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현장에서 23화

감정을 파고드는 낚싯바늘

우리는 왜 피싱에 당할까

by 정준영
강철의 마음에도
낚싯바늘 하나 들어갈 감정의 빈틈이 있고,
범죄 조직은 그곳을 노린다.


재작년 '로맨스 스캠'에 관한 기사를 한 편 썼다. 스캠(scam)은 사기란 뜻이다. 사랑으로 치는 사기. 내가 취재했던 45세 여성 A씨는 어느 날 일면식도 없던 B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B는 자신을 미국 육군 3성 장군(중장)이라고 소개했다. 곧 전역하는데, 이후 한국에 들어와 살고 싶다면서 A씨에게 접근했다.


처음부터 B를 곧이곧대로 믿은 것은 아니었다. B는 미군 신분증을 보여주며 A씨를 안심시키려 했다. 미심쩍은 부분이 적잖았지만, 적극적인 B의 태도에 A씨의 마음은 어느 순간 열리기 시작했다. B가 보여줬다던 신분증을 나도 직접 보았는데 매우 조잡하게 위조돼있었다. 3성 장군이라면서 얼굴은 앳된 사병 정도밖에 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눈에 콩깍지가 씌는 순간 모든 것이 믿는 대로 보이나 보다.

2020111990084_0_20201119162507238.jpg 로맨스 스캠 수법 / 제보자 A씨 제공

영어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는 A씨는 인터넷 번역기까지 사용하면서 B와 메신저로 대화를 이어갔다. 불혹의 나이에 찾아온, 이번 생엔 다시없을 것 같았던 로맨스에 A씨의 나날은 황홀했다. 그렇게 2주가 흘렀고 B는 A씨에게 "결혼하자"라고 했다. A씨는 청혼을 받아들였고, B가 전역해 한국에 들어오면 식을 올리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B가 갑자기 테러리스트 소탕 작전에 차출됐다는 것이다. 이때쯤 A씨는 B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영상통화도 했다(아마 B로선 중요한 관문이었을 것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확실하게 흔들어놓기 위한). A씨의 마음은 절망으로 가득 차올랐다. 예비신랑을 목숨 건 대침투 작전에 내보낼 수 없었다. 필사적으로 막아야만 했다.


B는 방법이 없지 않다고 했다. B 대신 작전에 투입될 사람을 구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A씨는 B가 알려준 '미 육군 참모총장'이라는 사람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총장은 B를 대신할 병력에게 대가로 지불해야 할 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A씨는 식당 허드렛일을 하면서 모은 돈을 총장 계좌로 보냈다. 미화 9500달러. 당시 환율로 1000만원이 넘는 돈이었다(지금 환율로는 1368만원).


B는 그 밖에도 돈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A씨는 그제야 B를 수상하게 여기고 집 근처 경찰서에 고소장을 냈다. 하지만 B가 처벌되거나 건넨 돈을 돌려받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우리나라 형법에 따르면 B는 사기죄로 징역 10년 이하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지만, B가 잡힌다는 전제에서다. 범죄조직이 해외에 있는 경우엔 검거가 쉽지 않다.


최근 위 기사를 본 독자가 메일을 보냈다. 그는 "제가 지금 격고 있는 상황과 너무 비슷하다"며 "현재 많은 돈을 송금했는데 '로맨스 스캠이 아닐 거야'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위 기사에 나오는 미국 육군 참모총장이 제임스 맥콘빌 장군이냐고 물었다. 아마 그를 속인 사기범이 맥콘빌 장군을 사칭했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하루속히 경찰서에 가셔서 상담을 받아보시라"라고 답장을 보냈다.


흔히 이 같은 로맨스 스캠이나 보이스피싱 등 사기 피해는 연세가 많으신 취약계층에서 일어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나이가 어리고 가방끈이 긴 사람들도 피싱 피해를 당한다. 2018년 수습기자 시절 사이버수사팀 수사관으로부터 들었던 얘기다. 얼마 전 보이스피싱 신고가 들어왔는데 피해자는 20대 중반의 현직 변호사였단다. 검찰이나 금융당국을 사칭하는 흔하디 흔한 수법에 당한 것이다. 현직 법조인이면 검찰의 업무 방식을 잘 알 텐데, 왜 범죄를 의심하지 않았을까.


그 경찰에 의하면 보이스피싱은 나이대, 직업을 불문하고 일어난다고 한다. 제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자신이 사건에 연루됐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성이 무너져 내린다는 것이다. 강철의 마음을 지닌 사람에게도 낚싯바늘 하나 들어갈 감정의 빈틈이 있는 것이고, 범죄 조직은 그곳을 노린다. 사랑의 감정을 이용하는 로맨스 스캠은 그중에서도 악질이다. 낯선 이와의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기에 세상은 너무 각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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