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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민 Mar 09. 2021

구원이란 무엇인가

<미나리> 제이콥과 모니카의 대화

과거 언젠가의 나는 어리석게도 구원인즉 사랑이라고 믿었다. 마치 신데렐라와 백설공주 같은 동화 속 왕자가 곤경에 처한 공주를 구해주듯, 사랑으로 날 구원해줄 운명 같은 이가 있다고 믿었다. 그 공식이 사실이라면 사랑의 결실로 여겨지는, 결혼을 한 사람들은 모두 구원받은 것일까. 그들이 만들어낸 가정은 그 구원이라는 것의 연장선에 놓인 것일까. 최근 국내외에서 화제인 영화 <미나리>를 봤다. 발끝으로 손끝으로 가슴 언저리로 따뜻함이 잔잔히 배어드는 가족 영화였다. 하지만 한 가지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낯선 미국 땅 아칸소로 이주한 한국 가족이 있다. 아빠 제이콥(스티븐 연)은 사회에서의 쓸모와 필요성 그리고 자신의 꿈을 깃발 삼아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의 꿈은 가족들에게 무언가 해내는 걸 보여주는 것. 이는 허허벌판 땅에서 자신의 농장을 가꾸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는 어린 아들 데이빗을 앞에 두고 말한다. “우리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해."


제이콥의 아내 모니카(한예리)는 하루아침에 바퀴 달린 집으로 이사 오게 된 현실이 다소 당황스럽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당장의 생계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다. 어린 두 아이들을 두고 일을 다닐 수 없어 엄마 순자(윤여정)를 불러 함께 살기로 하고, 모니카는 하루하루 먹고살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그녀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지만, 그와 달리 미래가 불투명한 농장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제이콥의 모습이 영 마뜩잖다. 




제이콥: 이곳이 지금부터 우리가 살 집이야.

모니카: 우리가 약속했던 건 이런 게 아니잖아.


-


제이콥: 결혼하면서 했던 말 기억나? 미국에 가서 서로를 구해주자고 했던 거.

모니카: 기억나.





분명 같은 구원을 바라며 미국행을 결심했을 두 사람은 끝내 각자 마음속에 품은 약속이 같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 일과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형편에 좋아하던 노래도 잊은 지 오래, 서로를 향한 원망의 말만 늘어간다. 그들이 바란 구원은 무엇이었을까. 절망적인 상황을 희망으로 바꾸어줄 마법 같은 무언가 혹은 그 상황에서 나를 꺼내어줄 상대방을 바랐을까. 


실체 없는 구원이라는 이름 속에 시간만 흘러 두 사람은 넷이 되었고, 여기에 순자도 일원이 되었다. 종종 둘 사이의 위기는 둘 밖의 것에서 오기도 한다. 그리고 그 위기는 대개 한밤 중 몰래 온 손님처럼 예기치 못한 타이밍에 찾아온다. 희망이라 믿었던 가족이 절망이 되는 순간, 구원은 그 절망의 잿더미 위에서 피어날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결코 녹록지 않다.


그래서 도대체 그 구원이란 것은 무엇인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것은 나와 상대방, 그러니까 어떤 한 인간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 아닐까. 어떤 어려움에서 내가 나를 구해내지 못한다면 세상 어느 누구도 나를 구원해줄 수 없는 것, 즉 누군가 나를 구해 주기를 그저 기다리는 것이 아닌 내가 나 자신을 건져내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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