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티(ti-ti)의 안부 메시지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_리무 고도근시안경

by 리무

나는 가끔 열 손가락을 넓게 펼치고 내 장례식장에 올 수 있는 친구들은 과연 몇 명일까? 세어볼 때가 있다. 이런 엉뚱한 생각은 희한하게도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을 때, 그럴 때 꼭 떠오른다.


걸어갈 때, 지하철을 탈 때, 버스를 탈 때, 비행기를 탈 때, 혹은 크나큰 유람선을 타고 꼬부랑글자 나라의 낯선 바다를 건너갈 때. 꼭 그럴 때 말이다. 죽음이란 건 갑자기, 언제든지 찾아오는 것이기에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걸까? 갑작스러운 것들은 멈춰있을 때 찾아오지는 않기에 꼭 내가 움직이고 있을 때만 이런 엉뚱한 생각이 떠오른다.


하여튼 난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을 때 나의 장례식장에 찾아올만한 친구들을 한번 세어본다. 생각보다 단번에 “티티! 얘는 무조건 오지!” 자신 있게 외치게 되는 이름은 몇 없다.


나 혼자 왠지 모르게 좀 허무해지고, 괜히 서운해진다. 혼자서 멀리 가버린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의 기원을 찾기 위해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고등학교 졸업식이라는 또렷한 시작점이 나온다. 교복 조끼라는 구명조끼를 학교에 반납하고, 졸업 꽃다발을 하나씩 쥐고 교문 앞 폭포에 나와 내 티티들은 한 명씩 떨어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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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지는 건 똑같았지만 어떤 박티티는 작은 구명보트에 착지했고, 어떤 이티티는 유람선에 착지했다.

반면 아무것도 마련치 못했던 나는 물만 많이 먹었다. 겁은 덤이었다. 나무판자 한 토막 겨우 끌어안고 둥둥 떠내려가다가 겨우 당도한 방구석이라는 박스 안에서 엄마 밥을 먹으며 나는 한동안 열심히 식빵을 굽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등 따숩고 배도 부른데 나의 안락한 박스 모서리 한쪽이 우그러진 걸 발견했다. 젠장. 우그러짐은 현재진행형이었다. 점점 젖어가다가 이내 찰랑찰랑. 흘러넘쳤다. 콧속으로 끝도 없이 들이켜졌다. 나는 익사하기 직전 이티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티티, 지금 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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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곤 곧장 두터운 코트 단추를 채워 9번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어쩜 불안에 항상 젖어있는지도 모른다. 불안의 썰물 시간대에 식빵 굽는 자세로 햇볕에다 불안을 말리다 보면, 다 말릴 때쯤 불안은 어느새 밀물처럼 다시 우리를 흠뻑 적신다.


따사로운 볕에 말린다고 불안이 소멸하는 게 아니라면 그럼 결국 헤쳐 나아가야만 하는 것인가. 이런 자문자답에 확신을 갖게 된 건 나와 얼룩무늬가 다른, 당시 4개월 차 신입사원 김티티가 지난해 초겨울 내뱉은 엉뚱한 생각 덕분이다. 우리는 2년 전만 해도 최티티의 작은 박스 안에서 매일 만났다. 최티티의 고양이들을 어루만지며 마음속 일렁이는 것들을 툭툭 내뱉고 웃음으로 흘려보냈다. 그리고 2년 후 우리는 그 일렁임 속으로 발을 적실 수밖에 없었다.


졸업 후 각자의 유속은 더 이상 같을 수 없다. 멀어짐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불안도 더 이상 장난스레 툭툭 내뱉을 수 없다. 꾹 머금어 내는 법을 택할 뿐이다. 하지만 그해 초겨울은 달랐다.


나와 티티는 조계사 앞 사거리를 걸어가는 중이었다. 행색이 남루한 노숙자가 갑자기 불쑥 우리 앞을 가로막고 놀래켰다. 어버버하던 우리는 이내 하늘로 솟구친 서로의 털을 매만져주었다. 그리고 티티는 정말 오랜만에 툭 내뱉었다.


“나도 저렇게 될까 봐 무서워”


네가 왜? 라는 말보다, 너도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구나. 라는 말이 떠올랐다. 엉뚱한 생각은 쪽지를 들이미는 것과 같다. 나는 그것이 티티의 안부 메시지일 것이라 확신했다. 우리는 걷기로 했다. 엉뚱한 생각은 움직일 때만 나기에 조계사부터 혜화역까지 43분 동안 쉴 새 없이 툭툭 내뱉었다.


지난해 초겨울 43분은 그냥 흘러가지 않았다. 43분의 길에는 분명 우리가 내뱉은 무수한 부스러기들이 떨어져 있었다. 언젠가 그 부스러기들은 일렁임 속의 부표가 되어 두둥실 떠오를지도 모른다. 아마 또 다른 폭포를 만나 그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면 그때의 나는 떠내려가기보단 과거의 부표를 끌어안고 물장구를 치며 헤쳐 나아갈지도 모른다. 나의 티티들도 분명 그럴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가끔은 이런 메시지도 핸드폰 화면 속에 떠오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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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티티, 나는 네가 도끼로 사람을 찍어 죽였다고 해두. 네 편이야! ‎ฅ^•ﻌ•^ฅ


최종.jpg 유남생의 창작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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