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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정 Aug 25. 2022

본격 비건 생일상 차리기

조금 더 이타적인 식탁을 지향하며


해가 갈수록 생일이라는 날이 더 이상 특별하게 느껴지지도, 설렘이 크지도 않은 날이 되어가는 것 같다. 이번 생일도 시작은 비슷하였으나, 지나고 보니 특별하게 느껴진다. 올해 처음으로 비건 생일상을 차렸다. 사실 ‘내가 차렸다.’라고 말하기에는 머쓱해지는데, 미역국은 엄마가 끓여줬고, 비건 잡채와 비건 만두는 가족이 다 같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매년 미리 미역국을 준비하는 엄마에게 혹시나 미역국을 끓여줄 거면 비건식으로 끓여달라고 부탁하였는데, 엄마는 ‘그럼 소고기 대신 홍합 넣지 뭐.’라고 말하여 논비건들의 비건 인식이 아직은 부족하다는 것을 다시금 웃으며 실감하였다.)


점심시간 즈음 본가에 모여서 비건 만두를 만들기 시작했다. 야채만두와 김치만두. 야채만두에는 부추, 당면, 두부만을 듬뿍 넣었고, 김치만두에는 거기에 김치를 추가했다. (사실상 작년에 만든 김치가 비건은 아니지만 엄마 김치는봐주기로 하자.) 그리고 만두를 할 때 같이 삶아놓은 당면에 버섯, 당근, 부추를 넣고 양념을 하여 잡채가 완성되었다. 거기에 베지 가든에서 시킨 식물성 함박스테이크와 탕수육, 그리고 풀무원 직화 숯불 콩고기를 구워서 샐러드와 함께 상을 차렸다. 이번 생일에는 모든 식탁이 비건이었으면 하는 나의 욕심으로 케이크도 떡 케이크를 사달라고 언니에게 미리 부탁을 하였는데, 작은언니가 직접 비건 고구마 초코케이크를 만들어주어서 푸짐한 한 상이 완성되었다. 내가 조금 더 요리에 조예가 깊었다면 냉동식품보다는 그럴듯한 상을 차렸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래도 뿌듯한 상차림이었다.


이렇게 온 가족들이 모여서 비건식 식사를 한 것은 처음이었는데, 그게 내 생일이라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 물론 모두가 만족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콩고기를 준비했다는 나의 말에 아빠는 ‘무슨 콩고기냐, 등심이나 사다 구워 먹자.’라고 말을 해서 잠깐 나의 기분을 상하게 하긴 했다. 하지만 아빠는 좋게 말하면 약간 ‘귀여운 관종’이라서 별 뜻 없이 말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금방 웃어 넘어갔다. 또한 형부들은 ‘콩고기는 어쩔 수 없이 콩고기 맛이다.’, ‘물려서 많이는 못 먹겠다.’고 말하여 손님을 불러놓고 불만족스럽게 보낼까 조금 신경이 쓰이기도 했지만 ‘뭐 어때, 내 생일인데! 내가 주인공인데!’라는 마음으로 빠르게 모른 척을 했다. 


논비건들에게 비건 식품이 100%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일 년에 한 번뿐인 내 생일만이라도 앞으로는 비건식으로 가족 식사를 고집하려고 한다. 그리고 항상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네가 먹을 수 있는 게 뭐가 있지?’라며 은근한 눈치를 스스로 받았는데 올해 생일에는 ‘먹고 싶은 게 있냐’는 친구들의 물음에 평소에 가고 싶었던 비건 식당들을 나열하였다. 그렇게 서초에 있는 ‘천년식향’에 다녀오고 이번 달 말에는 ‘푸드더즈매러’에 가 볼 예정이다. 앞으로 내 생일만이라도 주변 사람들과 조금 더 이기적이자 이타적인 식사를 할 생각에 벌써부터 내년 생일이 기다려진다. Go ve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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