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스 너머 100%

영화 <머니볼>_리무 고도근시안경

by 리무

혹자는 ‘자신감’이던 ‘자기 확신’이던 그게 다 같은 거라 한다. 하지만 명백하게 따지고 싶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감은 자기 확신에서 태어난다고.


이러한 말의 ‘확신’은 어젯밤 영화를 보기 전 3분간 전자레인지 열기에 한껏 부풀어지던 팝콘을 바라볼 때 생겼다. 걔들은 줏대도 없이 마이크로파가 흔들어 댄다고 흥분의 열기로 펑펑 잘만 부풀어 터지더랬다.


그런데 그중 터지지 못한, 단단하다 못해 이가 나갈 것 같은 아주 딴-딴한 옥수수 알갱이들이 있었다. 팝콘이 되는데 실패한 옥수수 알갱이. 실패한 알갱이. 실패한 빌리.

"빌리처럼 5박자를 갖춘 이런 선수는 드뭅니다"

"빌리는 슈퍼스타가 될 자질이 충분합니다"

"빌리를 영입하고자 하는 금액입니다“

...


소금 간도 쳐지지 않아 순수한 맛만 가득했던 옥수수 알갱이 시절, 빌리는 뜨겁던 타인들의 확신으로 지지고 볶아졌다. 하지만 3분이 지나도, 3일이 지나도, 3년이 지나도... 빌리는 맛있는 잭팟을 터트리지 못했다.


반짝하던 루키는 열기에 빛이 바랬다. 반짝임은 퇴색되고, 아무리 갈고닦아도 모양새가 나오질 않는다. 실패한 옥수수 알갱이는 뻗대듯이 그냥 단단하기만 하고 유니폼에 배어 들은 땀 냄새는 왠지 모르게 퀴퀴함을 넘어 탄내까지 나는 것만 같다. 수많은 토닥임이 모이다 보면 어떤 타격감으로도 작용하는 법이다. 하지만 빌리는 내색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마모된 자신을 솔기로 꿰맬 뿐이다.


늠름한 어깨에는 썩 어울리지 않는 웅크려진 자세로 바느질을 98번 꿰맸을 즘에 빌리는 그간 탄내의 원인을 발견하게 된다. 알맹이가 썩어있었다. 새까맣게.


확신은 전염된다. 남이 함부로 짓는 확신은 특히 쉽게 전염된다. 하지만 나의 의심이 시작된 순간 그것은 쉽게 썩어버린다. 썩고 타버린 확신에서 자신감이 태어날 확률은 없다. 빌리는 거의 다 꿰맨 솔기를 구태여 헤집어내어 썩고 타버린 알맹이를 꺼내본다. 퀴퀴한 그것을 오른손에도 쥐어보고, 왼손에도 쥐어본다.

사실, 빌리는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나의 확신은 0에서 99%, 그 어디쯤이었단 걸. 그 어디쯤을 맴돌 때마다 성장했다는 핑계로 잔뜩 부풀어진 어깨와 가슴, 동작들은 모두 잘 다듬어지지 않은 나무배트의 작은 가시 하나에도 펑 터져버릴 유약한 ‘부풀림’이었단 걸. 사실 나는 이 알맹이를 빼버린 자리에 웅크려진 자세로 고요히 박혀 있을 때가 이제껏 삶 중에 가장 안락한 자세란 걸.


하지만 그중 제일 중요한 사실은 저기 돌직구로 내게 날아 들어오는 저 동그란 알맹이, 저 공, 바로 저 야구공. 나는 야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사랑의 응답을 받고 싶다면 상대를 닮아가는 방법밖에 없다. 빌리는 던져보기로 한다. 더욱이 내가 사랑하는 방식을 누군가에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빌리는 또 던져본다. 투수가 공을 던지지 않으면 경기는 진행되지 않는 것처럼. 빌리는 그냥 던져본다. 퀴퀴한 잿가루 뭉치와도 같은 이것은 던질 때마다 손에 묻어나지만 제구 잡기엔 오히려 제격이다. 던지면 던질수록 바람을 가른 알맹이는 쉬이 닳지 않는다. 공기를 머금은 확신이 차오르고, 흙먼지처럼 굳은살이 달라붙는다. 이를 털어내지 않는 건 늘 한발 빠르게 새치기하는 의심을 가로막을 수 있는 확신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증거는 쌓이고 쌓여 여러 겹의 표피층이 되고 99.9% 확신의 모양새에 도달한다. 마무리로 108번째의 솔기를 꿰매주면 속이 꽉 찬 알맹이는 모르는 새에 저 펜스 너머로.

누끼_야구선수_03.png

저 멀리 날아갔다는 것도 모른 채 또다시 구장 한구석 웅크리는 빌리. 빌리의 딸은 아빠의 둥글게 말린 어깨와 등을 따라 작은 두 손바닥으로 장난스럽게 박자를 팡팡 두드린다.


“아빠는 루저야~아빠는 루저야~”


딸의 장난에 슬며시 고개를 들자 하늘에 그려진 포물선의 흔적을 빌리는 목격한다. 흔적의 끝에 다다른 순간 그의 입꼬리 끝이 0.1cm 올라갈 때, 펜스 너머 떨어져 살짝 찌그러진 야구공은 그제야 비로소 부풀어 오른다.


100%.


최종.jpg 유남생의 창작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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