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국민은 하나가 되었고
우리는 승리할 것이라 믿습니다.
전쟁 4일째.
2022년 2월 27일 아침.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하늘에 공습경보가 울려 퍼졌다. 집에 있던 민간인들은 서둘러 지하실이나 벽이 두꺼운 곳을 찾아 몸을 피했다. 방공호로는 갈 수 없었다. 외부 통행금지령이 내려졌기 때문에 자칫하다간 적군으로 오인돼 사살당할 수 있었다.
전세계 모든 언론이 우크라이나의 전쟁 참상을 보도했다. 당시까지 우크라이나 현지에 직접 가서 취재하는 한국 언론은 없었다. 대신 외신 보도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영상을 종합해 뉴스로 제작했다. 우리 회사 국제부도 파견 인원을 받으며 규모를 늘렸다. 사회부였던 나도 이날은 국제부의 손이 되어 잔혹한 역사의 초고를 쓰게 됐다.
"푸틴, 전쟁을 멈춰라! 우리 국민 살인 중단하라!"
이날 오전 한국에 있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서울 중구 정동길 주한러시아대사관 앞에서 반전 집회를 열었다. 한글로 '우크라이나 도와주세요'라고 쓴 피켓을 들고, 어색한 한국말로 목이 터져라 러시아의 철권 통치자를 규탄했다. 이곳에서 만난 우크라이나인들에게 키이우에 있는 지인 소개를 부탁했다. 현지 목소리를 통해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 남성으로부터 키이우에서 한국어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보디아니츠카씨를 소개받았다. 그에게 스마트폰을 이용해 현재 상황을 인터뷰하듯 녹화해달라고 부탁했다.
몇 시간 뒤 영상이 전송됐다. 떨리는 손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화면 속 보디아니츠카씨는 타일 벽에 등을 대고 앉아 있었다. 집 내부에서 욕실이 그나마 안전하다는 판단에서다. 밖에선 포격음, 장갑차가 대포를 쏘는 소리가 들렸다. 전쟁의 공포가 텅 빈 키이우를 어지럽게 채우고 있었다. 보디아니츠카씨는 전기와 통신이 끊길까 걱정이었다. 고립된 상태에서 외부와 소통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는 인터넷뿐이었다. 그는 “지금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 때문에 가족, 친구들과 지속적으로 건강·심리상태를 체크하고 있다”며 “통신은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키이우 중심부에 살고 있는 카디릴예예바씨와도 연결됐다. 그에겐 동영상 촬영을 부탁했다. 카디릴예예바씨는 스마트폰 영상으로 집에서 피난 중인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주었다. 그의 집에선 마실 물이 떨어져 가고 있었다. 생수 배달은 중단된 지 오래였다. 큰 마트는 모두 문을 닫았고 작은 가게 일부가 이따금씩 문을 열었다. 수돗물마저 끊길 경우에 대비해 화장실 욕조에 물을 가득 받아 놨다.
밤사이 공습경보가 울리면 가족들은 복도 벽 근처에 침대 매트리스를 놓고 밤을 지낸다. 카디릴예예바씨집에선 복도 벽이 가장 두껍기 때문이다. 창문에는 엑스(X) 자 모양으로 테이프를 붙여놨다. 폭발 충격으로 유리 파편이 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밤엔 전기 대신 촛불을 사용하고, 베란다에 담요를 걸어 빛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았다. 러시의군 야간공습의 타깃이 되지 않기 위한 등화관제(燈火管制)다.
두 현지인에게 현재 심정을 물었다. 보디아니츠카씨는 꽤나 담담한 모습이었다. 전쟁 상황이 점차 익숙해져 간다고 했다. 다만 인터뷰에 응한 것은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그는 “한국에서 주는 도움에 많은 고마움을 느낀다”며 “각국 정부가 어떻게든 우리를 도와줬으면 좋겠다”라고 호소했다.
카디릴예예바씨는 전쟁이 무섭다고 했다. 동영상에 담겨 있는 그의 목소리는 격양돼 있었다. 하지만 그에겐 확고한 믿음이 있다. 그는 “여기저기서 폭발음이 들리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리 군대가 잘 싸우고 있다 생각하고, 우크라이나 국민은 하나가 되었고, 우크라이나가 승리할 것이라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보디아니츠카씨의 인터뷰가 나간 뒤 다른 방송국에서 내게 연락이 왔다. 그를 자신들에게도 소개해달라는 것이었다. 본인의 허락을 받고 연락처를 알려줬는데, 이후 보디아니츠카씨는 그 방송국의 현지 리포터로 활약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