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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민 Feb 01. 2021

나는 게을러서 망할 것이다

망하고 싶지 않아서 쓰는 글

2월이다. 말도 안 돼. 스마트폰 달력 어플의 '오늘'을 몇 번이나 눌러도 달라지는 건 없다. 여지없이 2월 하고도 1일이다. 이 말인즉슨 2021년 새해가 밝은지도 한 달이 지났다는 이야기. 그 한 달 동안 무엇을 했느냐 하면 먹고 자고 간간이 출근한 것밖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생산적인 활동이란 단 0.5도 하지 않은 채, 31일이라는 소중한 시간이 사라졌다. 분명 있었는데 없어졌다.


어제자로 퇴사를 했다. 1년 하고 몇 개월 가량 다닌 여행사였다. 지난해 세계를 덮친 코로나 19로 우리의 일상과 함께 내가 다니는 회사의 고용유지도 불안정해졌다. 나라에서 고용지원금을 받기 위해 회사는 3월부터 단축근무를 시행했고, 직원들은 반강제적으로 주 2일만 근무하게 되었다. 그나마도 월요일 하루만 출근, 반나절씩 이틀은 집에서 재택근무를 했다.


자연히 시간이 많아졌다. 급여는 반비례하여 줄어들었지만 어쨌든. 덕분에 2020년에는 더러 뭘 좀 했다. 외고를 맡아 쓰게 되었고, 글쓰기 모임의 리더로 모임을 이끌었고, 언어교환 모임도 몇 번 참석했고, 브런치 작가에 당선이 되어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게 되었고, 늘 맘속에 품고 산 과업이던 운전도 시작했다. 썩 만족스러웠던 한 해, 퇴사를 결심하고 마음이 느슨해지며 일상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새벽에 잠들고 11시 언저리 즈음 겨우 눈을 뜨면 운동을 깔짝 하고 밥을 푸짐하게 먹고 식곤증에 드러눕는다. 단잠을 자고 일어나면 노트북 앞에 앉아 유튜브를 켠다.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이끌려 연속 재생으로 영상을 보다 보면 해가 지기 시작한다. 끼니를 또 거를 순 없으니 야무지게 챙겨 먹고 다시 노트북 앞. 뭔가 좀 해야지 하다가 다시 유튜브로 돌아오는 프로세스. 이놈의 유튜브 프리미어가 문제다.


매일이 데자뷔 같던 저 하루를 서른 한 번 반복하고 나니 지금이다. 눈앞에서 1월을 몽땅 도둑맞아 황당한 지금. 망연자실한 일이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저 하루를 삼백삼십 번 더 반복하고 2021년을 통째로 잃어버릴까 봐 무서워 아무 글이라도 써보았다. 그렇다. 이 글은 게으름의 달콤함 가운데 솟아난 찐득한 불안함의 산물이다.


근 몇 년 동안 딱히 신년 계획이랄 것을 세운 적이 없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목표를 세웠다. 딱 하나다. 앞으로 먹고   . 지금 내 앞날에 대해 마음속에 두 가지 옵션이 있다.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될지는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열 한 달이 지나고 이 글을 다시 꺼내볼 때 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과연. 어느 길을 걷고 있든 상관없으니, 웃고 있었으면 좋겠다.  행복하게.


(참! 올해는 브런치도 더 열과 성을 다해 꾸준히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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