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현장에서 22화

코로나와 자영업자

by 정준영

2020년 5월 이태원에서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 사실 집단이라고 해봐야 일일 신규 확진자 스무 명 안팎 규모. 하루에만 60만명이 감염된 올해 오미크론 유행 당시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지만, 아무래도 창궐 초기다 보니 더 민감했던 것 같다. 방역당국에서 확진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브리핑했을 정도였으니.


거의 모든 방송사 카메라가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로 몰려갔다. 혹여나 코로나19 여파로 문 닫은 가게가 있다면 집중적으로 촬영했다. 그런데 영업이 중단된 줄 알았던 가게에서 갑자기 사람이 나와 소리친다.


"찍지 좀 마요 진짜, 장사 못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왜 그래요?"


라운지 클럽 등에선 더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사설 경호원이 나와서 촬영을 제지한다. 그러면 우리는 멀찍이 떨어져서 당겨 찍는다. 그랬더니 한 직원이 다가와 토로한다. "아 진짜 너무한 거 아녜요?"


자영업자에게 감정이 있어서 취재하는 건 절대 아니다. 코로나19가 바꿔놓은 사회의 면면을 보여주는 것이 언론의 일이다. 하지만 일단 기사가 나오면 대체로 달갑지 않은 결과로 이어진다. 구청에서 단속을 나갈 수도 있고, 손님들의 발길이 끊길 수도 있으니까.


코로나19는 자영업자들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확산세가 잡히지 않자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정책을 실시했다. 사람들을 일정 수 이상 모이지 못하게 하고 영업시간에 제한을 뒀다. 세 명 이상 모일 수 없고 그마저도 밤 9시엔 집에 가야 했다. 전쟁을 겪어본 적은 없지만 통행금지가 되면 이런 모습 아닐까.


매출은 직격탄을 맞았다. 식사 위주로 장사하던 곳은 그나마 괜찮았지만 술집이나 유흥시설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재택근무를 실시하는 회사가 많아졌고 사람들은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저녁식사까진 외식을 한다 하더라도 2차는 언감생심.


언론은 자영업자들의 고통을 보도했다. 어떤 자영업자들은 인터뷰를 통해 울분을 토로하고 싶어 했고, 어떤 사람들은 상처에 모래 뿌리느냐며 싫어했다. 섭외는 송구스러웠고 카메라엔 분노가 담겼다. 인터뷰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코로나 전과 비교했을 때 매출이 얼마나 떨어졌고, 언제 폐업을 앞두고 있느니 등. 희망은 메말라 있었다.


이런 자영업자들을 위해 정부는 손실보상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취지는 좋았지만 문제는 기준이었다. 돈을 무제한 풀 순 없기 때문에 필수 불가결했지만, 한 끗 차이로 자영업자들 희비가 엇갈렸다. 자영업자들은 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손실보상금의 부당함을 토로하는 제보가 쏟아졌다.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바뀔 때도 자영업자들을 취재했다. 기준이 강화되면 강화되는 대로, 완화되면 완화되는 대로 식당을 섭외하고 인터뷰해야 했다. 그림은 다 비슷하다. 휑한 식당에서 빈 테이블을 닦는 자영업자들의 모습. 역시 섭외는 쉽지 않았다.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전 국민에게 보여주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야말로 초상집이었다. 신촌 이대 홍대 명동 강남 등등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상권엔 공실이 넘쳐났다. 황학동 주방 거리엔 폐업한 가게에서 쏟아져 나온 물건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쌓였다.


자영업자들은 뭉치기 시작했다.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집단행동에 나섰다. 노동자들은 회사나 특정 산업 등 근거 집단이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규합하기 쉽다. 하지만 말 그대로 스스로 벌어먹고 사는 자영업자들이 시위를 벌이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다. 감염병 예방을 위해 대규모 집회가 금지됐을 때도 자영업자들은 거리로 나왔고, 이를 이유로 경찰에 입건됐다. 하지만 그들은 집회를 멈추지 않았다. 절박했기 때문에.

지난해 9월 서울 마포구의 오래된 맥줏집 주인이 가게 지하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주말근무를 하다 급하게 현장으로 뛰쳐나갔다. 가게 입구엔 지난 6월에 붙은 도시가스 공급 중단 안내장이 붙어 있었다. 이 주인은 자신이 살던 원룸 보증금을 빼서 가게 월세를 냈고, 남은 돈으로 직원들에게 월급을 줬다.


이 사건은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 이후로도 다른 자영업자들의 부음이 이어졌다. 자영업자들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분향소를 차렸다. 이 분향소도 불법이라며 경찰이 막아섰지만, 표 계산에 빠른 정치권이 발 벗고 나서 분향소 설치를 도왔다. 자영업자들은 검은 상복을 입고 재단에 향을 피웠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2022년 4월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됐다. 이제 사람들은 인원 제한 없이 밤새서 놀 수 있게 됐다. 재택근무, 집콕 등 코로나 뉴 노멀 영향으로 예전과 아예 같을 순 없지만 한 숨 돌릴 수 있게 된 건 사실이다.


얼마 전 한국-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과 파라과이전, 이집트전 등 A매치 경기가 있었다. 우리 회사는 경기 중계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축구 경기를 관람하며 응원전을 펼치는 스케치 리포트도 준비했다. 그래서 축구 펍이나 치킨집 등을 섭외해야 했는데, 코로나 때와 달리 섭외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축구 펍은 손님들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가게 직원들은 손님들에게 만석임을 안내하고 돌려보내는 게 일이었다. 축구 펍 사장님은 요즘 매출이 코로나19 때보다 500%는 넘었다고 했다. 코로나 펜데믹 2년 간은 거의 장사를 접다시피 했으니 큰돈을 번 것도 아닐 테지만, 사장님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한 치킨집 사장님은 하루 저녁에만 닭을 백 마리 넘게 튀겼다며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축구라는 일시적인 특수 영향도 있었겠지만, 감격스러웠다. 지난 2년간 자영업자들의 화나고 절망하고 슬픈 얼굴만 봐왔는데 이제는 자영업자들에게 슬픈 질문을 던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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