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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민 Jan 19. 2022

학점 3.0의 공대생은 한국어 강사가 되었다

자기소개입니다

-가르치는 일 하셨어요?
-아뇨, 여행사에 있었어요.
-아, 그쪽 업계에 쭉 계셨어요?
-아뇨, 영화 잡지사에 다녔어요.
-무슨 일 하셨어요?
-글 쓰고 콘텐츠 만드는 일을 했어요.
-아, 그쪽 전공이셨어요?
-아뇨, 공대 나왔어요.
-아, 고등학교 때 이과셨어요?
-아뇨, 문과였어요.


처음 누군가를 만나면 피할 수 없는 관문. 위의 짤막한 문답은 얼마 전 들어간 회사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나눈 것이다. 몇 번의 질문과 답변이 오가다, 물어보던 그녀도 놀랐고 대답하던 나도 흠칫했다. '뭐야, 이 일관성 없는 커리어는?' 지금 나는 고등학교 때의 내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하던 일을 하며 근근이 먹고살고 있다.


학창 시절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글짓기상 몇 번 받으니 기고가 만장해져 내가 되고 싶다면 되는 줄로만 알았다. 어리석은 중생이여. 하지만 인생은 내가 산 다이어리처럼 쉽게 지면을 내주지 않았지. 그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공대에 진학했다. 수학이라곤 분수를 못 벗어나 본 내가 공대라니. 날 잘 알던 친구들은 당연히 기암을 했다.


학교에 제대로 나가지도 않던 나는 어찌어찌 울면서 3.0의 학점을 만들고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그 눈물 젖은 학점 덕에 나는 졸업하기 2주 전 취업을 했다. 처음 맡았던 업무는 온라인 마케팅이었다. 말만 온라인 마케팅이었지 눈에 띄게 한 일은 그다지 없었다. 후에 생각해보니 전공 때문에 뽑힌 것이 아닌가 싶기도.


3~4년쯤 지나자 회사의 알만한 선배들은 다 알고 계셨다. 내가 글 쓰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걸. 그리고 내가 처음 입사할 때부터 쭉 함께 했던 팀장님의 권유로 나는 다른 부서로 가서 콘텐츠를 만들고 기사 쓰는 일을 하게 되었다. 꿈만 같았던 3년 하고도 반이 지났다. 너무 행복했지만,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오랜 꿈을 위한 결단을 내렸고, 1년이 흘렀다. 그리고 그 시기 난 내 인생 최악의 선택 TOP3 중 단연 1위를 차지할 선택을 해버리고야 만다. 여행이 좋으면 그저 여행을 다니면 될 것을, 왜 여행사를 들어가선. 여행업계는 변수가 너무 많았다. 그중에서도 코로나는 감히 상상도 못 했던 변수 중의 변수였다.


폭풍우 뒤엔 무지개가 뜬다지 않던가. 세찬 비에 온통 진흙탕이 되고 흠뻑 젖어버렸지만, 그 장대비 아래서 앞으로 뭘 해야 하나 생각했다. 그 고민은 장담컨대 고등학교 3학년 때 하던 진로 고민보다 100배는 더 깊고 진지한 것이었다. 고민 끝에 난 회사 문을 걷어차고 나오며 다짐했다. 공부를 하자.


소속감을 갑옷처럼 여기던 때가 있었다. 학창 시절엔 학교가 그랬고, 취업 후엔 회사가 그랬다. 갑옷을 벗어나면 죽는 줄로만 알았다. 불과 십 년 전 학점 3.0도 겨우 만들었던 내가 공부를 생각했다. 졸업 후 시간이 뜰까 무서워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던 내가 10개월을 백수로 지냈다. 이건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


그리하여 나의 현 위치는 여기. 이제야 조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여기가 나의 종착지는 아닐 것이다. 앞으로 몇 번의 반전 커리어가 더 생길 수도 있는 일이다. 뭐가 어찌 되었든 인생은 내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불과 얼마 전엔 생각도 못했던 나의 위치. 연말정산 시즌이 돌아왔다. 이젠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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