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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 김 Mar 01. 2022

Healthy snack을 싸 주라고?

영국 학교의 엄격한 Policy와 최고 수준 비만율 사이 간극

영국에서 초등학교 Year1에 다니고 있는 아이는 학교 책가방에 매일 기본으로 스낵, 물병, 필통을 챙겨 다닌다.

교과서나 공책은 가져가지 않는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제공하는 별도의 자료로 공부를 하고, Lunch는 학교에서 제공된다.

그런데, 응? 웬 Snack?


첫 등교를 앞두고 학교에서 안내를 받다가 깜짝 놀라 이게 뭐냐고 물었다. 상당한 비용의 급식비까지 결제했겠다, 나는 이제 애만 보내면 되는 줄 알았던 것이다. 스낵은 아이들이 오전 Breaktime에 먹는 건데, 집에서 준비해 와야 한다고 했다. 아침 등교는 8시까지이고 Lunch는 12시 30분에야 시작되므로 간식이 필요한 것 같긴 했다.

한꺼번에 받은 수많은 안내 자료 중 Snack time에 관한 내용도 있었는데 내가 미처 읽지 못한 것이었다. 뒤늦게 찬찬히 읽어 보았다. 적당한 양의 건강한 간식거리를 보내 달라는 얘기였다. 좋은 간식의 예로는 Vegetables, Fresh fruit, Small Savoury sandwich, Rice cakes 같은 것이 적혀 있고 허용되지 않는 간식은 Sweets, Drinks including sugar 같은 것이 있었다. (Rice cake은 떡이 아니라 간이 하나도 안 된 쌀뻥 같은 것이다.) 학교에서 마실거리는 오직 ‘Water’만 허용될 뿐, 어떠한 다른 음료도 안 된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도시락 과제에 내가 당황해하자 행정 담당 직원이 적당히 편하게 준비해서 보내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초보 학부모 마음에 그게 또 적당히가 잘 안 된다.

다행히 한국에서 혹시나 하여 준비해 온 도시락 통과 물통이 있었다. 여기에 뭘 넣어 보내야 하나?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만만한 바나나 같은 과일, 간단한 빵, 견과류, 요거트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알러지가 있는 아이들이 많아서 그런지 학교에서 'No nuts policy'가 아주 엄격했다. 우리 아이에겐 알러지가 없다고 해도 어쩌다 아이들과 간식이 섞이는 등의 경우를 대비해 견과류는 절대 금지였다. 마시거나 떠먹는 요거트도 편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안내문을 읽고 나니 이것도 당이 포함된 액체라서 안 될 것 같았다.


고민 끝에 나는 첫날 Snack으로 식빵에 샌드위치 크림을 바르고 사이에 고다 치즈를 한 장 끼워 넣은 심플한 샌드위치와 바나나, 체리를 넣어 주었다. 그러고는 아이가 잘 먹었을지,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이 스낵이 자연스러웠을지 하루 종일 궁금해 하다가 아이가 돌아오자마자 질문을 퍼부어 댔다.

“오늘 스낵은 맛있었어? 안 남기고 다 먹었어? 스낵은 언제 먹어? 다른 아이들을 뭘 가져와? 얼마나 많이 가져와? 친구들과 나누어 먹었어?”

너무너무 궁금한 게 많은 엄마와 달리 아이는 그저 무심하고 시크할 뿐이다.

“아주 맛있었어요. 다른 테이블에 앉은 아이들 것은 못 봤고, 옆에 있는 아이들 걸 보니까 빵도 있고 바나나랑 오렌지도 있었어요. 코로나 때문에 자기 것만 먹어요.” 라고 알려 주었다. (참고로 선천적으로 까다롭지 않은 식성의 우리 집 애아빠와 아이는 언제나  요리가 ‘아주 맛있다’고 한다. 그냥 ‘맛있다’ 라고만 한 날은 그날 요리가 대 실패한 이라고 보면 된다.)


휴, 이 정도면 괜찮은가 보군. 하지만 매일 같은 걸로 싸 줄 수도 없지 않은가. 나는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과일을 종류별로 돌아가며 샀고 매일 두 가지씩 싸 보냈다. 블루베리, 오렌지, 청포도, 붉은 포도, 체리토마토, 귤, 블랙베리, 딸기 등등. 한국보다 과일값이 싸기에 망정이지, 한국에서였더라면 과일 값만 한 달에 몇 십만 원 나왔을 것 같다.

약간 배를 채울 것도 필요할 것 같아 과일과 함께 간단한 빵이나 담백한 크래커, 치즈도 함께 넣어 주었다. 카망베르를 몇 조각 넣어보기도 하고 프레쉬 모차렐라나 에멘탈을 넣어 보기도 했다.



그런데 가만 보니 학교의 가이드는 가이드일 뿐. 아이 친구들은 그다지 건강하지 않은 간식도 종종 가져오는 눈치였다. 학교에 다닌 지 일주일쯤 지났을 무렵, 아이는 “친구 중에 제크를 스낵으로 싸 오는 친구가 있어요. 나도 그거 싸가고 싶어요.” 라고 했다. 한국에서 먹어 본 제크와 비슷했다고 하니 Ritz인가? 이렇게 짠 크래커도 가져온다고?

흠… 학교 가이드에서 좀 벗어난 것 같긴 한데… 아이가 워낙 먹고 싶어 하니 (나도 준비하기 편하기도 하고) 가끔 빵이나 치즈 샌드위치 대신 크래커를 넣어 주기로 했다. 반갑게도 여기는 담백하거나 짭조름한 스타일의 크래커가 정말 많고, 대체로 맛도 괜찮다. 나는 보통 M&S에 자주 가는데 여기 있는 크래커들을 차례대로 한 종류씩 사서 내 와인 안주로도 먹고 아이 스낵으로도 가끔 넣어 주고 있다.


 뿐만 아니다. 아이 말을 들어보면 과즙이라기보다는 색소 넣은 설탕물에 가까운 어린이용 주스, 내 기준에는 완전 불량식품스러운 String Jelly, 당을 듬뿍 넣은 요거트, 슈거 코팅이 된 시리얼이나 도넛 등도 가져오는 것 같았다. 가끔 아이와 슈퍼마켓에 갈 때 “이거 OOOO가 싸 온 적 있는 거예요! 나도 먹어보고 싶어요!” 라며 사 달라고 떼를 쓰는데 ‘웬 이런 불량식품을?!’ 싶어 뜨악스러운 경우가 몇 번이나 있었다.


물론 아이가 특이한 케이스만 유별나게 기억했을 가능성이 높긴 하다. 그 아이들도 매일 '건강한' 간식을 싸오다가 딱 하루 Sweets를 간식으로 싸 가겠다고 떼를 썼을 수도 있고, 어쩌다 한 번쯤 엄마가 늦잠을 잤을 수도 있겠지. 내가 싸 준 M&S 치즈 크래커를 한입 나누어 먹고 “Super-duper Delicious!!!”라고 외쳤다는 아이의 단짝 친구는 집에 가서 우리 아이가 가져온 엄청 짭조름한 과자를 먹었다고 부모에게 얘기했을지도 모르고, 그 부모는 “애들 간식으로 뭐 그런 걸 싸줘?” 라며 혀를 찼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영국에서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아이들에게 비교적 균형 잡힌 급식을 제공하고 아이들에게 식습관 교육도 신경 써서 하는 편이다.

아이 이야기를 들어 보면 점심시간 급식에는 2가지 메인 요리 중 하나를 선택하고 2~3가지 채소 중 최소 1가지 이상을 선택해서 먹어야 한다고 한다. 디저트도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지만 메인 요리를 (거의) 다 먹어야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아이 본인 왈, 자기는 매일 두 가지 이상 채소를 잘 먹고 있는데 어떤 친구는 채소를 하나도 안 가져와서 영양 지도 선생님의 지적을 받고 겨우 한 가지 먹기도 한다고 한다. (엄마에게 칭찬받으려 하는 얘기라 얼마나 순수하게 신뢰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학교에 영양 지도 교사가 있고 아이에게 한 가지 이상의 채소까지 먹도록 권한다는 것이다. 엄마 입장에서는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영국 학교들은 대체로 질 낮은 급식 수준으로 유명하고, 영국은 서유럽에서 비만율이 가장 높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Source : OECD 2010)


2020년 데이터에 의하면 영국 성인의 63%가 과체중 혹은 비만 상태이며, 어린이 비만 문제도 심각해 초등학교 졸업생 3분의 1이 과체중이라고 한다. 영국 보건부는 비만 관련 질환 치료에만 매년 60억 파운드(약 9조 3,201억 원)를 쓰고 있다고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 정부는 패스트푸드나 청량음료에 대해 비만세 부과나 광고 금지 등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영국 대부분의 공립학교에서는 재정 이슈 때문에 여전히 급식으로 채소 한 조각 없는 햄버거, 감자튀김, 튀긴 너겟 같은 음식만을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10여 년 전 유명 셰프인 제이미 올리버가 영국 학교의 심각한 급식 실태를 고발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개혁을 추진하기도 했지만 별 실효성은 없었던 듯하다. 법적 기준 없이 지방정부와 학교 자율에 맡기고 있고 재정도 확충되지 않으니 저렴하고도 열량 높은 재료(각종 육류 부산물을 섞어 만드는 너겟류 등)에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는 조리방식(끓는 기름에 일정 시간 재료를 담그기만 하면 되는 튀김)이 여전히 영국 급식의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든 영국이든 비만은 저소득층에서 더 심각하다. 어릴 때부터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제대로 된 음식을 못 먹어본 아이들은 커서도 좋지 않은 식습관을 그대로 가지고 간다. 영국인들 중에는 튀긴 감자나 통조림 콩도 ‘채소’라고 주장하며 섭취하는 채소라고는 오직 이것 뿐인 경우도 있다.





이곳 영국의 어느 한 편에서는 Vegan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여전히 Junk food나 가공식품만 먹는 사람들이 있다.

양쪽의 간극이 참으로 크고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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