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애정 Oct 20. 2022

칭찬하지 말라고요?

칭찬이 독이되는 사회

몇 해 전 한 커뮤니티에서 ‘칭찬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올라온 적이 있다.  ‘칭찬이 상대방의 행동을 제한시키고, 부정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많은 점점 사람들에게 당연시되고, 공감이 되는 주제이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칭찬도 하지 말라고? 너무 사회가 각박해지는 거 아니야? 예민한거 아니야?’라는 분위기였다.


오늘 찍은 은행나무. 잎이 예쁘게 색을 바꾸고 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스스로도 칭찬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곤 했다. 전 애인이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난 후 그 모습이 묘하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다시 머리카락이 자란 후 그에게 “오늘 머리 예쁘다. 역시 넌 살짝 머리를 기른 게 멋있는 것 같아.”라고 하기도 했었다. 나의 검은 속내는 ‘그러니까 이제 머리 짧게 자르지마.’였다. 또한, 나 스스로도 칭찬에 과한 반응을 하고, 칭찬을 받을수록 더 인정욕구가 생겼다. 어렸을 때 문제집을 많이 푼 날, 엄마가 너무 좋아하시며 칭찬을 해줬는데 그날 너무 행복해서 한동안 문제집을 많이 푸는 것에 집착을 하였다. 하지만 내가 원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욕구는 금방 시들해졌다. 또한 처음 직장에 가서도 “OO 씨는 사회생활 참 잘해~”라는 말이 당시에는 듣기 좋아서 ‘센스 있게 사회생활을 하는 나’에 스스로를 피곤한 생활로 구겨 넣었다. 지난여름에는 직장동료가 “OO 님은 날씬해서 그런지 이런 드레스가 참 잘 어울려요.”라고 했는데 일차적으로 내가 평가당한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그래도 “아, 네~”라고 말하며 웃어넘겼는데, 그다음 주에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그 말을 생각하며 드레스에 손이 가는 것을 느끼고 흠칫했다. 이렇듯 칭찬을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의식과 행동을 제한한다. 


지금은 초등학생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이 아이들에게는 아직 순수한 칭찬과 순수한 비난이 그대로 묻어있다. “선생님이 OO 선생님보다 예뻐요~” 라고 말하는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넘기고, “OO 이는 마스크 쓴 게 낫다.”라고 장난스레 말하는 아이들에게는 “그런 외모 평가는 자제하는 게 좋아.” 라고 말한다. 이 아이들이 나를 ‘꼰대’라고 부를 수도 있는일이고, 교실 밖을 나가면 또 어떻게 행동할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조금씩 그들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선에서 아이들과 함께 성장해나간다.


물론 칭찬에는 순기능도 있다. 그리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하지만 이 말의 방점은 ‘춤추게 한다’이다. 고래가 춤추고 싶지 않은데 우리가 춤추게 만드는 것, 그게 과연 옳은 것일까? 나 또한 아직도 습관적으로 칭찬이 입 밖으로 나올 때가 있고, 칭찬을 하고싶어 입이 근질거릴 때도 있다. 칭찬이 듣고 싶은 날도 있고 조카에게 어떤방식으로 칭찬을 해줘야 하나 고민이 되는 날도 있다. 아직도 어렵지만 상대방을 그저 따뜻한 미소로 대하는 법을 오늘도 연습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겨울이 깊어지기 전, 템플스테이 어떠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