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애정 Apr 17. 2024

울루와뚜에 놀러와뚜?

발리에서의 마지막 날 

우붓 이후에 예정되어 있던 길리행 배편이 날씨의 영향으로 취소되었다. 다행히 숙소는 전액 환불이 되었고, 어쩌지 싶을 찰나에 며칠 전 사운드힐링 클래스 후 함께 밥을 먹다가 알게 된 벨기에분이 생각났다. 그분은 지금 발리에서 한 번 시범 삼아 살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하였는데, 나에게 울루와뚜에 와보라며 추천을 하셨었다. 오게 되면 좋은 곳을 추천해 주겠다고 번호를 알려주었다. 당시만 해도 ‘울루와뚜? 갈 일 없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였는데 그 울루와뚜가 길리행이 취소되면서 머릿속을 스친 것이다. 


연락을 하니 바로 식당, 카페, 숙소 모든 정보를 보내주었다. 하루 전 날 급하게 별다른 정보 없이 숙소를 예약했다. 우붓에서 택시를 타고 두 시간을 달려 울루와뚜 숙소에 도착했다. 우붓에서는 운전기사가 워낙 많기도 했고, 도로에 워낙 오토바이, 차가 많아 스쿠터를 빌려서 다닐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울루와뚜에 도착해 보니 상대적으로 도로에 차가 적어 스쿠터를 빌려 돌아다니면 편하겠다 싶어서 바로 렌트를 해서 울루와뚜사원으로 달려갔다. 절벽 위의 사원과 앞에 펼쳐진 인도양이 멋있는 곳이었다. 석양이 유명하다는 해안카페에도 다녀오고 그렇게 울루와뚜에서의 첫날이 지나갔다. 자기 전, 내일을 뭘 할까 싶다가 울루와뚜가 서핑이 유명하다는 것을 듣고 서핑강습이 가능한지 찾아보고 예약을 했다. 


다음 날, 원래 예정돼있던 장소는 파도가 심해 Nusa Dua 해변으로 장소가 변경되었다. 서핑이라면 이미 몇 번을 해보았는데도 항상 일회성으로 하다 보니 실력이 제자리걸음인 것은 당연했다. 처음 배우는 심정으로 열심히 강사님과 파도에 몸을 맡겨보았다. 파도를 기다리며 보드에 떠있다 보니 파도를 쫓아가는 사람들, 파도를 기다리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아랑곳 않고 그저 자신의 리듬으로 왔다 가는 파도가 보였다. 그래도 몇 번 파도가 허락해 주는 대로 그럭저럭 서핑보드에 서서 파도를 타 보기도 하였다. 그렇게 파도와 함께한 오전시간을 보내고 가까운 해변으로 갔다. 조금 걷다가 선배드를 빌려서 하루종일 누워서 책도 읽고, 수박주스를 마시다가 옥수수도 사 먹고 석양을 바라보고 있으니 벌써 또 하루가 끝나갔다. 


어느덧 발리에서의 마지막 날. 숙소의 오픈키친으로 나가보니 호스트는 아침을 만들어주겠다고 하고는 함께 식사를 하였다. 원래 12시가 체크아웃시간이었지만 다음 나라(터키)로 가는 비행기가 저녁비행기라고 하니 편하게 저녁까지 방을 쓰게 해 주셨다. 그리고는 매일 수련하고 있는 ‘Falun Gong’에 대해서 한참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내가 관심을 보이니 해변에 가서 같이 오늘 수련을 해보자고 제안해 주셨다. 바로 해변으로 가서 먼저 명상을 하였다. 보통 명상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이라면 몇 가지 포즈를 바꿔가며 한 가지 자세를 고정한 채 5-10분 정도 자세를 유지하며 명상을 하다가 다시 다른 자세로 바꾸어 수련을 하는 것이었다. 이후 일어나서 ‘Falun Gong’을 열심히 따라 했다. 천천히 에너지를 모아 내면으로 가지고 오는 동작들이었다. 조용한 해변이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파도 소리와 오직 나의 몸에만 집중을 하며 약 한 시간 동안 수련을 하고 나니 정말 몸의 에너지가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이후 사장님은 나를 Padang Padang Beach에 내려다 주시고 돌아가셨다. <Eat Pray and Love> 촬영지로 유명한 해변이었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바로 바다로 몸을 내던졌다. 수영을 하다 해변으로 돌아와 책을 읽고,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다시 수영을 했다. 낮잠도 조금 자고 일어나서 해변에서 파는 간식을 사 먹고 다시 누워서 책을 읽었다. 하루종일 해변가에서만 보낸 마지막날이 흐르고 있었다.


저녁으로 주인부부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한식을 요리해 주겠다고 이야기를 해둔 터라 해가 뉘엿뉘엿해지기 시작할 때즈음 마트로 가서 장을 봤다. 간단하지만 한국의 맛을 보여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다가 숙소에 간장/ 참기름/ 소금/ 설탕 기본양념은 있고 내가 한국에서 챙겨 온 고추장이 있어서 야채와 당면을 산 후 잡채와 비빔밥을 하였다. 장을 봐서 오랜만에 야채도 썰고, 데치고, 볶고 요리를 하니 즐거웠다. 게다가 남을 위한 대접을 한다는 것 역시 기분 좋은 일이었다. 준비를 마치고, 주인부부와 게스트 한 명까지 합류해서 저녁을 함께 먹었는데 다들 잡채를 처음 먹어본다며 아주 맛있게 먹어주었다. 저녁을 먹고 짐을 챙겼다. 주인 부부는 가는 길을 끝까지 배웅해주었는데, 인사를 하며 너무 아쉬워하는 게 느껴져서 나도 마음이 뭉클하였다. 길리에 갔어도 분명 좋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길리행 배편의 취소로 정말 선물 같은 시간을 보냈다. 더불어 인생이란 항상 나에게 더 좋은 것을 줄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 그런 믿음이 조금 더 공고해지는 시간이었던 듯싶다. 발리 안녕, 울루와뚜 안녕.



작가의 이전글 물욕의 세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