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을 전공하셨다고요? [2]

4년간 대학원에서 농담을 연구하며

by 울맹

처음부터 연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나요?


이공계는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인문계열의 많은 대학원생들은 연구 주제 설정 때문에 머리가 많이 아프다. 그런 면에서 나는 연구 주제가 비교적 빨리, 또 순조롭게 정해진 것 같다. 하지만 첫 학기부터 논문을 쓸 수는 없었다. 사실상 주제의 키워드만 정해진 것이지 막상 학문에 대한 내공은 학사 수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은 한 학기를 다녀보면서, 수필처럼 쓰는 내 글쓰기를 손보기 시작했다. 학술적으로. 대학원에 입학한 첫 학기에는 전공 교재 이외에 학부생 때 공부했던 책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Hall)의 저서매체 철학자인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의 저서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들은 학부생 때 신문방송학을 부전공 하면서 알게 된 책들인데 왠지 모르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다시 손이 가더라. (결과적으로 봤을 때,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물론 새롭게 산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도 착실히 읽어나갔다.


이 시기에 내가 읽고 있는 학술적인 책들의 논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머리가 쪼개지는 기분을 경험했다.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고통이었다. 왜냐하면 그동안 읽은 책들은 쉽고 친절한 표현으로 그 이면의 맥락을 웬만큼 몰라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어렵지 않았던 반면, 학술적인 글은 연구자의 논리와 학계에서 통용되는 개념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다면 애시당초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 대체 뭔 소릴 하는 거야."

"근데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지?"

"짜증나네~"


대학원에 다니면서 혼잣말이 느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힘들긴 해도 못할 일은 또 아니라, 한 학기를 보내고 두 번째 학기까지 거침없이 찾아왔다.

나는 두 번째 학기부터 논문 지도 수업을 들었다. 이때 나의 포부는 이랬다.

매클루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 감각의 확장은 모두 매체라 볼 수 있다.
음성 언어는 생각이라는 실체적인 감각의 확장이다.
농담은 음성 언어다.
따라서 농담을 매체로 보는 것은 무리가 없다.
그런데 예술 작품은 매체를 매개로 감상자들에게 드러난다.
그렇다면 농담이라는 매체를 예술 작품으로 볼 가능성이 생기지 않을까?
이쪽으로 연구를 해 봐야겠군.

그리하여 위의 내용을 바탕으로 논문 지도 수업을 듣기 위한 계획서를 작성했다.

우리 연구실은 개별 지도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지는 않았다. 보통 4~5명의 학생이 모여서 자기 과제를 발표하는 식이었다. 지도교수님의 제자에는 철학과 학생과 인문카운슬링학과 학생이 섞여 있었다.


첫 번 째 논문 지도 수업 날,

학생들은 차례, 차례 준비한 발표문을 읽었고 피드백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 내 차례가 왔다.

나는 내가 공부한 학자들의 주장을 근거로 농담에 대한 연구 계획가 내 생각을 발표했다.

이 연구 주제에 호기심을 가지는 사람이 한, 둘. 관심이 없는 사람도 한, 둘.

다행이랄까, 지도 교수님은 앞으로 어떤 글을 써 올지 좀 더 지켜볼 예정이신 것 같았다.

다른 대학원 동료들이 준 피드백을 수용하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연구할 것인지 방향이 점차 구체적으로 되는 것 같았다.


수업이 끝나고 다들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석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던 철학과의 모 학생이 내게 다가왔다.

자신은 곧 학위 논문을 제출해야 하니 개별 지도를 받겠다고 선언한 학생이었는데,

그 때문에 처음 봤음에도 꽤나 독특한 인상을 남겼다.


그 학생은 후에 나 역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예술철학자인 아서 단토(Arthur Danto)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었다.


"아까 들어보셔서 아시겠지만, 단토의 이론에 따르면 농담은 절대 예술이 될 수 없을 거 같은데요. 농담에는 예술계(Artworld)가 없잖아요."


오잉! 이건 또 무슨 소린가. 그는 내게 필요한 연구 조언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진지하지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비아냥 댔던 것이다. 비꼬아서 생각한 건 아니다.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그는 다른 학생의 발표 자료는 그대로 챙겨가면서 내 발표 자료만 나에게 돌려주는 것이 아닌가? 주변에 나만 있었던 것도 아닌데!

내 나름의 근거를 들어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하려고 하자,

그는 썩소를 지으며 나를 지나쳐갔다.


맙소사 이런 굴욕이.


KakaoTalk_20250108_171126205.jpg 센스 고장!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당시에 엄청 분개했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자리에서 그러진 못했지만)


오케이 알겠다. 아서 단토라고 했지.


마침 내 발표를 흥미롭게 들어주셨던 박사과정 선생님도 석사학위 논문을 단토로 쓰셨었다. 뭔가 명분이 점차 쌓이는 것 같았다. 그래, 단토를 공부하자! 이때 농담을 예술로 보기 위한 예술철학적 관점은 단토를 따르기로 결심했다. 본격적으로 단토의 저서를 읽기 시작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지만 말이다.


연구를 할 땐, 종종 이런 직감이 잘 들어맞을 때가 있다.

신문방송학과 전공 교재를 읽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가 그랬고,

단토를 공부하기로 결심했을 때도 그랬다.


반박시 네 말이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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