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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정 Sep 29. 2022

가을의 마음으로 겨울을 준비하기

 '계절성 우울', '계절성 정서장애(SAD)'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올가을 여행중 찍은 대천해수욕장 하늘

얼마 전부터 날씨가 급격히 쌀쌀해졌다. 긴 잠옷을 꺼내 입고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지는 날씨 탓에 벌써 보일러를 틀어야 하나 어제도, 오늘도 고민이다. 지난 9월 23일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추분(秋分)이었고, 이제 밤의 길이가 더 길어졌다. 아침에 일어나도 아직 세상은 어둡고, 여름이면 아직 이른 저녁시간이라고 느끼는 것이 익숙해졌던 시간도 밤에 자리를 내어주었다.


공식적으로 가을이 왔다. 가을이 가장 좋아하던 계절이라고 말하던 나는 가을이 왔음에도 마냥 기쁘지 못하고 왠지 모르게 움츠러든다. 한창 날이 좋던 9월을 뒤돌아보면 좋은 날이 많았다. 추석을 맞이하여 가족들과 한 캠핑, 연휴를 쪼개어 다녀온 대천 여행, 가을바람을 맞으면서 한 한강에서의 라이딩, 비건 피크닉, 친구의 야외 생일파티까지. 하지만 점점 해가 짧아지는 것을 더욱 예민하게 느끼고, 시원한 바람이 조금이라도 차게 느껴지는 날에는 가을을 가을의 마음으로 대하지 못했다.


지난겨울, 이유 모를 불안감과 우울감이 찾아왔다. 증상이 심한 건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자꾸 움츠러들고, 무기력해졌다. 이 증상은 밤이 되면  심해졌는데, 정말 무서운 건 이유와 실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침이 찾아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했는데, 저녁에 찾아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만 같았다. 기분이 처질 땐 운동을 해야지, 산책을 해야지, 글을 써야지, 어떤 책을 읽어야지.. 리스트를 만들어 놨지만 막상 기분이 가라앉으면 그 리스트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낮에도 가끔씩 불안함을 느꼈다. ‘오늘 저녁에도 그 감정이 나를 찾아오면 어쩌지?’.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날에는 ‘내가 도대체 왜 낮에 그렇게 불안했지?’라는 허무함에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고, 또 어 느날엔 조용히 실체 없는 감정을 맞닥뜨려야 했다. 하루는 길을 걷다가 집 근처에 있는 서점에 들렀는데, 마침 어둑어둑 조금씩 해가 저물어가고 있는 시간이었다. 서점에 들어가는 순간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했다. ‘나갔을 때 해가 다 져있으면 어쩌지? 해가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겠어.’ 마음을 먹고 다시 서점을 나가서 집으로 뛰어갔다. 내가 아무리 겨울을 싫어한다지만, 이날 처음으로 지난겨울은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우연히 글을 읽다가 가을과 겨울에 우울감을 겪는 ‘계절성 우울’, ‘계절성 정서장애(SAD)’라는 것이 있고, 꽤나 흔한 질병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게 겨울을 버티고, 견뎌내고 봄을 맞이했다. 봄을 그렇게 반기며 맞이한 적은 처음이었다. 봄의 햇살이 감사했고, 새로 피어나는 새싹들에 어느 때보다 눈이 갔다. 다시 나가서 걷기 시작하고,  많이 움직였다. 올해부터는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봄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봄을 즐기고 나니 여름의 후덥지근한 싱그러움도 나쁘지 않았다. 여전히 남아있는 생명력과 특유의 푸르름이 좋았다. 올 여름, 기후 위기로 인한 지독한 장마를 맞이했다. 건조기 없는 1.5룸에서 일주일에  번씩 빨래를 돌리고 나면 거의 일주일 내내 축축함 속에서 살아야 했지만, 그래도 그런대로 지낼만 했다.


그리고 이렇게 추분이 온 것이다. 맑은 하늘과 선선한 가을바람을 즐겨 마땅하지만 벌써부터 나는 다가올 겨울을 두려워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공원에서 누워있다가 생각했다. ‘왜 이 좋은 날을 있는 그대로 즐기지 못할 까.’, ‘이래서 마음 챙김에서 항상 현재를 즐기라고 그렇게 강조 하나보다.’ 스스로가 조금 안타까웠다. 그래서 가을은 가을의 마음으로 즐기기로 결심 했다. 날이 조금씩 더 쌀쌀해지고 있지만, 지금은 가을이다. 아직 겨울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겨울은 또 겨울의 마음으로 살아내 보자.

제주도여행중 읽은 <한정원_시와 산책>


겨울을 겨울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당연한 듯해도, 돌이켜보면 그런 시선을 갖지 못한 적이 더 많았다. 봄의 마음으로 겨울을 보면, 겨울은 춥고 비참하고 공허하며 어서 사라져야 할 계절이다. 그러나 조급해한들, 겨울은 겨울의 시간을 다 채우고서야 한동안 떠날 것이다. 고통이 그런 것처럼.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고통 위에도 계절이 지나간다. 계절마다 다른 모자를 쓰고 언제나 존재한다.
한정원 <시와 산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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