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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정 Sep 16. 2022

겸손하지 않을 권리

"여성들이여, 우리 사명감을 갖고, 겸손하지 말자."

김하나 작가 <말하기를 말하기> 서문 중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겸손이 미덕이다.’라고 배웠다. 그래서일까? 오늘도 상대방의 칭찬에 ‘아니에요~’가 어김없이 제일 먼저 튀어나온다. 어렸을 때는 마치 그게 올바른 대화의 일부분인 것처럼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몇 해 전 미국에 있을 때의 일이다. 미국인 선생님과 각국의 학생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친구가 말했다 “Kim, 너 머릿결 진짜 좋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반사적으로 “아니야~”라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곧 이어서 다른 친구들까지 하나, 둘 내 머릿결에 대한 칭찬을 시작했다. “머릿결이 정말 튼튼하고 윤기가 난다.”, “와, 정말이네.” 끝없는 칭찬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웃으면서 “아니야~”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런 내가 이상했는지, 안타까웠는지 미국인 선생님은 웃으며 말했다. “그냥 이럴 땐 손으로 머리카락을 뒤로 휙~넘기면서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Thank you’라고 말하면 돼.”. 그리고 그 순간 내가 왜 그렇게 “아니야~”만을 반복했는지 이상하게 느껴졌고, 그제야 고맙다는 말을 할 수 있었다. 


칭찬 앞에서 어색해지는 건 나뿐만이 아닌 것 같다. 여전히 많은 여성들은 칭찬 앞에서 겸손해진다. 회사에서는 안 그래도 여자들의 능력이 과소평가받기 마련인데, 어쩌다 돌아오는 칭찬 앞에서도 우리는 어김없이 “아닙니다, 저 혼자 한 것도 아닌데요 뭘.”, “다 다른 분들 덕분입니다.”라고 반응을 한다. 그런데 모두가 이런 것이 아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남자 직원들은 본인이 조금이라도 관여된 일이라면 조금 더 티를 내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건 그들은 “아닙니다.”라는 말보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더 먼저 하고 있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걸 남성과 여성의 문제로 보고 싶지도 않다. 여성들 중에서도 칭찬 앞에 당당한 사람들이 분명 많아지고 있다. 그들이 멋있고 부럽다. 내년에는 새해 목표를 ‘‘아닙니다’라는 말 하지 않기.’로 정해야 할 것 같다.


최근에 즐겨듣은 한 팟캐스트에 평소 좋아하던 영화 기자님이 나와서 듣고 있었는데, 본인의 글을 가리켜 ‘남루한 글’이라고 표현을 했다. 덧붙여 “제 글이 책으로 묶여 나올만한 글의 자격이 있냐고 한다면 아슬아슬한 선에 서 있는 글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을 하였다. 물론 책을 쓴 저자로서 써 놓고 니 부끄럽고 부족해 보이는 심정은 이해가 갔으며, 기자님의 수준과 기준이 높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평소 후한 칭찬과 찬사를 아끼지 않는 분이 본인의 글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지는 모습을 보고는 조금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최근에 다른 방송에서 한 남작가가 본인 스스로를 세계적인 작가라고 농담처럼 추켜세운 것과 대비되었기 때문이다. 


김하나 작가님의 <말하기를 말하기>에 나온 구절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여성들은 지금 겸손해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 여성들이여, 우리 사명감을 갖고, 겸손하지 말자.’
‘우리에겐 아직, 겸손할 권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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