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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 김 Sep 23. 2022

힘을 지향하는 영국인들

겉으로 보이는 지성과 매너 아래


영국 하면 매너 있는 신사의 나라, 셰익스피어와 디킨스로 대표되는 문학과 경험주의의 세련된 지성이 발달한 나라로 폭력과 무력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하지만 경험할수록 이들은 의외로 상당히 호전적이며 힘을 중시하는 나라이다.


사회계층에 있어서 이들은 군사 계급이 가장 고귀한 신분을 차지했다. 영국의 귀족들은 봉건 귀족에서 유래했고, 이들의 직업은 (당연하게도) 싸우는 일이었다.

영국에서는(그리고 영국 문화가 남아 있는 미국도 약간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남자에게 하는 가장 큰 모욕이 Coward, 즉 겁쟁이라고 욕하는 것이다. 옛 영국 귀족들은 모욕을 당하면 반드시 결투를 통해 명예를 회복해야만 했다.


왕실도 마찬가지이다. 옛날, 브리튼 섬에서 허구한 날 전쟁을 하던 봉건 영주 중, 군사적으로 가장 강한 자가 왕의 자리를 차지했고 이것이 이어져 왔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영국의 왕은 상징적이지만 ‘가장 강하고 큰 군대를 통솔하는 최고 통수권자’라는 의미가 강하고, 군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중요하다.



이번 영국 여왕의 장례식에서 보았듯이 새 왕 찰스 3세, 왕세자 윌리엄은 물론이거니와 앤 공주 등 모든 왕실 인사가 군복을 입었다. 단, 왕가에서 퇴출된 앤드루 왕자나 해리 왕자에게는 군복이 허용되지 않았다. 군복을 착용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명예이고 권리인 것이다.

적어도 영국에서는, 사회 지도층의 자발적 병역 복무란 노블레스 오블리주처럼 기피되는 무언가를 ‘솔선수범’ 하는 의미가 아니다. 지위에 걸맞은 자격을 갖추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중요한 의례이다.


(사실 영국에서 왕실 인사들이나 귀족들은 목숨이 위험한 보직에 잘 가지도 않았다. 신분에 따라 장교가 되거나, 귀족 자제들로만 구성된 기병으로 갔다. 과거 기병이 되려면 승마실력은 물론 본인이 탈 말과 말 관리인을 스스로 마련해야 했으므로 평민은 하고 싶어도 못 했다.)



문학을 즐기고 글을 쓰고 미술과 음악 등 예술을 즐기는 교양 또한 근세 이후 귀족들에게 필요한 소양이 되기는 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것일 뿐, 가장 중요한 것은 모욕을 당했을 때 주저하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싸움으로써 명예를 지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승마, 사격, 검술 등 전투 기술을 익히는 것이 중요했다. 현대에는 이것이 다양한 스포츠로 바뀌어 갔지만 말이다. 

오히려 학식이나 교양이 부족한 것은 (좀 아쉬울지는 몰라도) 그리 심하게 흉잡힐 일은 아니었다. 심지어 중세까지 영국에서 대부분의 귀족과 왕은 글자조차 모르는 문맹이었다.


반면, 필요할 때 싸우지 못하면 앞서 말한 대로 Coward라고 욕을 먹으며 두고두고 업신여김을 받게 된다. 2차 대전 발발 시기, 히틀러의 도발에 유화책을 쓰며 달래려고 했던 당시 총리 네빌 체임벌린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나치에 단호히 맞서 싸우기를 선택한 처칠은 국가 영웅이 되었지만, 협상으로 어떻게든 싸움을 피하려 했던 그는 여전히 두고두고 조롱을 받는 처지이다. (최근 들어서는 재평가의 목소리도 있지만, 대체로 아직까지도 체임벌린이라는 이름은  최악의 겁쟁이를 표현할 때 쓰는 일반명사처럼 쓰이는 실정이다.)




또한, 영국의 왕궁이나 귀족들의 저택을 장식하는 컬렉션 중에는 미술품 못지않게 무기들이 많다. 창이나 검, 총들이 큰 방의 벽면마다 촘촘히 장식되어 있고, 수많은 박물관에도 전 세계에서 수집한 무기와 방패, 갑옷이 전시되어 있다. 햄튼 코트, 윈저 성, 런던탑, 런던 뮤지엄 등등.


이들 무기 중에는 실용적인 목적인 것도 있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장식적이며 예술적인 목적만으로 제작된 것들도 많다. 금과 은, 각종 보석으로 장식되거나 정교한 무늬와 조각이 새겨져 있다. 

이만한 사치품을 주문 제작할 수 있을 정도의 권력자들이 무기, 혹은 무기로 대표되는 힘에 대한 선망이 어마어마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양적으로도 방대이들의 무기 컬렉션을 구경하다 보면, 힘과 무력에 대한 이들의 선호는 가히 Obsession이라 느껴질 지경이다.




한편, 영국과 비슷하게 일본에서도 무사 계급이 귀족이 되었다. 봉건 영주들은 무사 계급을 거느렸고 이 사무라이들은 농민 위의 신분이었다.

일본 문화가 Masculinity가 강한 문화라고 하면, 이들의 공손하고 친절한 습성 때문에 의아할 수 있지만, 사실 그것은 결이 약간 다르다 - 그것은 강자에게 철저히 복종하는 습성 때문이다. 남녀 사이에 있어 철저히 가부장적이고 남성성을 강조하는 문화는 한국보다 훨씬 강한 것 같다.



재미있게도, 대영박물관의 일본관 또한 독특하게 사무라이의 무기와 갑옷이 중심에 있다. 반면, 대부분의 다른 문화권에서는 대체로 건축이나 종교, 예술품들이 중심이지 무기가 그처럼 중심에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무(武)보다 문(文)을 숭상하는 성리학적 유교 철학이 뼛속 깊이 새겨진 한국인인 나로서는 이런 기본 철학에서의 차이가 신기했다. 우리에게 문화재란, 사대부의 문방사우와 서화 아닌가. 사람 죽이는 데 쓰는 무기란 흉악한 것이라고 오히려 기피할 텐데 말이다.


이렇게 힘과 무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두 국가가 근대 이후 제국주의의 길로 들어서 식민지 확장에 앞장섰던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현대사, 20세기의 수많은 부분들을 결정지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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