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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정 Nov 10. 2022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영화 후기) 가장 거대한 세계를 품는 동시에  철학적인 영화.


오랜만에 실로 엄청난 영화를 봤다. 이름도 어려운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 영화를 보러 가기 전 이름이 어려워서 ‘그 에브리~’라고 말 하곤 다시 제목을 찾아보았는데 영화를 본 이후로는 좀처럼 이름이 잊히지 않는다. 이 영화의 장르는 절대 한 가지로 대답할 수 없다. 액션, 드라마, SF이면서 동시에 매우 철학적인 영화이다.


이 이야기는 보는 사람의 관점과 상황에 따라서 정말 여러 가지를 느낄 수 있는 영화이다. 누군가에게 이 영화는 ‘가족애의 재결합, 모녀간의 화해’를 다룬 작품이기도 하며, 누군가에게는 ‘멀티버스(Multiverse)’를 가장 흥미롭게 풀어낸 영화이며, 누군가에게는 코미디와 액션의 재미를 선사해 주었을 것이다. 나에게 이 영화는 근래 본 그 어떤 영화보다도 많은 철학을 담고 있는 영화였다. 


(*스포주의) 영화 안에서 조이(=조부 두바키)는 다른 세상으로 점핑하는 과정에서의 혹독한 훈련으로 자아가 분열되고, 어디에나 동시에 존재하며 그 모든 것을 느끼고 경험하는 존재가 된다. 세상의 모든 것을 느끼고 경험한 조부 두바키. 그녀는 허무주의에 시달리며 “Nothing is matter”이라고 말한다. 에블린의 뒤를 쫓는 조부 두바키. 다른 이들은 조부가 에블린을 파괴하려 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녀는 본인이 느끼는 이 감정을 공유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조부는 자신만의 무너진 세상인 ‘베이글’을 창조하고, 블랙홀 같은 그 공간 안으로 영원히 들어가려 하고, 에블린 또한 그녀를 보내줘야 할 것처럼 느낀다. 하지만 그때 에블린의 앞에 나타난 남편 웨이먼드. 그는 “이게 도무지 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 하지만 우리 그냥 서로에게 좀 다정하면 안돼?”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다정함의 힘으로 조부도, 딸 조이도 구해낸다.


몇 해 전, 한국 사회에서 앞만 보고 달리며 치열하게 살다 보니 권태가 몰려왔다. 그리고 ‘도대체 내가 뭐를 위해 이렇게 살고 있지?’라는 생각에 직장을 그만두고 전세금의 반을 들고 무작정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정말이지 많은 것을 경험했다. 열심히 놀고, 열심히 여행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새로운 것도 배우고, 마냥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도 가져보며 약 2년을 보내고 나니 더 넓은 세상을 알게 되었고, 나를 조금 더 알게 되고 존재 자체의 충만함도 느꼈다. 그런데 그런 순간들이 지나고 나니 나도 모르게 허무함이 몰려왔다. 내가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경험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앞으로 할 것들이 해보지도 않고 시시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한동안을 허무주의에 빠졌던 나를 꺼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단조로운 ‘일상’이었다. 루틴을 만들어 모닝페이지를 쓰고, 필요하던 공부를 하고, 독서를 하고, 요리를 하고 일을 하고. 일상 속에서 다시 새로운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달, 한 달을 돌아보니 나는 매일 새로운 하루를 살고있었다. 


그러다가 또 한 번 나를 지치게 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비거니즘’ 이었다. 채식을 2년 넘게 해오고 있었지만 문득 세상이 너무 더디게 변하는 것 같았다. 조금 더 비거니즘을 실천하고자 마음을 먹고 조금 더 주변을 돌아보니 세상은 더 엉망인 것 같았다. 사람들은 지나친 육식을 하고 있었고, 넘쳐나는 플라스틱, 넘쳐나는 의류, 탄소발자국, 비건 식품의 쓰레기 재생산 등.. 결국 개인보다는 기업이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자 내가 너무 작아 보였다. 또 다시 허무주의에 빠지기 직전이었다. 그냥 다 외면해버리고 적당히 살고 싶은 마음이 울컥 올라왔다. 다행히 그런 마음은 사그라들고, 올바른 방향으로 다시 걸음걸이를 하고 있었는데 이 영화를 만났다.


“모든 것을 외면하고 베이글 속에서 살 수도 있겠지만, 다정함을 잃지 않는 것. 그게 우리가 세상과 싸우는 방식이에요.”


라고 영화는 나에게 위로를 해 주었다.영화에서 말하듯이 상식이 통하는 시간이 한 줌의 순간뿐이라면, 우리는 그냥 그 순간을 소중히 여기면 되는 것이다. 나에게 이 영화는 위로와 더불어 또다시 한번 한 발자국 나아갈 용기를 선사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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