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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정 Sep 20. 2022

제로웨이스트 피크닉, 가능할까?

비건피크닉 후기

2020년 3월 채식을 시작했다. 그리고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페스코 베지테리언(육고기는 먹지 않지만, 생선과 유제품, 계란은 먹는 채식 방법)으로 지내면서 스스로 충분하다고 다독였다. 아마도 주변에 실제로 채식을 하는 지인이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 “대단하다.”라며 추켜 세워주는 사람들이 많았고, 나 스스로도 비건은 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처음에 육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도 주변 사람들은 “그럼 도대체 뭘 먹어?”라고 질문을 했다. 그런데 실제로 나는 정말 많은 것을 먹고 있었다. 생선, 유제품, 계란 등 먹을 수 있는 것은 차고 넘쳤다. 


육고기가 외식문화의 중심인 한국에서 물론 그것만 하더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매일 같이 삼겹살에 소주, 곱창에 소주, 치킨에 맥주를 먹던 나에게도 그것은 큰 변화였다. 그리고 육고기를 먹지 않기로 시작한 후 자연스레 어패류 섭취의 비중이 늘었다. 그간 먹던 삼겹살, 곱창, 치킨을 회, 해물찜, 생선구이 등으로 대체한 것이다. 


다음은 최근에 인상깊게 읽은 손수현, 신승은의 <밥을 먹다가 생각이 났어> 책의 일부이다.

‘나름대로 채식을 실천하고 있었지만 정말 나름이었다. 동물권에 대해 공부했던 기억은 점점 옅어졌다. 내가 왜 이것을 하는지 잊은 사람처럼 그냥 행위만 하고 있었다. 페스코를 지향하는 삶은 육류를 지양하는 삶이 아니라 어패류를 많이 섭취하는 삶으로 변질되어 있었다.’

이 구절을 읽고 정말 많은 공감이 되었다.   


그리고 올해 초인 2022년 2월, 비건 모임을 시작했다. 오픈 채팅방에서 각자의 식단을 공유하고, 각종 비거니즘 관련 정보를 공유한다. 당시 나는  주변에 채식인이 없었기 때문에 느끼던 묘한 외로움과 공감해 줄 만한 타인의 욕구에 목말라 있었다. 처음 비건 모임을 시작하고 나서 나는 묘한 양가감정을 느꼈다. 동지가 생겼다는 든든함과 동시에 조금 두렵고, 나 자신이 한없이 부족해보이면서 외면하고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나는 막연히 내가 비건은 절대 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타인이 페스코채식을 하는 나에게 “도대체 뭐 먹고 살아?”라고 물어봤던 것 처럼 나도 내심 ‘비건들은 도대체 뭐 먹고 살까?’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모임에 속하게 되고, 정말 많은 분들이 비거니즘을 실천하고 있었고, 나아가 정말 맛있게 살고 있는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면서 나도 조금 더 발전하고 싶고, 나도 식단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비거니즘에 한 발 더 나아갔다. 아직 스스로를 완벽한 비건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제는 떳떳하게 ‘비건 지향인’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 출근시간이 남들보다 늦어 점심을 먹고 출근하는 나는 아침, 점심을 비건식으로 차려먹고 나간다. 저녁을 직장에서 먹어야 하는 나는 저녁 도시락을 챙겨나간다. 주말에는 여전히 논비건식당을 가기도 하지만, 웬만하면 비건 식당에 찾아가거나 적어도 채식 식사가 가능한 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비건 모임이 나에게는 정말 큰 변화를 선물해 주었다. 처음에는 오프라인으로 만났던 인연들이 밖에서 만나서 비건 식당을 함께 가기도 하였는데, 최근에는 비건 피크닉을 하였다. 각자가 비건 음식을 요리해서 싸왔고, 제로 웨이스트를 위해서 각자 식기류를 준비하고 일회용품은 쓰지 않았다. 메뉴는 가지 속에 템페와 야채로 속을 채운 ‘가지 순대’, 템페무스비, 야채 볶음밥 & 풀스키친 함박스테이크, 라따뚜이, 직접 만든 올리브 조림과 자두잼 그리고 각종 과일.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빵집’에서 외주 해온 비건 디저트. 모든 음식이 너무 맛있었고, 그러면서도 식탁에 동물이 올라가지 않았다는 만족감.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식사를 하고 이야기나눈 장소를 떠나며 쓰레기 없이 집에 돌아갔다는 것. (맥주캔은 남았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좋은 음식과 좋은 이야기들로 가득채워진 밤이었다. 이래도 비건이 먹을 게 없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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