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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민 Apr 07. 2021

인스타그램을 끊었다

<비포 선셋> 셀린의 이야기

작년 11월쯤부터였다.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는 빈도수가 줄어들게 된 게. 뭐 대단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그즈음 유튜브 프리미엄에 빠져 인스타그램을 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 전부였다. 매일 들어가던 것을 이틀 걸러 한 번 혹은 삼사일 걸러 한 번 들어가니 그만큼 못 본 피드가 쌓여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무슨 밀린 숙제를 하듯 몰아서 새로운 피드와 스토리들을 보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그 정방형과 직사각형 속에 보이는 건 하나같이 모자람이라곤 없어 보이는 것들이었다. 의무처럼 볼 것들이 쌓이는 만큼 현타도 함께 차곡차곡 쌓였다.


당시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 돌아보니 그때 난 자격지심과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의식하지 않는 중에 남들의 상황과 나의 처지를 비교하고 있었다. 내가 왜 좋지도 않은 사진에 '좋아요'를 눌러야 하나 심술궂은 생각이 들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안 그래도 둥글지 못한 성격이 더 날을 세워가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는 일부러 인스타그램에 들어가지 않았다. 궁금했다. 매일이 즐거워 보이던 그 친구들이 오늘은 뭘 하는지, 어제는 뭘 했는지. 하지만 잠시뿐이었다. 며칠 지나자 사막 모래 위의 물처럼 그들의 일상에 대한 궁금증도 삭 증발했다. 


남들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건 시간이었다. 인스타그램에 한창 빠져있던 나는 내가 타인을 보던 시선만큼 타인이 날 보던 시선도 중요하게 여겼기에 늘 누군가에게 보일 사진을 찍는 것에 골몰했다. 하지만 더 이상 이런 것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고, 아무것도 아닌 것을 그럴듯하게 포장할 필요도 없게 되었고, 행복함이 젖과 꿀처럼 넘쳐흐르는 이들의 피드와 스토리를 보며 나만 지지리궁상인가 하고 혼자 시무룩할 일도 없게 되었다. 강박도 없어졌고 마음도 편해졌다. 뭐 이 외에도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는데, 다른 건 다 차치하고 무엇보다 시간이 많아졌다. 






셀린: 동유럽 가봤어?

제시: 아니.

셀린: 어릴 때 폴란드에 갔었는데, 그땐 공산주의였어. 거기서 몇 주 지냈는데 나 자신이 변하는 게 느껴지더라. 도시는 우울한 잿빛이었지만 내 마음은 또렷하게 맑아지는 거야. 그리고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어. 

제시: 공산주의 이념? (웃음)

셀린: 나 공산주의자 아니야.

제시: 계속해.

셀린: 어쨌든 그 이유를 나중에 알게 됐는데, 어느 날 유대인 묘지를 산책하다 깨달았어. 내가 평소와는 완전히 다르게 지내고 있었다는 걸 말이야. TV에서 나오는 말은 들어도 모르겠고, 쇼핑할 일도 전혀 없이, 내 생활은 그냥 산책과 사색, 글쓰기뿐이었던 거야. 소비라는 강박관념에서 해방되어 쉬고 있다는 느낌. 마음이 너무나 평온했어. 그냥 그대로가 너무 좋더라고. 처음에는 좀 지루했지만 곧 영혼의 깊이를 느낄 수 있게 됐지. 멋진 경험이었어.




비엔나에서 헤어진 이후 9년 만에 재회한 셀린(줄리 델피)과 제시(에단 호크)의 대화가 생각난 건 왜였을까.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내가 말하고 싶은 부분은 둘의 대화라기보다는 셀린이 어린 시절 폴란드에서 겪은 경험을 말하는 장면이다. 사실 3년 전에 이 대사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한창 조급함에 쫓긴 후 2주간 떠난 여행지에서 느낀 해방감'에 대한 이야기였다. 당시 쓴 글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짧은 여행이었기 때문일까 그녀가 뒤이어 말한 영혼의 깊이까지는 느낄 수 없었다. 다시 그런 순간이 온다면 그땐 내 영혼을 똑바로 들여다보고 싶다."


그땐 여행만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셀린이 말한 저 감정은 반드시 여행을 떠나야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3년이 지나 저 장면을 다시 보니 '어딘가로 떠났다'가 아닌 '평소와 다르게 지냈다'는 것이 더욱 마음에 와 닿았다. 2020년과 2021년 코로나19로 꼼짝없이 발이 묶이며 이제 당분간 해방감은 없는 것인가 싶었는데, 웬걸, 인스타그램 중단으로 얻은 자유는 어떤 여행에서 얻은 것보다 컸다. 셀린이 폴란드에서 그러했듯 물리적으로 많아진 시간을 '나'로 채우기 시작했다. 운동을 하고, 공부를 하고, 글을 쓰고, 나를 들여다봤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고, 원하고, 두려워하는지.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스스로를 잘 아는 줄 알았던 과거의 나는 줄곧 나 자신 겉핥기만 해왔던 것이란 걸, 그리고 '내 영혼을 똑바로 들여다본다'는 의미가 거창한 게 아니었다는 걸. 남들과 비교하고, 염탐을 하고 당하는 강박으로부터의 해방 그 자체가 나를 똑바로 마주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러고 당장 며칠 뒤 다시 인스타그램 로그인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생이 뭐 그런 것 아닐까. 괴로워하고 깨닫고 또다시 반복하고. 어제보다 손톱만큼이라도 성숙해졌다는 것에 위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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