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경 김 Sep 06. 2022

몸치 인생 40년 차의 자기 탐구

스쿠터 타다가 넘어진 이야기

(2022년 7월 10일에 쓴 글을 뒤늦게 정리하여 올립니다.)



어쩌다 성인용 스쿠터가 생겼다. (참고로 영국에서는 킥보드를 스쿠터라고 한다.)

영국에서 그걸 쓰던 남편의 지인이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짐이 많다며 쓸 일이 있으면 쓰라고 주고 갔다. 요즘 많이들 타는 전동식 킥보드가 아니고 발로 굴러서 움직이는 수동식인데, 바퀴가 두 개이고 꽤 크다. 영국에선 차가 없으니 늘 걷거나 버스, 튜브를 타야 하는데 아이와 함께 스쿠터를 타고 다니면 대중교통으로 가기 애매한 거리를 다닐 때 상당히 유용할 것 같았다. 몸으로 하는 운동이라면 대체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건 익혀둘 만할 것 같았다.


야심차게 이걸 끌고 가까운 공원으로 연습하러 나간 첫날, 연습을 시작하자마자 굴곡진 경사로에서 꽈당! 제대로 넘어졌다. 순간적으로 왼쪽 어깨와 오른손으로 충격을 완화해서 머리나 뼈는 다치지 않았지만(스스로에게 칭찬하는 바이다.) 오른손 상당 부분을 아스팔트에 긁어 손바닥에 제법 큰 상처가 났고, 손가락 관절마다 패인 상처를 입었다. 엄마와 함께 스쿠터를 타게 되었다고 신이 났던 아이가 놀라서 걱정을 했다.


한국에서라면 바로 병원에 가서 항생제 처방을 받고 드레싱을 받았겠지만 여기 GP는 예약을 해 봤자 한 달쯤 뒤로 예약이 잡힐 것이고, 긴급으로 신청한다 해도 주말을 앞두고 있어 4,5일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그렇다고 이게 응급실에 갈 정도인지 생각해 보니 또 그건 아닌 것 같고. 그냥 적당히 내가 처치를 해 보기로 했다.


일단 집에 돌아와 수돗물로 흙을 털고, 너덜너덜하게 매달린 피부를 가위로 잘라내고, 소독약으로 소독한 다음 메디폼을 붙여 두었다.


아, 말이 쉽지, 정신이 아득할 만큼 아팠다. 맨 정신으로 뼈를 긁는 수술을 받던 관우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았다. 내 손으로 내 상처의 엉겨 붙은 흙과 먼지를 씻어내고, 왼손으로 내 오른손 피부에 가위질을 하다니! 무슨 정신으로 이걸 다 했는지 모르겠다.


하룻밤 지나고 나니 다행히 상처 부위의 감염은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진물이 어찌나 많이 나오는지, 메디폼이 부풀다 못해 줄줄 새고 있었다. 퉁퉁 불은 메디폼을 떼고 진물을 닦고 상처 주위를 다시 소독한 다음 새 걸로 붙였다. 그러면서도 이게 맞는지, 파상풍 약이나 항생제를 먹어야 하는 건 아닌지, 지금이라도 응급실에 가야 하는 건 아닌지 헷갈렸다.

주말을 지나고 3, 4일 지나면서 점차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장 작은 상처는 메디폼을 떼도 될 만큼 나아졌고 다른 부분들도 점차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로써 일주일쯤 되어 가는데, 손바닥 쪽 넓은 상처부위를 제외하면 이제 염증 단계는 넘어서 상피가 채워지는 단계인 것 같다.




나는 항상 몸을 움직이는 운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학창 시절 체육시간을 싫어했고, 그중에서도 피구가 제일 싫었다. 내 키는 174cm로 여자치고는 큰 편이고 팔다리가 길어 처음 보는 사람들은 운동을 꽤나 잘할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실상 몸으로 하는 그 무엇도 잘 못 하는 몸치였다.


직접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닌, 운동경기를 관람하는 것도 어려웠다. 취직하고 나서 회사에서 단체관람으로 야구장, 농구장 같은 곳에 가면서 처음으로 스포츠 경기를 직접 관람할 기회들이 생겼다. 그런데 대체로 내 눈이 공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었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공 어디 갔어?”


TV 중계와는 달리 해설을 해 주지도 않고, 주요 장면을 슬로 모션으로 다시 보여주지도 않으니 항상 한 박자 늦게 옆 사람에게 설명을 듣고서야 상황을 이해하곤 했다. 공이 보이지 않으니 경기 흐름을 따라가며 읽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이야기해 둘 것은 경기규칙을 모르거나 스포츠에 관심이 없어서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결국, 나에게 있어 카메라 Vision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경기장 직관'이란 시끄럽고 들뜬 경기장 분위기에서 치킨과 맥주를 먹는 이벤트가 되어버렸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이제는 내 상황이 왜 그런지 그럴듯한 가설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내 시세포가 정상범위에 비해 조금 특이하게 분포해 있다는 것.

시세포 중에는 움직임을 포착하고 사물의 방향이나 속도를 감지하는 M세포(Magnocellular cells)와, 색깔과 질감 식별에 유리한 P세포(Parvocellular cells)가 있다고 한다. M세포는 간상체로부터 입력을 받고 P세포는 추상체로부터 입력을 받는다. 맞다. 중, 고등학교 생물시간에 배운 간상세포와 원추세포 바로 그것이다.

대체로 사냥과 부족 간 전쟁을 담당했던 남성들은 상대적으로 간상세포의 발달이 두드러지고, 채집활동을 담당했던 여성들은 원추세포가 발달했다는 것이 진화생물학자들의 설명이다. 그래서 여자들은 (잘 익은 과일을 구분하고, 독이 있거나 상한 음식을 구별해내기 위해) 미묘한 색감 차이를 구분할 줄 알고, 남자들은 (전투에서 살아남고 사냥에 성공하기 위해) 움직임을 더 잘 포착한다는 것이다.


몇십 년 살아 보니, 나는 평균적인 수준보다 시신경 분포가 좀 더 여성적인 방향으로 많이 치우친 것 같다. 정지상태의 사물을 관찰하거나 색감을 보는 데는 좀 더 예리한 반면, 빠른 움직임을 포착하는 데 항상 어려움을 겪는다.


가령 이런 것이다.

미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좀 더 많은 것을 읽어내거나 추측할 수 있다. 가령, 그림의 분위기와 색감을 바탕으로 이 사람의 정신상태가 보이고 그것이 맞을 때가 종종 있다. 또 사람들의 안색 또는 신체의 변화와 차이를 파악해서 건강상태를 대체로 맞게 추측한다. 아름다운 자연과 그림 등을 보는 것에서 큰 행복을 느낀다. 매일 보는 하늘과 나무에서 조금씩 달라지는 색상에 늘 새롭게 감동한다.


하지만 나는 빠르게 진행되는 운동경기를 시각적으로 따라가지 못하고, 화면 전환이 빠른 액션 영화를 즐기지 못한다. 마블 류의 헐리우드 액션물을 볼 때 나는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항상 잠이 들곤 했다. 나와 함께 영화를 보는 가족, 친구들은 어떻게 이 순간에 잠이 들 수가 있는지 이해를 못 했다. 나도 내 특성을 이해하기 전에는 그게 왜 그런지 설명해 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대목에서는 대체로 스토리 진행이 아니라 시각적 스펙터클이 한참 이어지는데, 내 눈은 화려한 액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뿐더러 금세 피로해지고 스토리 진행이 없으니 재미도 없다. 그게 한참을 이어지니 그 시끄러운 소리에도 불구하고 잠이 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빠르게 움직이는 무언가에 빠르게 반응해야 하는 모든 운동들이 내게는 모두 어렵다. 테니스나 피구, 소프트볼처럼 움직이는 공을 처리해야 하는 운동들은 그저 두려울 뿐이다. 내 눈에 보이지 않으니 대응을 할 수 없고, 어딘가에서 튀어나와 나를 때릴 것 같기 때문에.


시신경뿐 아니라 운동신경도 문제인 것 같다. 순간적으로 온몸의 수많은 근육과 뼈와 관절이 조화롭게 움직여 필요한 자세와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것이 느리고 원활하지 못하다. 한마디로 짧게 말해 ‘몸치’라고 할 수 있겠다.

결과적으로 무용이나 춤이 잘 안 되고 스케이트, 스키, 자전거 타기 같은 균형감각이 요구되는 운동들이 어렵다. 내가 춤을 추면 우리 가족들은 배를 잡고 웃는다. 개업하는 가게 앞에 두는 바람 풍선이 움직이는 것 같다나?

반면 요가나 필라테스, 골프처럼 사용되는 근육을 하나하나 인식하며 천천히 움직일 수 있는 운동, 반복된 연습으로 바른 자세를 만들어가는 운동들은 내게 잘 맞았다.



이것은 선천적인 것일까, 아니면 후천적인 것일까?

확실히, 타고나는 게 클 것이다. (흠, 여기서 우리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잠깐 든다.) 나 같은 하드웨어를 타고난 사람이 아무리 노력한들 김연아나 BTS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목표를 ‘운동선수’가 아니라 ‘일반인의 보통 수준’으로 잡는다면, 이런 몸을 타고났더라도 후천적으로 조금은 더 보완할 기회가 있지 않았을까? 말하자면 나는 대근육 움직임이 좀 미숙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어릴 때 이를 알아채고 집중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더라면 좀 나아지지 않았을까?


아이를 키우다 보니 요즈음은 주기적인 영유아 검진을 통해 성장 시기마다 신체계측과 발달평가를 하여 부족하다 싶은 부분은 적기에 알아차리고 지원해 줄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영유아기를 보낸 1980년대의 한국에는 그런 기회가 없었다. (궁금한 마음에 찾아보니 국가에서 시행하는 영유아 건강검진은 2007년에야 비로소 시작된 사업이었다.)

또한 그때는 사회적으로도 몸 쓰는 것보다는 머리 쓰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여기는 분위기였고, 특히 여자아이들은 얌전하고 조용한 편이 더 좋다고 여겼다. 운동을 좋아하는 활발한 여자 아이들은 왈가닥에 별나다고 손가락질받기가 쉬웠다. 요즘처럼 발레나 수영 같은 것을 일찌감치 가르치는 것도 아니었고 동네마다 있던 태권도 학원은 대체로 남자아이들의 영역이었다. 여학생들만 있는 중, 고등학교에서는 일주일에 두어 번 있는 체육 시간조차 자습으로 쉽게 대체되곤 했다.

정말이지 나의 어린 시절에는 몸을 움직여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머나먼 영국에서 40살 먹은 애 엄마가 공원에서 킥보드 타다가 넘어져 다치고는 참 잡념과 변명이 많구나 싶다.


손이 다 나으면 계속 킥보드를 타 봐야겠다. 뇌는 가소성이 있다 하니, 자꾸 반복하면 나의 뇌 안에서도 새로운 운동신경 연결망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몇 번이나 시도해 보았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던 자전거 타기는 어떨까?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꼭 해 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내 안으로 들어가는 글들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