붙어 앉아 책을 두세 권 읽어 주곤 했다. 

대체로 아이는 하나도 안 졸리다며 더 읽어 달라고 조르고 나는 빨리 재우고 싶어 이 정도면 됐다며 티격태격 타협을 하는 것이 매일의 일과였다. 가끔 내가 너무 졸린 날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반수면 상태에서 아무 말 대잔치를 하고 있을 때도 있었고 아주 어쩌다가 한 번씩은 책 읽는 중에 아이가 먼저 잠들기도 했다.

6년 동안 매일 반복하는 과정에서 나의 그림책 읽기 실력도 조금 늘었는지 아이는 ‘엄마가 읽어주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며 아빠보다는 내가 읽어주기를 원했다. 아이가 커 갈수록 글밥이 점점 늘어 세 권 읽기가 버거운 적도 있고, 의무감에 기계적으로 글자만 읽었던 날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는 나도 말랑말랑한 아이를 품에 끼고 기분좋은 냄새를 맡으며 책을 읽는 이 시간을 상당히 즐겼던 것 같다. 각자 하루종일 어린이집에서/직장에서 부대끼고 얻은 피로감을 풀고 서로 간에 있었을지 모르는 하루치의 ‘버럭’을 사과하고 화해하는 시간이었다. 혹시나 아이가 불편한 마음을 잠자리까지 끌고 가지 않도록.


어쩌다 내가 아프거나 너무 피곤한 날은 아빠한테 역할을 넘겼다. 남편은 때로는 고의로 건성으로 읽어 준다는 의심이 들게 한 적도 있고, 때로는 진심을 다해 열심히 하려 한 것 같기도 한데 하여튼 아이는 아빠가 읽어주는 책은 재미가 없다 했다. 어쩌다 내가 도저히 책을 읽어 줄 형편이 안 되는 것 같으면 아빠한테 그냥 재미난 이야기나 들려 달라고 했다. 그러면 남편은 불을 끄고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 들려주었다. (아주 좋게 비유해 주자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장르라고 할 수 있을까? 대체로 말도 안 되고 개연성도 없고 생각나는 대로 마구 흘러가는 이야기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자기들끼리 까르르 하며 이야기를 하고 나는 옆에서 어이없어하며 대체로 먼저 잠들어 버린다.




그런데 영국에 오면서 한글 책을 많이 가져올 수가 없었다. 기껏해야 1년 정도를 생각하고 온 것이고 짐도 선박 편이 아니라 항공편에 최소한으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태블릿으로 보는 북클럽까지 가입하고 가져와 봤지만, 태블릿으로 보는 책은 질감이나 시각적으로나 정이 안 간다. 

그렇다고 아이 재우는 일을 남편에게 전적으로 미룰 수도 없다. 여기서는 아이를 케어하는 부분의 무게추가 한국에서보다 훨씬 더 내 쪽으로 기울어 있다. 한국에서는 똑같이 9시부터 18시까지 근무해야 하는 맞벌이 부부였지만 여기서는 내가 일을 쉬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도 나에게 더 들러붙고, 남편도 당연히 내 일로 생각하는 분위기다.


아이는 잠들기 전에 내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한다. 그런데 이럴 수가. 기억나는 이야기가 없어도 너무 없다. 

콩쥐팥쥐, 흥부놀부, 선녀와 나무꾼 같은 고전적 한국 옛날이야기와 해님과 바람, 신 포도 여우 이야기 같은 기억나는 이솝 우화를 들려줘 보았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들려주던 옛날이야기를 해 주면서 새삼스럽게 내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다. 남녀차별, 인권 파괴, 아동학대, 성폭력 등 시대착오적인 가치관은 물론이거나 심지어는 범죄적인 요소도 많고 밑도 끝도 없는 권선징악 플롯도 마음에 안 든다. 이솝 우화, 아라비안 나이트나 명작 고전처럼 줄줄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스토리가 있으면 좋으련만. 디테일이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내 뇌는 항상 어떤 스토리든 핵심 구조만 남기고 디테일은 모두 삭제해 버리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그렇다고 내게 디테일을 순간순간 살려낼 정도의 말재간이 있지도 않다. 논리적인 자기 검열이 심해 아이 아빠처럼 상상의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도 안 된다. 



아, 나라는 인간의 무미건조함이여. 

한탄과 고민을 하다가, 그냥 이과생 엄마인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 주기 시작했다. 과학 이야기였다. 

진화 이야기, 인체 구조와 장기기관, 골격 구조, 뇌의 진화와 현대 뇌과학에 대한 이야기, 식물의 구조, 식물의 수정과 생식 방법, 지구의 구조, 태양계, 지진과 화산, 암석의 생성과 변성, 물질의 구성과 분자/원자의 구조, 동물의 분류 방법 뭐 이런 것들. 

학창 시절 내내 문학과 역사 같은 스토리에 약했던 내 뇌는 과학적 팩트만은 잘 받아들였고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상당 부분 온전히 기억나는 부분이 많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심심하면 읽는 책들도 과학 분야가 꽤 많은 편이어서 할 이야기도 많았다.


때로는 주객이 전도되어(이 Bedtime story는 어디까지나 아이를 재우기 위한 것이다) 불을 켜고 그림으로 그려 가며 설명하고 싶은 마음이 솟아오르지만 꾹 참는다. 가끔씩(사실 꽤 자주) 나는 내 이야기에 너무 몰입해서 정신이 점점 또렷해져 열변을 토하고 있고, 옆에서 아이는 내 이야기를 자장가 삼아 일찌감치 잠들어버린다. 아직 나는 할 이야기가 많은데 너무 목표를 조기 달성한 나머지 조금은 아쉬운 마음으로 내일을 기약한다.  


시각자료 없이 말로만 들려주는 데다 아직 아이가 어려서 이해를 못 하는 부분이 태반일 텐데 그래도 아이는 재미있다며 매일 잘 시간이 되어가면 “엄마, 오늘도 과학 이야기 해주세요.” 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과학 이야기는 아이를 재우는 본연의 목적을 아주 잘 달성하고 있다. 

모르는 말이 반 이상 튀어나오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는 한국에서보다 훨씬 쉽게 잠들곤 한다. 가끔씩은 내용이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BGM으로 엄마 목소리를 들으면서 자고 싶은 것은 아닐까, 의심이 된다. 부작용으로 가끔씩은 남편까지 내 이야기를 자장가로 여겨 코를 골며 저녁 9시에 잠들어버리기도 한다.


가끔씩 아이에게 일반적인 방식으로 스토리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이런 과학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 아이에게 어떻게 작용할지 궁금하다. 아이에게 나이에 맞는 적절한 수준의 스토리를 들려 주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도 마음 한켠에 있다.

어쩌다 보니 나는 지금껏 소설이나 드라마 같은 스토리에 별로 흥미를 못 느꼈고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들 중에서도 문학, 역사, 언어 같은 분야가 제일 안 맞았다. 나라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사람'에 대해 어지간히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 갈수록 이게 흥미로워지면서 중요한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30대 후반에 접어들어서야 막 역사와 인간과 스토리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내가 “요즘 역사가 재미있어서 그런 책들을 본다” 고 하니 늙어서 그렇다고 하던데… 정말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짧은 기간 보고 읽은 수준으로 아이에게 얘기해 줄 정도는 안 되므로 아직까지 내가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는 죄다 이과적인 이야기다. 



그나저나 내 이야기의 끝은 어디쯤일까. 

천 일 동안 밤새도록 할 이야기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어떤 이야기든, 앞으로 남은 1년간 이어갈 매일 저녁 20분짜리 이야깃거리 정도만 있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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