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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정 Aug 16. 2022

비주류 삶에 대하여

당신은 나아가고 있나요?

망원동 '로우북스'에서 진행된 정문정작가님 감정에세이쓰기 클럽

단체로 여행을 갈 때면 나는 학창 시절 내내 버스 맨 뒷자리에 앉을 수 있는 다섯 명 중 한 아이였다. 또한 대학생 때는 캠퍼스 어디를 걸어도 아는 사람이 있었다. 말하자면 나는 ‘인싸’였고 ‘주류 집단’이었다. 철저히 주류 집단 서사의 언어로 쓰인 사회에서 나는 큰 불편함이 없이 살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주류 집단의 혜택을 받아왔다. 가만히 있어도 반장이 되곤 하던 나의 학상시절에서 ‘불공정’이라는 것은 내가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성인이 되어 대학생이 되고 난 뒤에도 나는 그저 선배들의 눈에 잘 들었다는 이유로 학교 공개 단체 내에 속할 수 있었고, 속해있다는 이유만으로 한 학기당 70만 원이라는 당시 거금을 얻기도 하였다. 물론 아무 이유 없이 받은 돈은 아니었고, 일정 노동을 해야 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매일 일정 시간 근로활동을 하며 비슷한 돈을 받는 학생들에 비해서는 터무니없이 많은 금액이었다. 그런 나에게 세상의 모든 시스템은 합리적 이어 보였다.


그러다 취업 준비를 할 즈음 처음으로 불평등을 느꼈다. 학교로 취업설명회를 나온 대기업 인사담당자에게 한 학생이 질문하였다. “귀사에 입사하려면 가장 중요한 역량이 무엇인가요?”. 그 질문의 대답. “저희 회사에 입사하려면 남자면 돼요.” 그 기업은 실제로 남성의 비율이 높은 회사였던 것이 사실이었기에 인사담당자도, 듣고 있던 학생들도 웃으며 질문이 그냥 마무리되었다. 나도 알 수 없는 찝찝함을 안고 따라 웃었다. 그리고 실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을 때, 처음으로 내가 ‘비주류’라는 것을 실감하였다. 나는 과 내에서 가장 성적이 좋아 장학금까지 받았던 ‘과탑’의 이력이 있었다. 흔히 갖추어야 한다는 ‘스펙’을 갖추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하였다. 해외인턴, 해외봉사, 영어성적, 봉사활동…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쓰기 위한 나의 처절한 분투는 내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외면받을 때 땅에 떨어진 벚꽃처럼 보잘것없어졌다. 동시에 취업을 준비하던 남자 동기들, 선배들이 번듯한 직장을 잡을동안 열심히 살던 여자 동기들은 이상하게 점점 더 초라해져 갔다.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서 현실의 벽에서 나는 눈을 낮추고 낮추어 적당한 직장에 들어갔고, 최종 면접에서 나에게 남자친구가 있는지, 형제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언니가 두 명 있다고 쓰여있는데 언니들은 결혼을 했는지 등 직무와는 상관없는 질문이 쏟아졌다. 해맑게 웃으며 모든 질문에 대답을 한 후 나는 합격을 할 수 있었다. 입사 후 상사는 나에게 “26살이면 나이가 꽤 많아서 고민했어. 근데 남자친구도 없다고 하고, 언니 둘도 아직 결혼을 안 했다고 하니 입사하고 바로 결혼할 것 같지는 않아서 뽑았지.”라고 말하였다. 나는 뽑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입사 후 신입시절에는 같이 입사한 남자 동기도 있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내가 손님이 올 때 커피를 타야 했고, 방문객이 빵이라도 사오면 잘라서 팀원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했으며 사회가 원래 이렇게 힘든 곳이었나, 하고 생각했다.


 즈음 나는 ‘페미니즘 접하였다. 비단 취업시장에서, 사회생활에서 받은 불공정 때문에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드나들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각종 페미니즘 관련 글이 올라왔는데 어떤 개념은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고,  어떤 일에 대해서는 ‘맞아, 맞아!’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남성이 주류 서사가  사회에서의 특정 개념들은 너무 공고하여 그게 불공정이라고 느끼지도 못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런 것까지? 에이~ 너무 예민하다.’라는 생각도 하였다. 하지만 페미니즘을 공부하면 할수록  안에서 설명할  있는 언어가 생기고 목소리가 생겼다. 처음 페미니즘을 알아가면서 나의 세계는 뒤흔들렸다. 그동안 내가 살아온 모든 세상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데이트할  “예쁘게 입고와~”라고 웃으며 말하는 남자친구에게  이상 웃음이 지어지지 않았고, “예쁜 아가씨~어서 오세요.”라고 말하는 성실한 경비 아저씨에게도 밝게 인사를   없었다.  “5분이면 갑니다. 거울   보고 계시면 얼른 갈게요!”라고 말하는 친절한 거래처 직원의 말에는 기분이 나빠졌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피해의식이 있는  같다는 동료에게는  이상 친근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회식자리에서 술잔이 비었을  여자 직원에게만 센스 없다고 말하는 상사를  이상 존경할  없었고, 명절이면 여성들만 일하는 할머니  주방에  이상 들어갈 수도,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내가 비주류의 일원이 되자 타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장애인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성소수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정규직 직원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동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참 후의 일이지만 동물 또한 여성처럼 착취당하는 대상이라 생각하니 더 이상 육식을 지속할 수 없었다. 평등한 사회를 꿈꾼다고 말하면서 다른 대상의 고통에 눈 감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채식마저 시작하면서 철저한 비주류의 일원이 되었다. 비주류의 일원이 되자 세상은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여성을 평가하고, 남성과 다른 잣대를 들이미는 많은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다. ‘외모 칭찬은 하지 않는 게 좋아.’라고 말하는 내가 예민하다고 말하는 가까운 친구들과는 여전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육식을 전시하는 가까운 지인들을 보며 야속한 마음을 품는 나 자신이 하찮게 보일 때도 있다. 채식을 하면서 왜 여전히 가죽제품을 쓰냐고 묻는 지인들 앞에서는 말을 줄이게 된다.


나는 이성애자이자 비 장애인이며, 서울에서 살면서 여전히 여러 종류의 주류의 삶 또한 누리고 있다. 그리고 완벽한 비거니즘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게 있다면 아직도 나에게는 멀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비주류의 삶은 너무 고달파서 생각 없이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웃고 떠드는 학창 시절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한동안 한없이 좁아졌다고 생각했던 나의 세계는 사실 넓어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여전히 나의 세계는 좁게만 느껴지고 세상은 더디게만 변화하는 것 같다. 아직도 어디쯤에서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가끔은 여기저기 선을 밟고 넘으며 걸어가고 있다. ‘살다 보면 내가 다시 주류가 되는 날도 있겠지...’라고 중얼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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