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안와골절 회복기 (손흥민 선수 회복 기원!)
군대 유격훈련 중 '트러스트 폴(trust fall)'이란 코스가 있다. 높이 2미터 정도 되는 난간에서 떨어지는 사람을 6명 정도의 사람들이 팔로 그물을 짜 받아내는 훈련이다. 여기서 떨어지는 사람이 지켜야 할 점이 있다. 몸에 힘을 뺀 채 뒤돌아 떨어져야 하고, 양팔은 팔짱을 낀 후 절대 풀어선 안 된다. 겁을 먹고 팔을 휘젓다가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가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0년의 무더운 여름날, 산 중턱에서 유격훈련이 한창이었다. 교관이 트러스트 폴 시범을 보일 건장한 병사 여섯을 골랐다. 시범조엔 나도 끼었다. 떨어질 사람은 얼굴 정도만 알고 있던 정비대대 아저씨 - 당시 군대에선 타 부대 병사를 계급 고하에 관계없이 이렇게 불렀다 - 였다. 그의 얼굴에 불안감이 감돌았다. 자대 배치 이후 두 번째 유격훈련이었고, 당시 상병 5~6개월 차 '상꺾'이었던 나는 대수롭지 않게 팔 그물을 짰다. 잠시 후 교관의 신호가 떨어졌고, 정비대대 아저씨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마지못해 공중에 몸을 던졌다.
잠시 후 갑자기 눈앞에 밤이 펼쳐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 동료들이 땅바닥에 널브러진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오른쪽 눈이 떠지질 않았다. 알고 보니 정비대대 아저씨가 떨어지면서 휘두른 팔꿈치에 눈을 정통으로 맞은 것이다. 사고 소식에 부대장들이 부리나케 산을 뛰어 올라왔다. 정비대대장은 자신의 겁쟁이 부대원에게 혹독한 벌을 내렸다. 정비대대 아저씨는 인정사정없는 얼차려에 근육이 끊어질 것처럼 고통스러워했다. 내가 얼마나 다쳤는지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나는 동갑내기 소대장의 부축을 받으며 산길을 내려갔다. 여전히 오른쪽 눈은 떠지지 않았다. 한쪽 눈에만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 그리 힘든 일인지 몰랐다. 계단 높이 가늠이 안 돼 발을 헛디디곤 했다. 겨우겨우 숙영지 내 간이 의무대에 도착했다. 소대장이 군의관을 부르기 위해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다이아 두 개짜리 군의관이 나왔다. 전문의 자격증이 없는 의사다. 한동안 내 눈을 살피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담배 한 대 피울래?"
그는 자신이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의학을 배웠다는 이의 처방이 담배라니. 헛웃음을 지으며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사제담배였다. 군의관이 조심스럽게 불을 붙여주었고, 크게 한 모금 빨아 내뱉었다. 순간 비강에서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마치 전쟁에서 중상을 입은 군인이 된 기분이었다. 상황이 희극 같다고 느껴졌다. 담배를 다 태웠을 때쯤 구급차가 도착했다. 비강에 고인 피를 뱉어내고 들것에 몸을 뉘었다.
나는 부대 내 의무대로 보내졌다. 다이아 세 개짜리, 즉 전문의를 딴 군의관이 있는 곳이다. 그는 평소 헝클어진 머리에 흐리멍덩한 얼굴로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하다 병사들을 맞곤 했다. 그러나 이 순간만큼은 그도 사뭇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는 내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별안간 손가락으로 콧구멍과 귓구멍을 막고 입을 다문 뒤 얼굴에 바람을 넣어보라고 했다. 나는 양손 새끼손가락으로 콧구멍을 누르고 엄지손가락으로 귓구멍을 막은 뒤 입을 다물고 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오른쪽 눈 밑이 풍선처럼 빡 부풀어 올랐다.
"뼈가 부러졌네. 안 되겠다. 병원 가야겠다."
요컨대 눈 주변 골절로 그만큼 공간이 생겨, 바람이 들어가 부풀어 오른 것이다. 엑스레이 같은 영상의학장비를 활용하지 않은 정말이지... 가성비 만점 골절 진단 방법이다. 다만 부풀어 오른 내 눈이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아무튼 나는 다시 구급차를 타고 이번엔 경기도 성남 국군 수도병원으로 이송됐다. 군 최고의 의료시설인 만큼 이곳의 의사는 내게 온 몸의 구멍을 막고 바람 넣기를 종용하지 않았다. 대신 눈에 안약을 넣고 그럴싸해 보이는 영상장비로 눈을 촬영했다.
나는 안와골절 진단을 받았다. 안와란 두개골에서 눈이 들어가는 구멍 부위 뼈를 이르는 말이다. 즉 눈구멍이 부서졌다는 말이다. 그리고 오른쪽 눈에 안대를 채웠다. 영화나 만화에서만 보던 애꾸눈의 해적이 된 기분이었다. 그날 밤 부모님이 병원에 도착했다. 다행히 놀란 얼굴은 아니었다. 함께 온 이모를 통해 나중에 알게 됐는데, 부모님은 나를 위해 일부러 침착한 척 애쓰셨다고 한다.
의사는 눈이 아닌 바로 옆 관자놀이를 맞았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며 불행 중 다행이라고 했다. 안구를 정통으로 맞았기 때문에 눈 주변 뼈만 부러진 정도로 끝났다는 것이다. 눈알이 그렇게 튼튼한 줄 몰랐다. 하지만 수술은 간단치 않았다. 얼굴뼈가 부러진 만큼 전신마취를 해야 했다. 부러진 안와 부분에 녹말 인공뼈를 넣는 게 수술의 목적이었다. 녹말은 나중에 몸 안에서 녹고 그 자리를 뼈가 채우게 된다. 말은 그럴싸했다.
수술은 잘 끝났고 며칠 뒤 붕대를 풀었다. 눈은 여전히 부어있었지만 다행히 시력을 잃은 것 같진 않았다. 그런데 눈알 굴리기가 쉽지 않았다. 눈알을 움직이려면 뼈에 붙은 근육을 움직여야 하는데 뼈가 부러졌기 때문에 눈이 일정 각도 이상은 움직이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자 양쪽 눈의 초점이 맞지 않아서 물체가 두 개로 보이는 '복시'가 생겼다. 정면을 볼 때는 상관이 없는데 눈을 아래로 굴리기가 힘들었다(눈 아래쪽 뼈가 부러졌기 때문). 글씨를 읽으려면 종이를 얼굴 정면으로 추켜올려야 했다. 책상 위에 펼쳐진 책은 읽기 쉽지 않았다.
향후 학업에 지장이 생기는 건 아닌지 잠시 걱정이 들었지만, 의사 선생님은 차차 회복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병원에 입원해있는 동안 도서관에서 책을 부지런히 빌려서 읽었다. 글씨를 오래 읽다 보면 눈이 피곤하고 살짝 어지러운 감이 들긴 했지만 다행히 심각한 수준 같진 않았다. 수도병원에서 15일 회복한 뒤 국군 대전병원으로 후송돼 또 15일간 입원한 뒤 퇴원했다. 의사는 한동안 과격한 운동은 하지 말길 당부했다. 녹말 뼈가 충격을 받아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남은 군생활 동안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훈련도 무난하게 받고 축구도 족구도 무리 없이 즐겼다.
사고를 당한 뒤로 벌써 12년이 흘렀다. 그 사이 내가 안와골절을 당했었는지도 잊고 살았다. 그러다 문득 손흥민 선수가 안와골절 부상을 입었다는 뉴스를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손흥민 선수는 26명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13일(현지시간)엔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 밝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부디 그의 모든 뼈가 하루빨리 온전히 붙길, 그리고 월드컵 첫 경기부터 맹활약해주길 간절히 기도한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