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경 김 Mar 02. 2022

Way of thinking을 가르치는 영국

공원 산책길에 만난 싱가포르 할머니의 교육 철학

아이의 학교 앞에는 작지만 아름다운 공원이 있다. 

영국의 다른 큰 공원들에 비해 작다는 것이지 실제 크기는 3.4만 평 정도로 운동을 하기에도 충분하고 아기자기하게 (프랑스식으로) 꾸며진 정원과 호수, 간이 카페, 아이들 놀이터도 있어 산책을 하거나 잠깐 휴식을 취할 공원으로서 더할 나위가 없다. 아직은 겨울의 끝자락이어서 야외 공원을 오래 즐기기에는 조금 쌀쌀하지만, 날씨가 풀리면 오후 내내 피크닉을 해도 좋을 것 같다.


남편과 아이가 쉬는 주말의 어느 날, 온 가족이 이 공원에 산책을 갔다. 

런던의 공원에는 어디에나 다람쥐(Squirrel, 청설모에 가깝지만 우리 가족은 그냥 다람쥐라고 하고 있다)가 참 많고 그 공원에 연못이나 호수라도 있다면 청둥오리, 갈매기, 백조, 거위 같은 물새도 많다. 많은 경우 “Save the wildlife”라는 표시와 함께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안내가 있지만 어떤 나라 어떤 인종이든 대부분의 아이들은 동물들에게 먹이 주는 것을 참 좋아한다. 우리 아이도 마찬가지여서 우리는 공원으로 산책 나갈 때 주머니에 땅콩이나 아몬드, 호두 같은 것을 몇 알 챙겨 가곤 한다. 이 너트는 운 좋은 다람쥐가 먹을 때도 있고 다람쥐를 찾던 아이 입 속으로 들어갈 때도 있다.


이날도 산책길에 마주친 다람쥐에게 아몬드를 던져 주고 있었다. 그때, 공원에서 가볍게 조깅을 하던 중년의 동양인 여성이 다람쥐를 같이 구경했다. 그분의 이름은 ‘메이’였고, 싱가포르에서 왔으며 나이가 60이라고 했다.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본인이 한국문화를 얼마나 좋아하고 잘 아는지 이것저것 얘기를 하고 이 동네에 맛있는 한국 식당이 있다며 추천도 해 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 얼마나 오래 머무는지 묻더니 기회가 된다면 이곳, 영국에서 아이를 쭉 교육시킬 것을 강하게 추천했다. 

내 주위에는 기러기 생활까지 감수하고 아이 교육을 위해 싱가포르에 가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기에 의아했다. "한국에서는 싱가포르 국제 학교에도 많이 가고 있어서 싱가포르도 교육 강국인 줄 알았다. 싱가포르도 교육시키기에 좋지 않냐?" 고 물었다. 


그녀의 이야기로는, 싱가포르 식의 교육은 어린아이일 때까지는 괜찮지만 아이들이 커 갈수록 영국에서 교육시키는 것이 훨씬 좋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영국에서는 아이들에게 ‘Way of thinking’을 가르치지만 싱가포르에서는 ‘Way of doing’만 가르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싱가포르의 기본적인 교육정책의 철학은 “생각은 국가가 할 테니, 너는 실행만 해라.”라고 했다. (물론 이것은 한 사람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 정말 그런지는 알 수 없다. 게다가 그녀가 싱가포르를 떠난 지 한참 된 것 같으니 지금은 다를 수도 있다.)


메이는 그런 방식이 아이들이 어릴 때는 규율(discipline)을 몸에 익힐 수 있으니 나쁘지 않지만, 아이들이 성장할수록 그런 식의 교육은 해악이 된다고 말했다. 생각하는 것도 훈련과 연습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담이지만 그녀는 아이들을 영국에서 교육시켰고 그 아들 둘이 지금은 의사와 변호사가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든 영국에서든 젊은 엄마에게 자녀 교육에 조언을 해 주시는 중년의 여성들은 지금 자기 자식이 얼마나 성공했는지를 꼭 알려주신다.)


낯선 사람과도 금세 어울리고 영어도 겁이 없는 남편은 대화가 초반의 ‘오징어 게임’ 수준에서 교육철학과 관련된 진지한 부분으로 넘어오자 흥미가 떨어진 것 같았다. 반면 나는 평소에 갖고 있던 생각과 일치하는 그녀의 교육관에 전적으로 동감해서 짧은 영어로 한참 이야기를 했다. 





한국도 싱가포르와 비슷한 면이 있다. 중국과 일본, 대만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시대 흐름과 함께 우리 사회도 조금씩 더 개인화되어 가고 있지만, 서구 사회의 개인주의와 비교하면 동아시아 전반이 대체로 혈연주의, 집단주의, 전체주의에 가깝다는 것은 누구라도 동의하는 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집단주의적 사고와 철학은 생활방식과 교육방식 전반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반면 유럽과 미국으로 대표되는 Western World는 훨씬 더 개인주의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물론 그 안에서도 국가나 민족별로 조금씩 그 수준이 다른데 서구 세계 안에서도 대체로 영국(과 앵글로색슨계 미국인)이야말로 개인주의의 극단에 있는 것 같다. 

이탈리아나 아일랜드 같은 나라(혹은 민족)는 혈연 중심의 가족관계가 훨씬 더 끈끈하며, 근현대 역사를 보면 독일과 프랑스, 러시아 같은 국가들도 국가 단위의 전체주의의 경험이 있고 그런 개념에 익숙하다. 반면 영국은 개개인의 자율적인 사고를 강조하고, 독립된 의사결정의 권한을 개인 단위로 더 많이 내려주는 편이다. 역사적으로도 국가나 중앙정부의 권한이 더 제한적이고, 사회가 훨씬 더 분권적인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국가권력이 중앙 집중적이고 사회적으로 전체주의가 강조되는 경우,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는 중앙정부가 존재한다면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겠지만 반대로 방향성이 어긋난다면 큰 손실이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많은 사례를 관찰해 볼수록, 역사에 흥미를 갖고 살펴볼수록 집중된 권력은 부패하거나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를 위험이 너무 높다. 한 사람 혹은 한 정당이 ‘선의’와 ‘상식’과 ‘능력’을 모두 갖추는 것은 참으로,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그 반대쪽에 있는 사회, 즉 진정한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고 권력이 분산되고 개인주의 문화가 주류를 이루는 경우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도 하고 판단/결정도 하고 그 책임도 본인이 져야 한다. 그런데 이놈의 ‘생각’과 ‘결정’이란 것은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반면 “네 맘대로 대로 해.”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지. 하고 싶은 대로 하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상황과 환경은 어떠한지, 가능한 방법은 무엇인지 지켜야 할 규칙은 무엇인지 알고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해야 한다. 


너무 당연하게도, 어릴 때 작은 것부터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연습해 보지 않으면 나이가 든다고 해서 짠! 어느 순간 저절로 ‘사고하는 인간’ 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방식에 있어서 쉽고 빠르게 남들이 닦아 놓은 길을 따라가기보다는 스스로 생각해 보고 깨우쳐 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부모나 교사가 아이를 작은 중간 목적지에 조금 더 빠르게 데려가려고 (이미 알려진) 쉬운 방법을 먼저 알려주며 다그쳐 끌고 간다면, 더 이상 따라갈 가이드가 없어지는 순간 아이는 길을 잃게 될 것이다.

 

지금껏 살면서 보니 인간은 생각보다 금방 ‘이미 밝혀진 길’ 끝에 다다르는 것 같다. 대부분 20살이 되면, 혹은 경우에 따라 좀 늦어지더라도 30살쯤 되면 금세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되는 ‘단 하나의 정답’ 이 없어지지 않는가. "공부를 더 해야 하나? 취업을 해야 하나? 어떤 분야로 갈 것인가? 결혼은 해야 하나? 아이는 낳아야 하나? 집은 사야 하나? 얼마나 저축을 하고 얼마나 써야 하나?" 아무것도 정답이 없고 대신 결정해 주는 사람도 없다.

그때가 되었을 때 길을 잃지 않고 스스로 목적지를 정하고 길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은, 그전에 안전한 곳에서 해 보았던 ‘생각하는 연습’과 '결정하는 연습'일 것이다. 


가정에서 아이를 교육시킬 때, 작은 것들을 스스로 결정해 보는 경험은 나중에 있을 큰 결정을 내릴 때를 대비한 연습이 된다. 물론 아이의 선택은 늘 부모의 성에 차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것을 결정해 보지 못한 아이는, 큰 것은 더더욱 결정하지 못한다. 어린아이를 둔 부모들은 보통 자기 자식이 순순히 하라는 대로 잘 따르는 고분고분한 아이가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어느 순간(생각보다 금방) 아이는 성인이 될 것이고, 부모의 손을 떠날 때가 올 것이다. 어릴 때 늘 고분고분 부모 말을 잘 따르기만 하던 아이가 커서 어느 날 갑자기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이 되기를 바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물론, 나도 아이가 하란대로 안 하고 따박따박 따질 때 화를 내며 "제발 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말 좀 들어!!!"라고 샤우팅을 하고 있다. 때로는 엄마 말도 좀 들어야 할 것 아닌가. 다 너 잘되라고... 읍읍)




개인주의와 집단주의(혹은 전체주의)는 언제나 인간 사회에 존재해 왔던 것이라, 어떤 것이 절대적으로 더 우월하거나 옳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 또한 자연적인 인간의 진화적/생물학적 본성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고 스스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늘 고민이 된다.


"인간은 얼마나 사회적인 존재일까?"

"개별성의 추구와 연결성의 추구 사이에서, 나는 어디쯤에 있어야 할까?"

"얼마나 이기적으로 굴고 얼마나 이타적으로 굴어야 할까?"

"자신의 내면을 챙기는 일과 사회적 평판을 지키는 일 중 어디에 더 집중해야 할까?"

"내가 가장 집중해야 하는 사회의 단위는 나 자신/가족/확장된 가족/국가/전 지구적 생명 중 어디일까?"


다만, 우리가 살아갈 사회가 보다 민주적인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나 또한 더 큰 시스템의 부속품으로 보다는 스스로 생각하는 자율적인 존재가 되고 싶으므로 아이 또한 그런 사람으로 기르고 싶다. 


한국에서 아이를 길러도, Way of thinking을 길러 줄 수 있는 방법은 있겠지? 

부디, 방법을 찾을 수 있기를.

작가의 이전글 Healthy snack을 싸 주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