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위 정리되지 못한 모양으로 켜켜이 쌓여 있는 앨범들. 앨범을 펼치면 그 날의 그 장면들이 눈앞에 선연히 떠오른다. 젊었던 엄마와 아빠, 어렸던 나와 동생. 초등학교, 아니, 중학교 때까진 가족사진을 꽤 많이 찍었다. 지금은 많이 낡아버린 캐논 카메라와 몇 통의 여분 필름은 늘 우리 여행길에 함께였다. 앨범 여러 개를 주르륵 늘어놓고 보다 보니, 네 명은 세 명이 됐고, 세 명은 두 명이 됐다. 아빠의 낯선 검은 머리와 엄마의 고운 얼굴이 보였다. 신혼여행 사진이었다. 엄마는 스물여덟, 아빠는 서른둘이었다.
대뜸 엄마한테 물은 적 있다. 결혼 전에 못 해본 것 중에 아쉬운 것이 뭐가 있냐고. 엄마는 조금 생각하더니 곧장 대답했다. 공부라고 했다. 공부를 더 할 걸 그랬다고. 하지만 시골에서 7남매를 키우며 입에 풀칠하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엄마가 얼른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하길 바라셨고, 엄마는 그렇게 했다. 서울에 올라와선 육군본부에 들어가 사무 일을 하며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몇 년을 보냈다. 그러다 아빠를 만났고, 마치 정해진 수순이었던 양 6개월 만에 웨딩마치를 울렸다.
앨범을 덮고 현재. 엄마는 나이가 들었고, 난 그때의 엄마보다 세 살이나 많다. 많은 걸 하지 못했고 많은 게 아쉬웠던 그리고 많은 걸 포기했던 이십 대 후반의 엄마. 예쁘고 곱기만 했던 얼굴엔 이제 세월의 흔적이 선명하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엄마는 그러고 싶을까. 이건 굳이 물을 필요도 없겠다. 당연히 그럴 테니. 나라도 그러할 테니. 언젠가 아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렇게 엄마를 이해하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거라고. 책장 위에 앨범을 다시 올려놓았다. 엄마보다 몇 박자나 늦게, 이제야,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