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영어교육
영어에 자신 없는 평범하고 게으른 엄마가 영국행을 결심하기까지
‘영어교육’ 이란 영유아 자녀를 둔 한국 땅의 부모라면 누구나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주제이다.
아이가 서너 살일 때는 값비싼 영어 교재나 전집을 사 줄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이고, 5~7살이 되면 영어유치원을 보낼 것인가 말 것인가의 고뇌이다.
세부적으로 들어가자면 골치 아픈 고민거리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몇 살부터 영유를 보낼 것인가? 학습식 영유를 보낼 것인가, 놀이식 영유를 보낼 것인가? 집에서는 얼마나 푸시할 것인가? 영유를 안 보낸다면, 영어학원을 보낼 것인가 아니면 집에서 엄마표 영어를 할 것인가? 내가 직접 한다면 무엇으로 어떻게 시킬 것인가? 학습지는? 화상영어는? 흘려듣기는?
아아...
나도 아이가 7살이 되는 지금까지 그 고비고비에서 어지간히 고뇌를 했었더랬다.
하지만 여태껏 언제나 게으르며, 남에게 미루고, 그러면서 돈도 안 쓰는, 소극적이며 방어적인 선택만을 해 왔었다.
첫째로 영유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패스했다.
아이는 만 18개월이 되는 때부터 회사 어린이집에 다녔다. 9시부터 18시까지 걱정 없이 맡길 수 있었고, 따로 들어가는 비용이 없었다. 만약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영유를 보낸다면 하원 후 아이를 돌봐 줄 이모님까지 써야 했으므로 엄청난 추가 비용이 들 것이었다. 거기에 이모님을 뽑고 관리하는 스트레스, 영어가 싫다는 아이에게 매일매일 숙제를 챙겨줘야 하는 부담은 덤이었을 테고.
둘째로, 엄마의 열정과 에너지를 너무 심하게 요구하는 방식은 도저히 내가 따라 할 수 없었다.
시중에는 다양한 이름을 붙인 엄마표 영어 교육방식이 참 많았다. 이런 방법으로 아이를 공부시키려면 끊임없이 영어 책과 오디오 자료를 찾아보아야 했고, 그걸 지속적으로 공급해줘야 했고, 아이 수준에 맞게 계속 읽어주고 틀어주어야 했다. 하지만 일단 내가 영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즐겁지도 않은 영어를 매일 챙겨 주고 억지로 시키고 정보를 알아보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었다.
나는 아이 영어교육에 관한 한, 그저 불안하고 혼란스럽고 자신감 없는 그런 엄마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다행히 물려받은 영어교재들이 좀 있었다.
프뢰벨, 튼튼영어 등 메이저 출판사의 영유아 영어 교재들이었다. 물론 정식으로 수업까지 들었다면 담당 선생님이 좀 더 전문적인 관리까지 해 주었을 수도 있겠지만 책과 DVD만으로도 썩 괜찮았다.
다행히 영유아 영어 수준이라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어서 봐주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 어릴 때는 하루 15분~20분씩 이 교재의 DVD를 틀어 주었다. 아이는 영어 책은 거부했지만 동영상은 (이때까지만 해도) 영어 콘텐츠만 틀어주었으므로 이 영상들도 곧잘 보았다.
6살이 되는 해에는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영국문화원에 등록했다. 사실 일주일에 한 번 가는 영국문화원 수업은 냉정하게 봐서 영어 실력 측면에서는 거의 도움이 되는 부분이 없었다.
다만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이때 영국식 수업 방식이나 외국인 선생님에게 익숙해졌던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 영국인 선생님과 영국식 발음, 수업교재와 수업 진행 방식, 등하원 프로세스, 필통 준비하는 방법까지 영국문화원은 실제 영국 학교와 비슷한 점이 많다.
그리고 7살부터는 영어 태권도 학원에 다녔다. 태권도를 운영하는 관장님 부부는 한국인이지만 미국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으셨고 학생들은 외국인이 한국인보다 더 많았다.
여기 다니는 아이들의 국적은 미국/독일/스페인/이탈리아/일본 등 정말 다양했다. 그 아이들의 부모는 한국에 있는 동안 한국문화를 경험해 보라는 의미로 태권도 학원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 학원은 외국인들의 니즈에 맞춰 태권도 자체에 집중하면서 한국의 태권도 정신이나 철학 같은 것들을 가르쳤다.
태권도 학원에서 태권도 자체에만 집중한다고 하니 좀 아이러니하지만, 사실 한국에서 일반적인 태권도 학원들은 방과 후 픽업, 학교와 다음 학원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 줄넘기 등 학교에서 진행하는 체육수업 연습 등 부가적인 역할을 많이 한다.
하지만 이 태권도 학원 또한 영어에 대해서는 거의 도움이 되진 않았다. 하긴, 태권도를 하면서 쓰는 영어라는 것이 얼마나 다양하겠는가.
다만 여기서도,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이 나이와 상관없이 이름을 부르며 영어로 떠들고 떼를 쓰기도, 혼나기도 하는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 보았던 것이 좋은 경험이 되었던 것 같다.
집에서는 6살 무렵부터 많이들 본다는 Phonics 교재와 Reading 교재로 하루 15분 정도 공부를 하게 했다. 이것도 매일 하려니 내게는 너무 스트레스인지라, 나는 때에 맞춰 교재만 주문해서 챙겨 주고, 매일매일 수업은 아이 아빠에게 맡겼다.
남편에게는 "내가 한글을 포함한 국어, 수학, 한자, 과학 등 딴 거 다 할 테니까 영어만 해 줘." 라고 했다. 다행히 남편은, 발음은 토종 한국인일지언정 영어를 좋아하고 겁이 없는 편이었다. 그리고 "맞벌이하는 부부가 당연히 아이 교육에도 부부가 함께 신경을 써야지." 라는 주장에 거절할 명분이 없었을 것이다.
아이는 이렇게 아빠와 함께 파닉스와 리딩 공부를 2년 정도 했다.
그러다가, 우리가 처음으로 아이 영어교육에 있어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바로 1년 간의 영국 살이다.
공립학교를 이용할 수 있는 비자가 없어 비싼 사립학교 학비를 감당해야 했고 코로나 상황의 리스크도 감수해야 했지만, 일단 저질렀다.
지금까지 영유 보냈더라면 들었을 돈 뒤늦게 쓴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코로나 위협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일 거야, 하면서.
게다가 아이 영어교육뿐만 아니라 나도 외국생활을 한 번 해 보고 싶었고 뭔가 변화의 계기도 필요한 시기였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가 특별히 영어에 유난을 떠는 엄마이거나 적극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이다.
때로는, 그저 이렇게 인생의 방향이 흘러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