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정자씨 이야기(2)
엄마의 품 같은 바다 — 정자씨의 기억
1939년, 정자씨는 강원도 바닷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몇 채 되지 않는 집들, 소금기 어린 바람, 모래 위를 밟는 조용한 발자국 속에서 다섯 식구가 살아갔다. 삶은 궁핍했지만, 마음만은 늘 따뜻했다. 병약한 아버지는 가족의 식탁을 위해 낚시로 잡아 올린 생선을 말없이 집으로 들고 왔고, 어머니 곁으로 다가가 불을 지피며 밥을 짓는 어머니에게 조심스레 생선을 내밀던 아버지의 뒷모습은, 정자씨가 인생의 고비마다 떠올리는 가장 다정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늘 정 많았던 오빠와 함께한 소소한 순간들 또한 지금까지 그녀 마음을 부드럽게 감싼다. 말없이도 마음을 나누던 부모의 온기가 집안을 지켰다. 식량은 늘 넉넉하지 않았고, 어린 시절의 허기는 이웃의 어업을 거들며 겨우 채워지곤 했다. 궁핍 속에서도 평온한 공기가 흘렀다. 아마도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있었던 가족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오빠는 외지로 나가고 싶은 마음을 여러 번 품었지만,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에 발목이 붙들렸다. 병든 아버지를 두고 떠날 수 없었던 오빠를 정자씨는 안타까워하면서도, 그의 마음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봄이면 그녀는 친구들과 들에 나가 쑥과 냉이를 캐며 자연의 기쁨을 누렸고, 여름이면 바닷가에 밀려온 해초를 줍고 까르르 웃곤 했다. 잔잔히 밀려오던 바다는 늘 엄마의 너른 품 같았다. 그 바다는 오늘날에도 그녀 마음 안에서 잔잔히 출렁이며 살아 있다. 부모의 품, 마당의 따스함, 들창 너머로 스며드는 바람 소리- 모든 감각은 지금도 그녀에게 ‘살아가는 힘’으로 되살아난다.
이 기억들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었다. 지금 정자씨가 남편을 돌보고, 자신의 건강과 삶을 관리하며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은 바로 그 어린 시절의 추억과 연결되어 있었다. 부모와 가족으로부터 배운 섬세한 배려, 작은 일에도 의미를 담아 삶을 꾸리는 태도, 어려움 속에서도 평온함을 잃지 않는 힘- 모든 것이 지금 그녀의 하루하루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곤궁했지만 평화로웠던 정자씨의 어린 시절은, 6.25 전쟁의 포성과 함께 허망하게 끝나버렸다. 어느 날 갑자기 마을에 울려 퍼진 폭음은 부모의 부재와 상실을 알리는 비극의 문이 되었다. 부모님은 전쟁 중 세상을 떠났고, 세 남매는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었다. 슬퍼할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은 텅 빈 세상 속, 어린 정자씨와 남매들은 당장 살아야 했다. 학교에 다닌 시간은 고작 2년 남짓. 배움의 시간보다 더 시급한 것은 끼니를 확보하고 목숨을 이어가는 일이었다.
세 남매는 뿔뿔이 흩어졌다. 어린 정자씨가 선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길은 남의 집살이였다. 가정부로 들어가 이집 저집을 떠돌며 하루하루를 이어갔다. 자신만의 공간은 어디에도 없었다. 새벽이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허드렛일을 하고, 밤이면 방 한구석에 웅크린 채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 나이의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크고 무거운 세월이었다.
한참 뒤, 오빠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자, 동생들을 불러 함께 살게 되었다. 그러나 가족의 품이라 기대했던 그곳은 또 다른 긴장의 자리였다. 올케의 눈빛과 말투 속에서 ‘시누이’라는 이름은 늘 불청객처럼 느껴졌고, 정자씨는 조용히 숨을 죽이며 살아야 했다. 피붙이 곁에서도 편히 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녀는 다시 혼자만의 길을 선택했다.
정자씨는 서울의 한 개인 의원으로 들어가, 가정부 겸 조무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공식적인 자격이 없었기에 병원에서는 다양한 일을 도맡아야 했고, 심지어 병원 식구들의 식사까지 준비하고 설거지했다. ‘휴일’이라는 말은 그녀의 사전에 없었고, 쉬는 시간은 겨우 몇 시간의 잠뿐이었다. 하루는 쉼 없이 이어지는 노동의 연속이었지만, 그녀는 묵묵히 견뎌냈다. 기댈 곳도, 하소연할 사람도 없었지만, 정자씨는 날마다 자신의 자리에서 조용히, 스스로 발걸음으로 세월을 조금씩 채워가며, 삶을 일구어갔다.
이어진 사별 경험
서울 중심 한복판,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한 병원에서 일한 지 15년이 되던 어느 날이었다. 점심시간, 정자씨는 평소처럼 원장의 식사를 챙기고 병원 살림을 정리하고 있었다. 익숙한 풍경 속에서 갑작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원장이 식탁 앞에서 힘없이 쓰러진 것이다. 의식이 남아 있던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혈압을 재달라는 마지막 요청이었다. 측정기의 눈금이 치솟는 것을 보던 그는, 마지막으로 짧게 물었다.
“얼마야?”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머리는 조용히 앞으로 떨어졌다. 되돌릴 수 없는 순간이었다. 죽음은 말 그대로, 그렇게 삶을 낚아챘다. 몇 달 전, 그녀는 오빠의 죽음도 마주해야 했다. 장남으로서 책임감을 짊어지고 살아온 오빠였다. 어린 시절부터 병든 아버지를 대신하며 삶의 무게를 견뎌왔고, 떠나고 싶은 마음을 품으면서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머물렀다. 결혼 후에는 사업에 전념하며 살아왔고, 이제 막 안정 궤도에 들어선 시점이었다. 그런데 출장 중,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그는 세상을 떠났다. 과로사가 남긴 빈자리와 허망함은 정자씨의 마음 깊이 박혔다.
연달아 두 사람의 죽음을 목격한 정자씨는 뼛속 깊이 깨달았다. 삶과 죽음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그녀가 믿고 살아오게 한 단순한 원리가 선명하게 다가왔다.
‘인생, 한 방에 끝난다.’
그 깨달음은 그녀 삶의 규칙이 되었다. 더 이상 내일을 기약하지 않았다. 대신 오늘을 온전히 살아냈다. 순간을 놓치지 않고, 시간의 흐름 속 그 자리에 자신을 두는 것. ‘충실히 산다’라는 말은 이제 어떤 위대한 성취가 아니라, 그날 하루를 곱씹고 바라보는 일상이 되었다. ‘순응’이라는 단어는 체념이 아닌, 세상의 흐름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지혜였다.
부모와 오빠의 죽음을 졸지에 겪은 후, 정자씨의 삶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죽음은 더 이상 멀리 있는 그림자가 아니었다.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그녀는 욕심을 줄이고, 하루의 소소한 순간들 속에서 깊이를 느꼈다. 아침 해가 창문 너머로 스며드는 순간, 늦은 오후 공기 속 먼지 하나하나까지도 놓치지 않았다.
정자씨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그것은 매 순간을 살아가겠다는 결심이었다. 오늘을 온전히 살아내는 일이 내일의 죽음을 준비하는 길임을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죽음은 삶을 더욱 선명하게 보이도록 했고, 매 순간 충실히 살아가는 힘이 되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제 ‘불안’보다 ‘감사’가 더 자주 들렀다.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꾸려가는 일상, 그 속에는 힘든 세월을 관통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