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e ya, New York

퇴사 후 뉴욕에서 일년살기, 400일간의 기록(3)

by 김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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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의 첫 날/


14시간의 비행끝에 뉴욕에 도착한 나는 ‘내가 정말 뉴욕에 온건가? 말도안돼!!’ 를 속으로 외쳤지만 겉으로는 뉴요커인척, 쿨한척 비행기를 빠져나왔다. 미리 예약해두었던 픽업서비스를 이용하고 새로운 나의 집으로 도착했다. 나의 뉴욕 집은 Upper west side 에 위치해있었다. Downtown과는 조금 떨어져있었지만, 그 덕분에 너무 소란스럽지 않고 쾌적한 거주환경이었다. Upper west side는 조금, 아니 꽤나 부유한 사람들이 사 는 곳이라 주변에 없는 것이 없었다. 큰 마트, 영화관, 체육관 모든 것이 주변에 있었고, 무엇보다 센트럴파크와 허드슨강을 도보로 갈 수 있는 매력적인 곳 이었다. 여기서, ‘나의 뉴욕 집’ 이라는 말은 상당히 어색하게 들리는 말이다. ‘내집’도 아닐 뿐더러, 집은 더더욱 아닌 방 한칸이 전부인 공간이었다. 내가 묵었던 곳은 여성전용 레지던스로 외부인의 방 하나씩이 주어지고 화장실과 주방을 공유해야하는 곳 이었다. 다양한 이민자들,학생들 혹은 미국 다른지역에서 뉴욕으로 일 하러 온 여성들이 있던 곳 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내 방에 30분만에 짐을 풀고보니 다음으로 할 일이 없었다. 짐을 풀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앞으로 내 뉴욕생활이 어떻게 흘러갈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갑자기 외로움이 밀려왔다. 이제부터 일년동안 나는 이 낯선 도시, 뉴욕에서 혼자였다.


배고픔이 외로움을 이기기 시작할 때쯤, 밖으로 나가서 일단 동네구경을 했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다들 바삐 움직이고 있는데 나만 갈 곳이 없어 보였다. 일단 천천히 사람들 구경을 하며 걷기 시작했다. 걷다가 발견한 곳은 ‘Luke’s Lobster’라는 랍스터 샌드위치를 파는 식당이었다. 들어가니 젊은 동양남자가 보였다. 왠지모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샌드위치를 주문했는데 들려오는 말. “!@#$#%$%^^$^@#$@~?” 내가 이해 한 것은 그 말이 의문문 이었다는 점 정도였다. 동양인이라고 무례하게 기대치를 낮춰놓고 리스닝 가드를 내려놓고 있었던 내 탓 이었겠지만, 그렇게 나는 뉴욕과 조금 더 멀어졌다. 뉴욕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 까지 끝내 내가 알아듣지 못한 말은 그 직원의 말과 뮤지컬 알라딘의 대사 뿐이었다. 그렇게 눈물의 랍스터 샌드위치를 먹고 뉴욕에서의 첫 날이 지나갔다.




/브루클린 다리 위에서 인연을 만나다/


‘이번 주말에 브루클린 가려는데 같이 갈래?’ 어학원 친구들이 물어봤다. 아직 브루클린에 한 번도 못 가본 터라 좋다고 승낙하였다. 그리고 토요일. 친구들과 함께 브루클린 브리지 위를 걸었다. 말로만 듣던 Brookyln Bridge! 근데 문제는? 사람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분명 사람 한 줄, 자전거 한 줄이 되어야 맞는데 다른 사람들에 치이던 사람들은 자전거 통행 도로를 너 나 할 것 없이 침범하였다. 걸으며 사진을 찍은 관광객들과 자전거를 끌고 다니는 뉴요커들이 뒤엉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나도 질세라 눈치싸움을 하다가 한껏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몇 장 건졌다. 그리고 열심히 다리를 건너서 드디어 브루클린에 도착했다. 브루클린은 꽤나 넓은 곳이다. 하루에 다 돌 수도 없었을뿐더러, 우리의 목적은 피자였다. 브루클린에는 유명한 피자집이 두 개 있다. 하나는 그라말디피자, 다른 하나는 Juliana’s 라는 곳이다. 원래 더 유명한 곳은 그라말디 피자집이다. 몇 해 전 백 선생님이 Juliana’s를 다녀가며 줄리아나스도 한국인에게 많이 알려졌다. 그라말디 피자집에 도착했는데, 줄이 꽤나 길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 없어서 한참을 서서 이야기를 하며 기다렸고, 그 맛은 뭐, 괜찮았다. 괜찮게 피자를 먹은 우리는 공원을 조금 돌다가 헤어졌다. 그리고 집에 가서 나는 오늘 찍은 사진을 열심히 다시 보았고, 그중에서 잘 나온 사진을 다시 열심히 골라서 인스타에 업로드하였다. 그날 저녁, 처음 보는 아이디의 사람에게 DM이 왔다. ‘오늘 그쪽 봤는데, 인스타에서 찾게돼서 진짜 신기하네요. 언제 시간 되시면 식사하실래요?’ 낯선 사람에게 인스타로 DM이 오는 경우가 많지도 않지만, 간혹 오면 대부분 나는 답장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궁금증에 한 번쯤 상대방 인스타에 접속은 해보는데, 대부분은 다 비슷하다. ‘본인을 많이 사랑하시는구나.’ 하고 슬며시 창을 닫는다. 하지만 이 친구에게는 처음으로 답장을 보냈다.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가장 큰 이유는 이 친구의 인스타에 들어가 보니 직접 찍은 것 같은 뉴욕의 사진들이 쭉 있었는데, 사진의 느낌이 너무 좋아서 나쁜 사람일 리는 없다는 다소 순진한 생각을 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낯선 곳에 있다 보니 어느 정도 모험을 해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무슨생각이었는지 싶은데 그때 나는 상대방에게 나이도, 이름도, 직업도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로 만남을 승낙했다.


그렇게 Y와 맨하탄의 ‘Bae’라는 식당에서 처음 만났다. Y는 2세대 이민자로, Korean- American의 정체성을 갖고 뉴욕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나이를 물으니 나와 동갑이었다. 나와 동갑이라는 사실은 안 Y는 나에게 ‘말 편하게 하세요.’라고 했는데, 낯선 사람이랑 굳이 말 편하게 하는 걸 싫어하는 나는 ‘아니요, 괜찮아요.’라고 정중히 거절했다. 그런데 내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그럼 반말할게. 한국어로 존댓말 하는 건 익숙지 않아서.’ 라고 하는 Y에게 나는 약간 당황한 나머지 ‘나도 그럼 반말할래!’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우리는 만난지 5분도 안되어서 말을 놓는 친구 사이가 되었다. 나는 Y가 좀 묘하게 특이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Y야말로 내가 너무 신기하다고 했다. 자기를 뭘 믿고 나왔냐는 것이었다. 나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데 무슨 마음으로 나왔냐고 물었다. ‘내가 40,50대 아저씨였을 수도 있잖아?’ ‘내가 이상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잖아?’라고 했다. ‘음, 모르겠어. 그냥 예쁜 사진을 찍은 사람은 나쁜 사람일 리는 없다고 생각했어. 나이는 뭐, 여기 미국이잖아! 친구 사이에 나이가 뭐가 중요해!’라고 이상한 웃음을 지어보았다.


그가 나를 인스타에서 찾게 된 전말은 이러했다. 그는 취미로 사진을 찍는 아마추어 사진작가였고, 그날 브루클린 Juliana’s에 피자를 먹으러 갔다가 바로 옆집인 그라말디 피자집에 줄 서있는 나를 발견했다. 웬 동양인 여자애가 서양인들이랑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눈길이 갔다고 한다. 뉴욕은 워낙 동양, 서양인들이 많이 섞여있으니 그게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닌데 뉴요커인 그의 눈에는 내가 ‘너무 한국인’ 같아 보였다고 한다. 아무튼 그렇게 피자집 앞에서 나를 보았고, 그날 사진을 살펴볼 겸 인스타에 #Brookylnbridge라고 검색을 하였는데 낮에 본 너무도 한국적인 여자애가 눈에 띈 것이다. 내가 그날 올린 사진에는 피자집 사진이 없었기 때문에 피자집 앞에서 나를 봤다는 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이후로 Y는 아무런 친구가 없던 나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뉴욕의 구석구석을 소개해 주었음은 물론이고, 내가 뉴욕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함께 오프브로드웨이 연극을 보고 늦은 밤거리에서 할랄 가이즈를 나눠 먹기도 하였고, 뉴욕 최고의 야경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주기도 하였다. 명절에 가족과 떨어져 있는 나에게 떡국을 가져다주겠다며 손을 내밀어 주기도 하였고, 우리 언니들이 뉴욕에 놀러 왔을 때 기꺼이 먼저 언니들을 픽업해 주겠다고 말을 해주었다. 4시간 동안 드라이브를 하며 이야기만 하는데도 지루하지가 않았고, 서로에게 영어와 한국어를 가르쳐 주기도 하였다. 그를 뉴욕에서 만난 건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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