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아침 서울 마포구의 A 중고등학교. 교문에 걸린 졸업식 현수막을 배경으로 뽀글뽀글 파마머리의 중년 여성 6명이 서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진을 대신 찍어주겠다고 스마트폰을 건네받으며 물었다. 누구의 졸업식이냐고.
“저희 다 졸업해요!”
이 학교는 10대부터 90대까지 정규 교육을 놓친 만학도 여학생들이 다니는 2년제 중·고등학교다. 이번 중학교 졸업생 256명 중 228명이 고등학교에 올라가고, 고등학교 졸업생 228명은 전원 대학에 합격했다. 뽀글 머리 학생들은 교실 책상에 앉아 저마다 기념사진을 찍고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떠들썩하다. 교실 시끄러운 건 학생 나이와는 상관이 없는가 보다. 몇몇 학생들은 카메라를 보더니 “어디 방송국에서 왔어요?”라며 호들갑이다.
이날은 졸업식을 취재해 리포트로 만들어야 했다. 일정한 순서에 따라 행사가 진행되는 만큼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행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장면은 무조건 영상으로 찍어야 한다. 선생님과 제자가 포옹하는 장면이나 감격에 눈물 흘리는 학생의 얼굴 등. 그리고 기왕이면 '현장음'도 풍성하게 담는다. 졸업식이니 만큼 노래 소리나 축하 인사 등을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인터뷰다. 만학도 졸업식이니 만큼 모두가 다 사연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두드러지는 케이스가 좋다. 무엇보다 상대방이 인터뷰에 응해야 하지만.
"환갑에 이룬 대학생 꿈"…'만학도 전문' 여고 졸업식 / 2022.02.24. TV조선 뉴스퍼레이드 갈무리“엄마는 그냥… 고졸이라고 써…”
그중 올해 환갑을 맞은 유모씨를 인터뷰했다. 그는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에서 부모 학력을 알아오라 할 때마다 쥐구멍에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남편은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유명을 달리했다. 장례식이 끝난 후 부의금을 정리하는데 한자를 읽지 못해 누가 다녀갔는지 알 수 없었다. 다시 한번 억장이 무너지고 눈물이 쏟아졌다. 하지만 삶은 살아지는 것이었고, 짧은 가방끈에도 그럭저럭 먹고살 수 있었다. 하지만 머릿속은 늘 공허했다. 더 늦기 전에 머리를 배불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처음 책가방을 매고 중학교에 등교하던 날, 유씨는 교실에서 자신의 이름이 적힌 명찰을 받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공부를 시작하고 나니 버스 창문 밖 풍경부터 달라 보였다. 알파벳을 깨우치자 영어 간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젠 한자도 척척 읽을 수 있다. 유씨에게 어떤 과목이 제일 재밌느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 대신 수학 참고서를 한 권 꺼내 아무 곳이나 펼쳤다. 이차방정식을 푸는 문제가 나왔고, 근의 공식을 이용해 거침없이 답을 구해나갔다.
언제부턴가 그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하고 싶은 공부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 가면 한자 지도사와 한국사, 컴퓨터 자격증에 모조리 도전할 생각이다. 하지만 그의 꿈은 더 크고 높은 곳에 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포부를 밝혔다. “아이들이 제 머리에 학사모를 씌워줄 때마다 눈물을 흘렸는데, 이제는 제가 아이들에게 학사모를 씌워주고 싶어요. 지금까진 자식들이 제 인생의 면류관이었다면 이젠 제가 아이들의 자랑거리가 되고자 합니다”라고.
그다음 시종일관 당찬 모습의 반장 정모(66)씨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정씨는 시골 마을에서 1남 5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장녀라는 이유로, 또 여자라는 이유로 초등학교만 졸업한 뒤 공장에 나가 돈을 벌어와야 했다.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고된 작업이 이어졌고 주중 4일은 밤 9시까지 일해야 했다. 중학교에 진학할 방법을 알아봤지만 도저히 여건이 맞지 않았다. 천자문을 사서 기본적인 한문을 공부하며 배움에 대한 갈증을 가까스로 달랠 뿐이었다.
되고 싶은 것은 많았다. 특히 군인이나 경찰이 하고 싶었다. 하지만 늘 ‘초졸’ 학력이 문제였다. 지원서를 낼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꿈은 점점 멀어졌다. 스무세 살에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을 낳았다. 아무 기반 없이 시작한 장사였지만, 근면·성실·신용을 목숨처럼 여겨온 터라 날로 번창했다. 두 아들을 대학에 보내고 집까지 장만해서 결혼시켰다. 그러고 나니 어느새 육십 문턱을 넘었다.
'이젠 하고 싶은 것 하고 사시라'는 며느리들의 권유에 중학교에 입학했다. 당찬 성격을 살려 전교 부회장에 도전해 당선됐다. 남들이 싫어하는 일을 도맡으면서도 영어암송, 한자 읽기, 사자성어, 간체자, 컴퓨터 분야 등에서 상을 7개나 받았다. '하면 된다'는 말은 진짜였다. 내친김에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꿈에도 그리던 대학에 합격했다. 보건복지학을 전공해 실버산업 전문가가 되는 게 목표다. 졸업식 전날이 대학 오리엔테이션이었다고 한다. 그에게 대학 합격 소감을 물었다.
“솔직한 심정은… 중학교도 못 나왔다는 부끄러움 때문에 평생 남의 뒤에만 숨어 있었어요. 내가 노력해서 성과를 내더라도 나서기가 주저스럽더라고요. 그런데 이젠 달라요. ‘그래 나 대학생이다, 곧 대학 졸업할 것이다’ 생각하니 50년 동안 가슴에 얹고 살아온 돌멩이가 다 부서지는 것 같아요. 구름 위를 뛰어다니는 느낌입니다.”
졸업식이 진행됐다. 졸업장을 건네는 선생님보다 받는 학생의 주름이 더 깊게 파였다. 교가를 목 놓아 부르다가 학생 몇 명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친다. 코로나19 때문에 번듯한 소풍 한 번 가지 못한 고등학교 2년이었지만, 아쉬움보다는 감사함으로 충만하다. 오늘 교정을 나서면 또다른 인생이 시작된다. 졸업식이 끝나고 반장이 교실 앞으로 나와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저희 여고 동창생이죠? 50년 동안 우리 정말로 바라던 여고 동창생입니다.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만나요.”
이렇게 표현하기 뭐하지만, 리포트를 만들어야 하는 기자로서 최고의 멘트였다. 나는 이 육성을 기사의 맨 마지막에 배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