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e ya, New York!

퇴사 후 뉴욕에서 1년살기, 그 400일간의 기록(2)

by 김애정
IMG_0348.JPEG 하이라인 위에서 바라본 맨하탄 거리


/준비과정/


일단 한국에서 미국 무비자 입국은 90일이 최대이다. 나처럼 일 년 이상 체류를 생각하고 있다면 방법은 두 가지이다. 취업비자와 학생비자. 취업비자는 받기도 어려울뿐더러 일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학생비자가 필요했다. 학생비자는 말 그대로 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체류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식 학교나 학원의 등록이 필요하다. 학생비자로 미국에 다녀온 지인이 내 주변에는 없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없었다. 인터넷을 찾아봐도 유학원 광고뿐 이었다. 그렇게 정보도 없고 귀찮았던 나는 유학원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유학원의 도움을 받으면 편하다. 모든 절차와 비자, 숙소의 옵션을 제공해 주는 것은 정말 큰 장점이다. 특히나 비자 같은 경우는 도움을 많이 받았다. 여성이 20살 후반, 특히나 나처럼 30살이 넘어서 학생비자를 받는 것은 의심의 대상이다. 위장취업이나 영주권을 목적으로 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유학원에서는 그 점을 강조하며 지금 회사를 다니고 있을 때 얼른 비자 신청을 해서 회사에서 1년 연수를 보내주는 것으로 하라고 도움을 주었고, 결과적으로는 성공이었다. 나는 실제로 1년만 있다가 돌아올 것이었기 때문에 거짓 증언(?)의 죄책감은 없었다. 또한 모르는 땅에서 인터넷으로만 집을 찾는 것은 힘든 일 일 수 밖없다. 뉴욕을 가본 적도 없던 나는 도대체 어디서 집을 구해야 하나 막막했다. 그때 유학원에서 몇 군대의 집을 소개해 주었고, 유학원을 통하여 하였기 때문에 렌트 사기의 가능성도 줄일 수 있어 안심이었다.


반면 단점은 정보를 가진 자는 내가 아닌 유학원이기 때문에 유학원의 말만 들을 수밖에 없고, 약간의 바가지를 쓸 수밖에 없다. 유학원에서는 유학원에서 연결된 좋은, 다시 말하면 비싼 학원을 추천해 준다. 두 달 치 학원비가 대학교 등록금 만큼이나 비쌌지만 나는 뉴욕의 어학원은 다 이 정도 하는 줄 알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뉴욕에 어학원은 너무도 많았고, 내가 다니던 학원의 반값, ⅓ 값을 하는 학원도 허다했다. 물론 처음에 비자를 받 을때는 어느 정도 공인된 학원을 다니는 게 중요하다. 처음부터 너무 이름이 없거나 저렴한 학원을 처음부터 등록하고 가면 비자 발급 시 의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사실 다녔던 어학원 자체에는 만족했다. 나는 정말로 어학공부도 하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내가 등록한 어학원은 교육의 질도 좋았고 각종 프로그램이나 시설도 좋았기 때문에 잘 적응하고 다닐 수 있었다. 다만 처음부터 몇 달 치를 한꺼번에 등록하기보다는 3개월 정도 등록을 해보고 현지에서 적응하며 다른 학원도 알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대망의 비자 인터뷰날, 진짜 학생이 아닌 경우 의외로 비자 발급이 거부되는 케이스가 왕왕 있다는 걸 들었기 때문에 긴장이 됐다. 어쨌든 미국을 상대로 을의 입장이었던 나는 유학원의 말대로 화장도 덜 진하게 하고 옷도 수수하게 입고 갔다. 최대한 아침 일찍 가는 게 좋다고 하여 제일 빠른 시간으로 예약을 하였다. 오후 늦게 가는 경우 심사관들이 피곤해서 기분도 안 좋고(말도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심리학적으로 증명된 바 이다.), 모든 사람에게 비자 발급을 해줄 수 없기 때문에 오후에 가면 일부러 몇몇 사람에게는 비자 발급을 안 한다고 하기도 하였다. 모든 게 준비는 되어있었지만 면접관 앞에 서니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옆에 진짜 학생은 1분 만에 비자를 받고 떠났지만 가짜 학생(?)인 나는 옆 사람이 네 번 바뀔 동안 질문 공세를 받아야 했다. ‘나이가 몇이야?’, ‘결혼했어?’, ‘최종학력은 뭐야?’, ‘언제 졸업했어?’, ‘무슨 일해?’, ‘영어 공부 왜 하려고 하니?’, ‘직장 그만뒀니? 등등.. 떨리는 목소리를 꾹꾹 누르고 ‘현재 미국 회사에서 일하기 때문에 영어가 필요합니다,Sir. 직장은 일 년 휴직 예정이며, 영어 공부해서 승진하고 싶습니다,Sir.’말끝마다 ‘Sir’을 붙여가며 호소한 결과 한국 직장에서 평범한 직장인이 일 년 휴직을 하는 건 불가능 한 일이라는 걸 모르는 순진한 미국 면접관은 나에게 비자를 안겨주었다. 그렇게 가짜 학생과 순진한 미국 아저씨의 결판이 끝난 것은 6월 말이었다. 9월에 비행기 티켓을 이미 예매해 놓은 상태였던 나는 비자 승인을 받음으로써 모든 준비가 끝났었다. 이제 나에게 남은 건 퇴사였다.


7월이 시작하고 두 달 전, 퇴사를 통보했다. 두 달 동안 열심히 일을 마무리하고, 후임도 뽑고 인수인계도 하고 그동안 틈틈이 뉴욕에서의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퇴사가 쉬웠던 것은 결코 아니다. 대기업은 아니었지만 내가 회사에 몸담고 있던 시절, 한참 잘나가던 회사는 연말이면 한 번에 들어오기에는 꽤나 큰 액수를 넣어주기도 하던 곳이다. 나름대로 안정적인 곳이었고, 나이가 들 수 록 오래 다니기에도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지금 일을 그만두고 뉴욕에 다녀오면 더 좋은 곳에 취직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는 나는 뉴욕을 다녀오기 전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고, 물론 고민은 있지만 더 만족스러운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내 계획을 말했을 때 주변에서 ‘대단하다’, ‘멋지다’라고 말해준 친구들도 있지만 나를 은근히 철없다고 말하거나 진심으로 걱정해 준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의 큰 장점 중 하나는 주변 사람들 말에 별로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고 그때 생각난 말이 있다. ‘되는 사람은 항상 된다고 해. 안되는 사람만이 안 된다고 하지.’


마음이 편하니 두 달이라는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8월 말 퇴사. 9월 중순 출국은 앞두고 2주라는 시간 동안 남은 필라테스 회원권도 악착같이 소진하고, 하루에 약속을 두 탕씩 잡고, 그 와중에 짐까지 싸며 초월적인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가족과의 추석 모임을 마지막으로 9월 13일 미국, 뉴욕으로 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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