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하면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

여행지에서 달리면서 만나는 것들

by 김애정


시드니 여행 3일 차. 그 유명하다는 본다이비치를 가기로 한날인데, 또 아침부터 날이 흐리다. 아무리 늦가을, 초겨울날씨라서 패딩을 입고 다닌다지만 ‘그래도 본다이비치에서 수영은 한번 해보자!’ 하고 수영복을 챙겨 왔던 터이다. 서퍼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본다이비치 한쪽 끝에는 아이스버그 수영장이 있다. 바다의 남쪽 끝에 위치한 이 수영장은 바다와 연결되어 있어서 파도가 수영장에 부딪치는 장관이 펼쳐지는 곳이다. 이 날씨에 수영이 가능할까 싶었지만, 감기에 걸리더라도 여기서 수영 한 바퀴는 돌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가려고 준비를 하는 중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추위까지는 어찌 참아보겠는데 비까지 오면 수영은 힘들 것 같아 수영복은 아쉽지만 그냥 내려놓는다.


오늘은 숙소를 옮기는 날이기도 하다. 시드니에 먼저 도착한 큰언니네 가족이 브리즈번으로 오늘 저녁 이동을 한다. 그래서 작은언니와 둘이 ‘잠만 잘’ 시내에서 가까운 집의 방 한 칸을 빌렸다. 방 두 칸을 각각 여행자가 쓰고 거실을 공유한다고 생각했는데, 도착해 보니 다른 방에는 시드니에서 공부하는 국제학생들이 살고 있다. 일단 짐을 두고 본다이비치로 향한다. 버스 안, 갑자기 비가 억수로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 30분 정도 창 밖으로 쏟아지는 비를 보고 있는데, 이렇게 비가 오는데도 밖에서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다들 ‘이 정도 비쯤이야~’ 하는 내색으로 꿋꿋하게 달리고 있었다.

본다이비치 아이스버그 수영장


그리고 버스에서 내릴 때쯤, 신기하게도 비가 뚝 그쳤다. 일단 근처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언제 또 비가 올지 몰라 얼른 해변구경을 하자며 나왔다. 쿠지해변에서 본다이비치까지 해변트레킹을 생각하고 있었다. 쿠지해변에서 시작해서 일단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여름이었다면 중간중간 바다에 뛰어들며 걸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 시간쯤 걸었을까, 아직 본다이비치까지 거리는 꽤 남아 중간에 버스를 타고 이동을 했다. 드디어 본다이비치. 날은 흐리지만 그래도 아직 비는 오지 않아 다행이었다. 트레킹도 했겠다 급 피곤이 몰려와 일단 커피를 한 잔 한다. 호주가 커피가 유명하다는데, 관광지라 그런지 여기서 먹은 커피는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그리고 나가보니 놀랍게도 해안에서 서핑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나는 패딩을 입고 있는데…! 한 명, 두 명.. 세다 보니 20명 정도의 사람들이 바다 안에 있다. 게다가 내가 포기했던 수영장에서도 몇몇 사람이 수영을 하고 있다. ‘아, 호주사람들은 강하구나. 내가 나약했구나..!’ 이럴 줄 알았다면 수영복을 챙겨라도 와보는 건데.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한 채 이제 큰 언니 가족은 공항으로 갈 시간이었고, 나와 작은언니는 숙소에 들러 옷만 갈아입고 저녁러닝을 하러 나왔다. 여행오기 전부터 여행지에서의 러닝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지난 이틀간은 비가 오기도 했고, 또 저녁에 가족들과 다 같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굳이 나가지지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내리는 부슬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폭우에도 시드니 사람들은 달리는데. 옷을 갈아입고 나와서 슬슬 뛰기 시작한다. 숙소에서 오페라하우스까지 거리는 2K. 일단 천천히 오페라하우스까지 달린다. 첫날 브런치를 먹고 오페라하우스까지 걸어갔던 그 거리를 지난다. 두 번 지나간다고 반가운 길. 마치 아는 사람을 길에서 마주 친기분이 든다. 걸을 때는 길게 느껴졌던 이 길이 달리고 보니 꽤나 짧은 거리이다. 이내 멀리서 보이는 오페라하우스. 저녁에 보니 다른 느낌으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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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하우스 앞 '오페라 바'에서 시드니 생맥한잔

고작 2K를 달렸지만, 오페라하우스바(Bar)에서 파는 생맥주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자리도 잡지 않고 들어가서 생맥주 한 잔을 주문해 받아온다. 밖으로 나와 맥주 한 잔을 언니와 나눠마신다. 캬. 시드니 맥주 맛있구나. 평소 술을 잘하지 못하는 작은언니도 꿀꺽꿀꺽 들이키더니 말한다.


“나, 시드니맥주랑 잘 맞나 봐.”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아니, 그냥 러닝하고 마시는 맥주가 최고인 거야.’


그렇게 한 번씩 마셨더니 금세 선 자리에서 맥 주 한 잔이 끝났다. 내 생에 가장 빠르게 마신 맥주 한 잔이었다. 이제는 다시 숙소로 돌아가야 할 시간. 뛰다가 모자가게가 보여서 들어가 캡모자를 하나 써본다. 꽤나 마음에 드는데 마침 비도 오니 이렇게 기념품하나를 결제한다. 그리고 다시 달리며 자유롭게 ‘이쪽으로 한 번 가볼까?’하고 도로를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레고스토어가 보여서 들어가서 한참을 구경하고 나와 다시 뛰고, 스포츠용품 매장이 보여서 다시 또 들어갔다가 구경 후 나와서 다시 뛰고. 첫날에 걸었던 거리,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봤던 거리들이 눈에 들어온다. 시드니에 온 지 3일 만에 처음으로 ‘진짜 시드니’를 여행하는 느낌이 든다. 걸을 때도 보이지 않고, 차 안에서도 보이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달리는 속도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다음 날 아침, 어제 달릴 때 입었던 옷을 다시 주섬주섬 주워 입는다. 오늘은 모닝런으로 ‘시드니 보태니컬가든(식물원)’을 가기로 했다. 이곳은 첫날 가려고 계획했다가 비가 꽤 와서 그냥 넘겼던 곳이다. 굳이 우산을 쓰고 걸어 다니면서 구경하고 싶은 마음까지는 들지 않았다. 그런데 두 발, 두 손 자유롭게 모자하나 눌러쓰고 천천히 뛰면서 구경하는 보태니컬 가든은 정말 좋았다. 어쩌면 비가 와서 더 좋았는지 모르겠다. 뛰면서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아침부터 뛰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식물원을 돌아 나와 항구 근처로 가니 하버브리지도 보이고 또다시 이제는 정겨운 오페라하우스도 보인다. 그 길을 뛰면서 그동안 수없이 했던 생각을 다시 한번 한다.

‘아, 정말 달리기 시작하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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