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차는 2004년식 소나타였다.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고등학교 보내도 되겠다며 낄낄댔지만 뭐 딱히 차를 자주 타고 다니는 것도 아니었고, 차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크게 아픈 데도 없던 터라 굳이 바꿔야 할 이유를 못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해 사고가 났다. 겸사겸사 여차 저차 해서 차를 바꾸기로 했다.
세상은 빠르게 변했고, 이 빠른 세상 안에서 17년은 아주 길고도 긴, 몹시 많은 것이 바뀌고도 남을 만한 시간이었다. 차에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자동차 교체 주기가 보통 5, 6년 정도 되던가? 그렇다고 치면 17년이라는 시간은, 이건 뭐 조선시대에서 현대로 시간 여행을 온 수준이었다.
전 차의 음악 재생 시스템은 대략 이러했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이름 모를 것에 ‘테이프’라는 것을 넣는다. 또는 차 트렁크 깊숙이 있는 플레이어에 ‘씨디’라는 것을 넣는다. 그리고 다시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로 돌아와 이름 모를 것을 조작한다. 가수는커녕 노래 제목도 안 나온다. 나오는 것은 씨디 혹은 테이프에 붙여진 숫자와 트랙 넘버 정도.
“엄마, 앞으로 차에서 노래 들을 때는 여기 블루투스 있지, 여기 엄마 핸드폰 연결해 놓았으니까 유튜브에서 엄마가 듣고 싶은 노래 검색해서 틀면 돼.” 차를 산 지 어언 세 달이 넘어가지만 엄마는 단 한 번도 유튜브로 노래를 들은 적 없다. 그러다 몇 주 전쯤 엄마는 대뜸 작업을 시작했다.
책상 위 오른쪽에는 차에서 가지고 온 CD와 테이프 더미들, 왼쪽에는 A4 용지를 반으로 접은 길쭉한 종이를 놓곤 엄마는 좋아하는 노래를 주욱 적어내려 갔다. 그러더니 나와 동생에게 그 리스트를 건네곤 ‘다운받아 달라’고 하셨다. “아, 엄마! 누가 요새 노래를 이렇게 다운 받아 들어, 소리바다 없어진 지가 언젠데!”
내가 엄마와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동생은 옆에서 거들었다. 유튜브에서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를 검색하는 것이 훨씬 쉽다고. 기어이 엄마는 나를 이겼고, 난 서랍을 뒤져 몇 년 전에 산, 언제 마지막으로 썼는지 기억도 안나는 하늘색 USB를 찾았다. 16기가 짜리였다.
쉬운 것이 만연한 시대다. 검색 몇 번이면 웬만한 정보는 다 찾아낼 수 있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들과도 언제든 얼굴을 보고 이야기할 수 있으며, 굳이 밖에 나가 발품을 팔지 않아도 내 방 침대에서 수많은 콘텐츠들을 골라 볼 수 있다. 핸드폰과 노트북만 있으면 거진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추구하지 않으면 애정을 잃어버린다”고. 내가 알고 싶은 정보를 얻기 위해 도서관에 가 책을 빌려보고, 주고받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정성을 꾹꾹 담은 손편지를 보내고, 굳이 내가 좋아하는 영화관에 찾아가 돈을 내고 영화를 보는 것. 추구하면 애정 하게 된다. 아니, 애정 하면 추구하게 되는 건가.
낭만이 사라진 시대, 추구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모든 것이 쉽다는 명목 하에 다 사라져 버릴 것만 같기도 하다.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종이에 눌러쓰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찾아 음원 추출을 하고, 16기가짜리 하늘색 USB에 담은 후 차에서 흘러나오기까지. 어쩌면 이 모든 것은 낭만을 찾는 과정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