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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영 May 15. 2023

코인과 욕망

며칠 전 잡코인 중 하나인 이캐시(XEC)의 수익률이 -50%까지 내려가길래 눈물을 머금고 매도했다. 치킨 두 마리 값 정도 되는 현금이 세상에서 '소멸'해버렸다. 인간은 죽으면 그 영혼이 천국으로 간다는데, 이 돈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억울하고 분통하다.


그러자 한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모 분야에서 꽤나 유명한 전문가다. 그는 점심식사 자리에서 "속는 셈 치고 딱 5만원어치만 사보라, 얼마 안 가 큰돈이 될 것이다"며 해당 코인을 소개했다. 그렇다. 그가 바로 치킨 두 마리어치의 행복이 삭제되는 데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코인 투자를 결정한 사람은 나였다. 일단 유명인사가 추천했기에 '믿고 사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실제 코인으로 억만금을 번 경우를 목격했기에 '내게도 한 번쯤 그런 행운이 오지 않을까' 요행심이 발동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 심장이 벼룩의 간정도 크기밖에 안 돼서, 그 뒤 물을 타고도 총 10만원어치밖에 투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런 나와는 달리 '야수의 심장'을 지닌 사람을 취재하면서 몇 명 봤다. 2년 전, 도지코인 380만개를 갖고 있는 투자자를 인터뷰했다. 총 코인 가치는 고점 시세 기준 당시 환율로 20억원이 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림의 떡이었다. 그가 코인을 보유하던 거래소가 출금을 해주지 않아 현금화를 못하고 있었다. 당시는 사기 거래소가 많던 시절이다.


그 투자자는 코인 찾기에 인생을 걸었다. 서울 여의도의 번듯한 직장을 때려치우고 거래소를 상대로 소송 준비에 전념했다. 그는 인터뷰를 하는 도중 손을 덜덜 떠는 등 불안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 아파트 한 채 값이 날아갈 판인데 제정신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그의 초기 종잣돈은 1000만원 정도였다. 수익률을 계산해 보니 2만5000%가 나왔다. 입이 떡 벌어지면서도 뭔가 좀 이상했다. 실제 손실은 20억원이 아니라 1000만원이지 않나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어쨌든 내 지갑에 있다가 사라진 돈은 1000만원이니까. 물론 그에게 이 말을 하진 않았다.


미친 듯이 등락하는 코인 시세 때문에 생긴 착시인 것 같았다. 이렇듯 코인은 박봉 직장인으로 하여금 재력가 건물주 벼락부자의 꿈을 꾸게 한다. 그 가능성을 한 번 맛본 이상 이전 마음가짐으로 돌아가기는 힘들다. 이후로 그가 코인을 되찾았는지 여부는 듣지 못했는데, 어떤 식으로든 일이 잘 풀렸길 바란다.


최근 모 의원님께서도 그런 꿈을 꾸셨던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불법 정치자금이니 게임업계 로비니 하는 거창한 의혹은 다 제쳐두자. 어쨌든 본인 해명대로라면 한 번에 위믹스 코인 10억원어치를 샀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란 것 아닌가?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도 아닌 김치코인을 분할매수 방식도 아닌 일거에 구매했다니,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눈덩이처럼 커졌다. 결국 해당 의원께선 "무소속으로 진실을 규명하겠다"며 탈당을 선언했다. 이로써 당 차원의 진상조사나 윤리 감찰은 중단될 가능성이 커졌다. 도대체 무엇을 지키기 위해 제1야당이라는 번듯한 직장을 때려치우려는지, 그 의중을 우리는 추측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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