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학제는 1년 3학기로, 9월부터 시작하는 가을 학기, 1월부터 시작하는 봄 학기, 4월부터 시작하는 여름 학기까지가 한 학년이다. 7월 초에 여름 학기가 끝나면 다음 학년이 될 때까지 기나긴 여름방학이 있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외국인 학생 비중도 높고 아이들이 방학을 이용해서 길게 외국에 다녀오는 일도 많기 때문에 주위 다른 학교들에 비해서 여름방학이 더 긴 편이다. (그런 만큼 학기 중간의 Mid term 방학이 더 짧다.)
기나긴 여름방학 중, 학교에서 Summer club이 운영되는 기간에는 가능한 한 클럽에 보냈지만 방학 중간에는 클럽조차 운영되지 않는 기간도 꽤 있었다. 이 때는 아이를 데리고 런던의 박물관이나 공원, 놀이터에 다녔다. 물론 만 6세의 아이는 박물관이나 미술관보다는 놀이터를 훨씬 좋아했다.
런던의 공원에는 꼭 아이들의 놀이터를 하나 이상 포함하고 있다. 같은 동네라고 해도 옆에 있는 다른 놀이터와는 놀이기구가 서로 완전히 다르고 초등학생 이상 되는 큰 아이들(만 6~10세 수준)과 미취학 영유아(만 2~6세 수준) 대상의 놀이터가 구분되어 있어 각자 수준에 맞게 안전하고 즐겁게 놀 수가 있다.
놀이터에는 모래놀이를 할 수 있는 Sandpit이나, 펌프질을 하거나 얕은 수로에서 첨벙거리며 놀 수 있는 Water play가 함께 있는 곳이 많다. 여름이 되기 전에는 대부분 펌프의 수도가 잠겨 있지만 여름 기간 동안은 신나게 놀 수 있다. 엄마들은 근처 벤치에서, 혹은 나무 그늘에서 피크닉 매트를 깔고 아이들을 지켜보면 된다.
아이들이 물놀이, 모래놀이를 하다 보면 손발은 물론 옷이 엉망이 된다. 그래서 여름철 놀러 나갈 때는 타월 및 갈아입힐 옷이 필수다. 몇몇 준비성 철저한 엄마들은 아예 아이에게 수영복을 입혀 오기도 한다. 물론 간식이나 간단한 도시락도 챙겨야 한다.
피크닉까지 준비해서 본격 놀이터 나들이를 하러 나오는 사람들은 관광객은 잘 없고, 대체로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국제적인 대도시 런던 답게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지만, 공원과 정원을 즐기는 사람들은 백인, 즉 앵글로색슨인의 비중이 높은 편인 것 같다. (반면 도심에서 마주치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유색인종이 많다.)
그런데 몇 번, 아주 흔하지는 않지만 꽤 자주, 앵글로색슨 영국인 부모들의 쿨한 유물론적 사고방식(“몸은 그냥 몸일 뿐”이라는...) 혹은 르네상스적 인간관(“인간의 몸은 아름다운 것”이라는...)을 엿보게 될 때가 있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대낮의 밝은 햇살 아래 사람들이 가득한 곳에서 쿨하게 (남아든 여아든) 더러워진 옷을 훌렁 벗기고 새 옷으로 갈아입히는 것이다. 그리고 미처 갈아입힐 옷을 못 챙겨 온 경우 그냥 팬티만 입혀 물놀이를 하게 하기도 했다.
물론 만 2~5세 정도의 어린아이들이기는 했지만, 나로서는 아무리 어린 아이라 해도, 아이들의 알몸, 혹은 속옷만 입힌 모습을 공공장소에서 보이는 것이 참 당혹스러웠다. 특히 여자아이들은 더더욱! 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별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았고 주위 다른 사람들도 그저 무심했다.
필요에 따라 신체를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는 것은 어린아이뿐 아니다. 햇살 좋은 날엔 공원에서 남자든 여자든 훌렁훌렁 옷을 벗고 일광욕을 하는 일이 흔하며, 공공장소에서 가슴을 드러내고 모유 수유를 하는 엄마들도 흔히 볼 수 있다.
인도, 중동, 한중일 등 동아시아를 포함해서 아시아계 중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잘 없다. 하나같이 흰 피부에 밝은 눈에 금발머리인 백인들, 그냥 평범하고 전형적인 영국인들이 보통 그렇다.
여름의 끝자락에 한국에서 나의 여동생과 조카, 친정어머니가 런던에 놀러 왔다.
조카는 더할 나위 없이 에너지가 넘치고 활발한 만 5세의 남자아이로, 외할머니인 나의 친정어머니가 양육을 도와주고 계신다. 우리 엄마 또한 전형적인 K-할머니로서 한국적 상식 및 교육열, 헌신적인 태도를 두루 갖추고 계시다.
조카가 와 있는 동안 몇 차례, 우리는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을 공원에서 놀게 했었다. 그리고 물놀이 후 홀딱 젖은 옷을 갈아입힐 때면 동방예의지국의 국민답게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아이들을 수건으로 가리고 옷을 갈아입혔다.
그런데! 그런데도! 다른 모든 방면에서는 한없이 단순하고 심플한 이 조카아이가 옷을 갈아입으면서 “부끄럽단 말이에요!”라고 반항을 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우리 친정어머니는 조카가 2~3살, 아주 어릴 때부터 샤워하고 나와 맨몸으로 돌아다닐 때면 “아유! 부끄러워! 빨리 옷 입자.”라고 하며 벗은 몸을 보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가르치셨다. 그리고 나의 여동생은, 남자아이들도 수치심을 알기 때문에 남자아이라도 1980년대처럼 하의를 홀랑 벗겨 다니게 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깨어 있는 MZ세대 엄마였다. 그리고 나는, 예나 지금이나 여자아이의 몸은 절대 남들 앞에 보이면 안 되고 특히나 만 5세 이후에는 아빠와도 알몸을 서로 보게 해서는 안 된다는 한국 유아교육 상식을 철저히 따르는 K-딸맘이었다.
문득 예전 한 친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의사였던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 몸을 해부하고 공부하다 보면 몸은 그저 몸일 뿐인데, 우리 사회는 거기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아.
정말로, 우리는 몸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류의 유교적 가르침, 여성의 절개와 정조라는 전통적인 가치관 및 여성에게 특히 민감하게 작용하는 도덕적 평판, 어린 나이부터 사회적으로 교육되는 수치심 등이 합쳐진 결과일 것이다.
우리에게 몸은 가려야 하는 것, 부끄러운 것, 들키면 수치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신체 사진을 찍히는 일은 목숨에 준하는 약점을 잡히는 일이 된다. 모두가 그것을 알기 때문에, 한국에서 많은 범죄자들이 나쁜 짓을 할 때 일단 신체 사진부터 담보로 찍어 놓고 시작한다. 그리고 그 신체 사진을 미끼 삼아 또 다른 범죄들을 계속 이어 나가곤 한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는 남의 숨겨진 몸을 엿보고 싶은 비뚤어진 욕망도 기형적으로 더 자라나게 된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또한 이런 맥락 아래에서 남의 몸을 몰래 보는 일, 몰래 촬영하는 일이 특수한 우월감 혹은 쾌락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상대의 존엄성을 짓밟고 우위에 설 수 있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몸’에 다양한 정신적, 문화적인 의미가 두껍게 덧발라져 있는 한국과 달리, 평균적인 영국인들은 훨씬 단순하고 직선적으로 몸은 그저 몸, 이라고 인식하는 것 같다.
혹시 오해가 있을까 노파심에 말하자면, 이것이 이들이 성적으로 자유롭다거나 개방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영미 문화는 웨스턴 컬처 안에서 보수적이기로 유명하다. 인간의 욕망을 긍정적으로 보는 가톨릭 문화의 이탈리아, 프랑스 같은 곳에 비해 청교도적 영향을 많이 받은 영국은 상대적으로 더 고지식하고 엄격하다.
다만, 이들에게는 몸은 그저 유기체로 이루어진 기계일 뿐이라는 물질적인 사고방식이 바닥에 깊게 깔려 있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기능적으로 다른 역할을 하는 기계이며 따라서 공통기능을 하는 부위/장기 외에 성별로 상이한 기능을 하는 부위/장기는 목적에 따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뿐이다. 신체는 아름다움의 대상 혹은 쾌락의 원천이 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꽁꽁 숨겨야 하는 것도 아니고 숨기는 상대의 몸을 기를 쓰고 엿볼 일도 아니다.
당연하게도, 영국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은 의미에서 몰카 범죄 같은 것이 문제가 되는 일이 잘 없다. 영미 국가에서 ‘동의하지 않은 촬영 범죄’라고 하면 대체로 유명인을 대상으로 한 파파라치 범죄를 의미하지, 화장실이나 탈의실, 숙박업소, 대중교통 같은 곳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가 아니다. 영국에서 문제가 되는 성범죄는 대체로 신체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강간이나 폭력 같은 범죄이다. 성범죄의 80%가 몰카 범죄인 우리나라와는 크게 차이가 난다.
남의 몸이나 사생활을 몰래 찍는다는 것은 얼마나 찌질한 일인가. 하지만 그런 범죄가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피해자들에게 씻기 힘든 지독한 상처를 남긴다는 것은 사회 모두가 암묵적으로 신체를 내보이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확고한 합의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이러한 인식 차이는 짧은 기간에 생겨난 것도 아니고 쉽게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느 한쪽이 맞고 어느 한쪽이 틀린 것은 더더욱 아니다. 어느 방식이든 장점과 함께 단점도 있게 마련이다.
다만, 한국 사회 밖으로 나와 시야를 넓혀 보면 우리의 인식이 유일한 방식은 아니라는 것만 이해하더라도 자신의 상황을 좀 더 객관화해서 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우리의 공통된 인식체계가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면, 다른 대안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좋지 않을까?
서너 살 아이들에게 처음 교육을 시킬 때, ‘때와 장소에 따라 적절한 옷차림이 따로 있어. 옷을 벗고 돌아다니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야.’라는 가르침이 ‘너의 몸을 남들이 보면 안 돼.’라는 가르침보다 좀 더 일반적인 상식이 되었으면 좋겠다. 또 두 번째를 가르칠 때도, 너의 몸이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소중해서라는 것을 알려 주고, 또한 너의 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너의 존재 자체라는 것을 알려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