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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정 Oct 25. 2022

맥시멀리스트의 미니멀라이프 고군분투기

나는 어쩌다 맥시멀리스트가 되었는가?!

글과는 상관 없지만 살짝 보이는 나의 맥시멀리즘..

“너는 왜 이렇게 물욕이 많아.”, “물건에 감정을 싣지 말고 버려봐.”, “이제 그만 좀 사지~?” 본가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 때  항상 듣던 잔소리 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응~ 알겠어.”라고 대답하고 듣는 둥 마는 둥 흘려들었다. 나는 뭔가 ‘예쁘다, 귀엽다’ 싶으면 쓸모를 굳이 따지지 않고 ‘어머. 이건 사야 해!’라고 지갑부터 열곤 했다. 그리고 해외여행을 갈 때면 ‘이건 사면 추억이 될 거같아.’, ‘이건 여기서밖에 못 사니까.’,’이건 친구들 나눠주면 좋겠다.’ 여러가지 핑계를 대며 이것저것을 주워 담아 돌아올 때면 캐리어는 항상 나를 버거워했다. 하지만 추억 소품, 오브제도 한 두 개가 깔끔하게 있어야 인테리어지 그런 물건들은 결국 어딘가에 처박히기 일쑤였고, 누구를 줄지 정하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산 기념품들은 아직도 내 방 어딘가에 있다. 


그렇게 30년을 살다가, 퇴사를 하고 그런 내 방과 잠시 안녕을 안 후 나는 뉴욕으로 떠났다. 뉴욕에서 겨우 방 한 칸에 살면서 일 년 후에 떠날거니 이것저것 사지 말자고 생각하고 최대한 짐을 늘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여전히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어디서 세일을 한다는 소식을 기가 막히게 듣고는 달려갔다. ‘이건 원래 $400인데, $200달러에 세일을 하니까 꼭 사야 해!’, ‘이건 한국에 없는 디자인 이니까 사야 해.’, ‘이건 디자인이 특이하니까 사야 해.’ 그리고 박물관에 가면 어김없이 ‘이건 여기서만 살 수 있는 거니까 사야 해.’ 라고 외쳤다.

 ‘사야 해, 사야 해, 사야 해!!!!’


그리고 약 일 년 반이 지나고, 한국으로 들어오려는데 도저히 이민 가방 두 개와 배낭으로는 담기지 않아서 미리 택배 서비스를 이용해서 한국에 짐을 붙였다. 그리고 편안히 한국으로 돌아간 나는 택배 상자들이 하나, 둘씩 도착하는 동안 처음으로 물건에 압도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내 방에는 더 이상 뭔가를 둘 자리가 없었고, 원래 언니들과 하나씩 나눠 쓰던 옷방의 옷장 3개는 언니들이 결혼 후 나간 뒤 모두 내 차지가 된 지 오래였다. 언니들이 옷장을 하나씩 비울 때마다 나는 한 칸씩 옷을 더 채워 넣고 있었다. 그리고 뉴욕에서 도착한 옷들이 도착한 순간, 정말이지 더 이상 옷을 걸 공간이 없었다. 아무리 짐을 하나하나 정리해도 짐이 줄지 않았고, 정리를 해도 해도 더 이상한 끼워 넣을 공간조차 없었다. 


그런데 최근에 지인들과 물건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내가 어디서부터 이렇게 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의 어린 시절에 소유에 대한 감각이었다. 어렸을 때 우리 집은 가정 형편이 넉넉한 편은 아니었다. 예쁜 어린이용 구두와 운동화 중에서 쇼핑을 할 땐 무조건 실용적인 운동화를 사야 했다. 한 번은 아빠와 운동화를 사러 갔다가 부츠가 사고 싶어서 부츠를 사 왔는데, 엄마가 화를 냈다. 아빠의 설득으로 겨우 부츠를 지킬 수 있었지만, 사실 나에게 정말 필요한 건 운동화였다. 그리고  우리 집에는 세 자매가 있었다. 뭐든 언니들과 나눠써야 했으며, 어린 시절 옷은 친언니들의 옷도 아닌 친척 언니들의 옷을 물려 입어야 했다. 그런데 당시에는 그것도 좋았던 것 같다. 고모가 가끔씩 (친척)언니들이 더 이상 입지 않는다며 옷을 한가득 가져와주셨는데 내 눈에는 다 새 옷이고, 예뻐 보였다. 그리고 나는 기질적으로 ‘꾸밈’을 자처하는 아이였는데, 엄마가 화장을 딱히 하시는 스타일이 아니었는데도, 그나마 있는 화장품인 립스틱을 엄마 몰래 거울 앞에서 발라보기도 하고, 요리 저리 만져보다가 부러트려서 혼이 나기도 하였다. 혼나고도 엄마가 나가면 또다시 립스틱을 입술에 발라보는 어린아이였다. 그런 나를 보면 ‘언니들은 안 그러는데 얘는 왜 이러나 몰라~’라고 하며 신기해하셨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조금 더 여유 있는 용돈이 생기고, 취업을 해서 내 힘으로 돈을 벌기 시작 했을 때 그동안 스멀스멀 올라오면 욕구들이 폭발했던 것 같다. 월급날이면 새 옷을 사고, 마음에 드는데 살 수 있는 것이면 사들여서 내 소유로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우리 집 자체가 애초에 ‘미니멀’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 그 좁은 집에서 다섯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면서 서로의 영역이랄 곳도 없는 곳을 차지해야 했고, 자연스레 깔끔하고 사치스러운 공간은 우리 집에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커가면서 점점 형편이 좋아져서 계속 큰 집으로 갔지만 남는 공간은 항상 똑같았다. 애초에 ‘남아도는’. ‘사치스러운’ 공간을 모두 가져보지 못해서 그랬을까. 그 공간엔 그저 자연스럽게 다른 물건들이 채워졌다. 그래서 미니멀이라는 건 내 인생에 애초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것을 내 환경 탓을 하려는 건 아니다. 내가 아무리 막내라 할지라도, 언니들보다 특별히 덜 가진 것은 없었고, 언니들은 같은 환경에서 적절히 잘 자라서 지금은 미니멀은 아니더라도 맥시멀인 나에게 잔소리를 할 수 있는 정도의 사람들이다. 내가 기질적으로 욕심이 많은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물건에 그렇게 한번 압도당하고 난 후, 그리고 비거니즘을 시작하고 난 후 분명 나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물건을 살 때는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신중하게 되고, 물건을 소유할 때의 가치보다는 다른 가치를 더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제는 독립해서 나온 나만의 공간도 나름대로 여유가 있고 깔끔한 모습이 유지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아직 나는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반칙인데, 여전히 많은 물건들은 본가에서 내가 정리해 주거나 처분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집에 갈 때마다 ‘이거 진짜 정리해야 하는데..’ 하고 그냥 다시 나의 정돈된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런데 문자로 언니의 잔소리가 또 시작된다. “너 이제 진짜 창고방에 있는 네 물건들 정리좀 해.” 그래 올해 안에는 진짜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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