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참여정부 당시 '경제 위기론'이 부상하자 故 노무현 대통령은 "과장된 위기가 진짜 위기를 부른다"라고 대꾸했다. 과도한 위기감이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켜 실제론 멀쩡한 경제를 침체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자본시장 구성원들이 다들 똑똑하고 합리적인 것 같아도, 인공지능(AI)과 달리 심리전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한낱 유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은행 이름에서 알 수 있듯 SVB의 주 고객은 스타트업이었다. 미국의 살벌한 통화 긴축 정책이 초래한 돈가뭄을 견딜 재간 없는 영세 업체들이다. 이들은 결국 은행에 넣어둔 현금을 꺼내기 시작했다. 막힌 자금 혈을 뚫기 위한 고육책이다. 여기까진 통화긴축 국면에서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상황이다.
SVB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졌단 소문이 나면서 사달이 났다. SVB 자산의 상당수가 채권이었는데 미국의 정책금리(기준금리)가 치솟으며 채권가격이 떨어진 것이다(채권 가격은 금리와 반대로 움직인다). 즉 은행 자산이 크게 줄어 고객 예금을 온전히 돌려주지 못할 처지가 됐다.
소문이 돌자 SVB 고객들은 각자 호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모바일뱅킹에 접속했다. 그리고 SVB에 넣어둔 자신들의 현금을 모조리 인출하려 했다. 미국의 한 보험 스타트업 설립자는 "창업자 행사를 가기 위해 셔틀버스에 탔더니 동료들이 스마트폰을 미친 듯이 두드리고 있었다"라고 당시를 기억했다.
이른바 '스마트폰 뱅크런'이다. 하루에만 55조원 이상의 예금이 빠지면서 SVB의 부채는 순식간에 자산 규모를 넘어섰다. 미국 16위 은행은 단 36시간 만에 몰락했다.
SVB는 과장된 위기가 진짜 위기가 된 사례일까? 만약 자산 감소 소식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지 않고, 모바일뱅킹이 없어서 예금자들이 직접 창구를 찾아 돈을 빼야 하는 조건이었다면 결과가 달랐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는 만큼 각자 상상에 맡기겠다. 다만 개인적으로 SVB는 자산 포트폴리오 불균형과 고객 특성이 맞물리면서, 터질 게 터진 '진짜 위기'였다고 평가하고 싶다.
검사나 감독 권한이 없는 일개 개인으로서 새마을금고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상황을 비교적 정확하게 알고 있을 기획재정부나 행정안전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수장들은 입을 모아 '과장된 위기'임을 역설하고 있다.
각 부처가 하루가 멀다 하고 "불안 심리에 따른 예금 해지만 하지 않는다면 새마을금고는 안전하다"며 같은 내용의 브리핑을 열고 있다. 그리고 행정안전부 차관과 금융위원장은 새마을금고에 몸소 수천만원을 예치하는 살신성인(?)의 본보기(!)를 보였다.
여기까진 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조치라고 생각한다. 하긴 정부는 물밑 상황이 급박하더라도 진짜 위기임을 공언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랬다간 민심과 야당의 뭇매를 맞고 다음 선거에서 표가 날아갈 테니.
그런데 별안간 주무부처인 행안부가 연체율 상위 금고에 대한 특별검사 일정을 미루겠다고 했다. 그것도 공식 발표가 아닌 모 통신사 기사를 통해 사실이 전해졌다. 보통 이런 경우 뒤늦게나마 보도자료를 배포하기 마련인데 그런 것도 없는 모양이다.
특별검사 연기 취지는 '불필요한 시장 불안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금고에 검사인력이 나가면 고객들이 동요할 것이고, 겨우 꺼진 뱅크런 불씨가 되살아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검사는 하되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안전하게 하자는 전략이다.
금융시장 안정성을 고려하면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행안부의 대처 방식이 못 미덥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행안부는 과도한 위기를 지연시켜 진짜 위기로 만들지 말고 확실하게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