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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정 Nov 24. 2022

지금, 부자로 살고있나요?

대추 생각청 한병에 닮긴 삶의 순간

얼마 전,  지인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다녀왔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첫인상부터 강렬했다. 문을 두드리니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집주인이 멋지게 옷도 차려입고, 머리에 꽃 장식까지 한 채로 타이션춤을 춰 주는 게 아닌가! 누군가의 집에 처음 들어설때 이런식으로 반겨주는 집. 감히 예상하건대 내 인생을 통틀어도 가장 기억에 남은 집과 집주인의 첫인상이지 않을까 싶다.


아름다운 춤사위에 넋이 나가고, 잠시 앉아서 한숨을 돌린 후(?) 우리는 노동을 시작했다.(이건 무슨 전개인가..) 이미 집주인과 다른 한 친구는 동치미와 대추 생강청을 만들 장 보기를 끝낸 상태였고, 이제는 제일 힘들다는 재료 준비가 눈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 일을 분담하여, 한 사람은 생강을 다듬고, 나는 욕실에 앉아서 쪽파를 다듬고, 집주인은 그 밖의 모든 일들을 했다. 우습게 봤던 쪽파들이 내가 다듬고 있는 동안 증식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쪽파 다듬기는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1차적인 노동이 금방 끝나고 허기를 채울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누가? 집주인이..)


다른 한 친구와 내가 테이블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동안 집주인 언니는 분주하게 움직이며 감자떡을 찌고, 밤과 고구마를 에어프라이어에 돌리고, 미나리 전까지 부쳐서 가져다주었다. 무알콜맥주와 함께 짠~하고 이 자연에서 온 소중한 음식들을 먹으니 ‘이게 행복이지.’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우리는 한참을 입을 모아서 음식을 예찬하였으며, 이 분위기와 사람들과 날씨의 완벽함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찐 행복’모먼트를 보내고 2차 노동이 시작됐다. 한참을 끓고 있던 대추 생강청을 이제는 채에 걸러내어 진액만을 뽑을 타이밍이었다. 두 명은 최선을 다해서 채를 잡고, 한 명은 국자를 돌리며 액기스만을 걸러냈다. 이게 뭐라고 우리는 또 너무 행복하고 웃음이 나서 갑자기 우리의 50대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한 친구가 “성님~그거 알어~?” 하면서 상황극을 시작했고, 그걸 받아주는 집주인의 케미가 너무 좋아서 나는 바로 핸드폰으로 동영상 촬영했다. 그리고 이게 바로 내가 앞으로 쭉 살고 싶은 삶의 형태라고 생각했다. 2차 노동이 끝난 후 다시 앉아서 열심히 걸러낸 대추 생강 차를 마셨다. 처음 마셔보는 진하고, 찐한 진짜 대추 생강 차였다. 집에 가는 길에는 내가 한 노동보다 값진 대추 생강청 한 병이 가방에 담겨있었다.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이렇게 대추 생강차를 만들며 웃을 수 있다면, 이게 부자의 삶의 아니고 뭘까.. 집에 가는 길, 얼마전에 들었던 여둘톡 에피소드가 생각나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거리도 내거고, 내 가방에 든 대추 생강청도 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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