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대학원에서 농담을 연구하며
대학원에 입학하기 전까지 논문이라는 건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었고 써본 적도 전혀 없었다. 당연히 연구라는 것을 해본 적은 아예 없었다. 이런 맥락에서 하나 언급해 보자면, 입학시험 중 구술 면접을 볼 때 이런 질문이 들어왔다.
"연구 계획서를 보면, 상당히 빈틈이 많아 보이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나요?"
"아, 제가 연구를 해본 적이 없어서... 앞으로 열심히 보완해 보겠습니다."
지금이야 이때를 돌아보면 내가 대학원에 갈 준비가 덜 됐다는 사실이 보이지만, 이 당시에는 살짝 황당했던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하기 위해 대학원에 왔는데, 연구 계획서를 제출하라니. 뭔가 순서가 거꾸로 된 것 같다고 느꼈었다.
아무튼 운이 좋게도 (여기서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합격했고 연구를 하는 상황이 다가왔다.
학부생 때 지도교수님에게 졸업 상담을 받으면서 이런 질문을 했던 적이 있다.
"앞으로 저도 논문을 써야 할 텐데, 추천해 줄 만한 책이 있나요?"
"이 책이 초보 연구자에게 도움이 될 거예요."
그때 추천해 주셨던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세 번 정도 읽은 것 같다. 초보 연구자가 연구 주제를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하는 것부터 이를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 주의해야 할 사항 등 친절하고 세부적인 설명이 많아 도움이 되었다. 이를 토대로 내 연구 노트의 첫 장을 작성했다.
1. 주제 : 나는 농담의 지위가 단순히 희극적인 것에서 예술의 지위로 격상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2. 개념적 질문 : 왜냐하면 우리가 예술을 통해 자기 극복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농담을 통해서도 이와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3. 개념적 중요성 : 예술에 대한 접근이 다소 떨어질 수 있는 대중들에게 상대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활로가 있다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서이다.
4. 잠재적 실용적 적용 : 우리 자신이 농담을 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됨으로써 <회복탄력성>을 높일 수 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학위 논문에 활용하는 개념과 표현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큰 틀에서는 끝까지 잘 유지해 나간 것 같다. 그만큼 <학술 논문 작성법>의 조언은 연구의 초기 토대를 다지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말하면, 대학원 두 번째 학기 중반 즈음에 앞선 글들에서 언급했던 프로이트와 결별했다. 정확히는 프로이트를 농담 이론과 연결하는 것이 맞지 않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그럼으로써 프로이트의 이론은 내 연구의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밀려났다.
간단히 언급하면 프로이트의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는 사실 농담에 대한 글이 아니었다. 이 책은 농담이 아니라 Witz(비츠, 영어로는 wit)에 관한 분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원문으로 된 제목 <Der Witz und seine Beziehung zum Unbewussten>을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즈음 나는 연구를 발전시키며 위트와 유머가 서로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고, 나아가 위트와 농담은 다른 것이고 유머와 농담도 다른 것이라는 주장으로 발전시켰다.
처음에는 단순히 농담을 연구할 때, 개인의 무의식에 대해 다루고 싶지 않아서 프로이트를 멀리하려고 했었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정신분석학)에 의존하면서 자꾸 주장에 논리적 비약을 일으키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담 연구의 출발점이 된 책이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여서 참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다 원서에서 의외의 돌파구를 찾게 되었다. 이 돌파구는 이후에 학위 논문을 작성할 때까지 쭉 이어진다.
연구란 정말 신기한 것 같다.
처음에 영감을 주고 연구를 발전시킬 동력을 제공했던 아이디어가,
나중에 가서는 결별해야만 하다니!
아니면 원래 영감이라는 게 그런 걸까?
막, 덜 구체적이고 추상적이면서 어떻게 될지 모를 가능성을 불어넣는?
반박 시 네 말이 맞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