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생각청 한병에 닮긴 삶의 순간
얼마 전, 지인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다녀왔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첫인상부터 강렬했다. 문을 두드리니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집주인이 멋지게 옷도 차려입고, 머리에 꽃 장식까지 한 채로 타이션춤을 춰 주는 게 아닌가! 누군가의 집에 처음 들어설때 이런식으로 반겨주는 집. 감히 예상하건대 내 인생을 통틀어도 가장 기억에 남은 집과 집주인의 첫인상이지 않을까 싶다.
아름다운 춤사위에 넋이 나가고, 잠시 앉아서 한숨을 돌린 후(?) 우리는 노동을 시작했다.(이건 무슨 전개인가..) 이미 집주인과 다른 한 친구는 동치미와 대추 생강청을 만들 장 보기를 끝낸 상태였고, 이제는 제일 힘들다는 재료 준비가 눈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 일을 분담하여, 한 사람은 생강을 다듬고, 나는 욕실에 앉아서 쪽파를 다듬고, 집주인은 그 밖의 모든 일들을 했다. 우습게 봤던 쪽파들이 내가 다듬고 있는 동안 증식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쪽파 다듬기는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1차적인 노동이 금방 끝나고 허기를 채울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누가? 집주인이..)
다른 한 친구와 내가 테이블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동안 집주인 언니는 분주하게 움직이며 감자떡을 찌고, 밤과 고구마를 에어프라이어에 돌리고, 미나리 전까지 부쳐서 가져다주었다. 무알콜맥주와 함께 짠~하고 이 자연에서 온 소중한 음식들을 먹으니 ‘이게 행복이지.’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우리는 한참을 입을 모아서 음식을 예찬하였으며, 이 분위기와 사람들과 날씨의 완벽함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찐 행복’모먼트를 보내고 2차 노동이 시작됐다. 한참을 끓고 있던 대추 생강청을 이제는 채에 걸러내어 진액만을 뽑을 타이밍이었다. 두 명은 최선을 다해서 채를 잡고, 한 명은 국자를 돌리며 액기스만을 걸러냈다. 이게 뭐라고 우리는 또 너무 행복하고 웃음이 나서 갑자기 우리의 50대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한 친구가 “성님~그거 알어~?” 하면서 상황극을 시작했고, 그걸 받아주는 집주인의 케미가 너무 좋아서 나는 바로 핸드폰으로 동영상 촬영했다. 그리고 이게 바로 내가 앞으로 쭉 살고 싶은 삶의 형태라고 생각했다. 2차 노동이 끝난 후 다시 앉아서 열심히 걸러낸 대추 생강 차를 마셨다. 처음 마셔보는 진하고, 찐한 진짜 대추 생강 차였다. 집에 가는 길에는 내가 한 노동보다 값진 대추 생강청 한 병이 가방에 담겨있었다.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이렇게 대추 생강차를 만들며 웃을 수 있다면, 이게 부자의 삶의 아니고 뭘까.. 집에 가는 길, 얼마전에 들었던 여둘톡 에피소드가 생각나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거리도 내거고, 내 가방에 든 대추 생강청도 내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