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현장에서 25화

누가 착한 사람인가

한 쪽 입장을 편드는 것은 경계하라

by 정준영

#사실

A와 B는 사이가 좋지 않다.

어느 날 B가 자신의 무리를 이끌고 A의 약점을 잡겠다며 주거지를 침입했다.

수사기관은 B의 주거침입 혐의가 인정된다고 봤다.


‘B가 나쁘네. 양아치야 뭐야..?’


A측이 제공한 자료가 산더미였지만 내용을 정리하는 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100가지 사실이 있더라도 그중 주제에 맞는 51가지만 활용해 쓰여지는 게 기사다. 수사기관에서 인정된 사실을 위주로 주제를 세웠다. 제공된 영상은 질이 매우 괜찮았다. 업계에선 '그림이 좋다'고 표현한다. 남자 넷이 아파트로 우르르 들어오는 폐쇄회로(CC)TV, 차를 타고 미행하는 블랙박스. 데스크들은 재밌는 기사가 될 거라고 기대했다.


A의 아내 C와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누가 봐도 사건 당사자는 A였지만 어쩐지 그는 나서지 않았다. 제보자도 A가 아닌 A의 직원이다. 하지만 인터뷰를 A가 하든 C가 하든 대세엔 지장이 없었다. 그냥 A에게 카메라 앞에 나서고 싶지 않은 사정이 있겠거니 했다. 그래서 C에게 전화했건만 그도 인터뷰가 부담스럽단다. 그래서 굳이 카메라 앞에 설 필요는 없으며, 전화 인터뷰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방송 제작자 입장에서야 카메라 인터뷰가 제일 좋지만, 이 또한 대세에 영향이 없다. C는 남편 A에게 물어본 뒤 결정하겠다고 한다.


잠시 후 C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의외로 남편이 카메라 인터뷰를 권했다고 한다. 익명이 보장되길 원하는 이들은 대개 전화 인터뷰를 선택한다. 얼굴은 아예 나오지 않고 목소리는 변조된다. 자막에 가명까지 적으면 개인정보 특정은 거의 불가능하다. 제보자로선 가장 안전한 수단이다. 물론 카메라 인터뷰를 하더라도 앞모습 대신 뒷모습을 찍고 모자이크 처리를 하지만, 가까운 사이라면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하다. 몸의 실루엣과 억양은 감출 수 없으니. 그런데 A는 자신의 아내를 카메라 앞에 서게 했다. 왜였을까.


#C의 인터뷰

한적한 공원 벤치를 찾아 C와 마주앉았다. 그에게 그날의 일을 물었다. C의 얼굴에 그늘이 진다. 하지만 이내 담담히 입을 연다. B 무리가 집 앞에서 서성거렸을 당시 집 안엔 C 뿐이었다. C는 인기척을 느꼈지만 지나가는 사람이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잠시 후 누군가가 문고리를 잡고 흔들었고, 그는 예삿일이 아님을 직감했다. 그는 문밖의 인물이 사라질 때까지 집 안에 숨죽이고 있었다. 이후 확인한 CCTV엔 성인 남자 네 명이 자신의 집으로 올라오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집 밖으로 나가기가 두려워졌고 불안장애가 생겼다. C는 흐느끼며 말했다. "사람을 믿지 못하겠어요. 이 일이 해결된다 하더라도 ‘과연 내가 이 세상에 섞여서 살아갈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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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배경

A와 B 무리는 수년째 갈등을 지속하고 있었다. A는 한때 B의 상급자였는데, B는 과거 A가 ‘갑질’을 일삼았다며 지속적으로 언론에 폭로했다. 언론사 입장에선 갑질은 언제나 구미가 당기는 소재다. 힘을 가진 자가 악인이고 힘없는 자는 선하다는 이분법. 권력을 비판하는 언론은 왠지 모르게 정의로워 보인다. 해당 제보는 실제 모 방송사에서 단독보도됐다.


당시 A는 B가 제기한 의혹 대부분이 허위사실이라고 언론에 적극 반론했다. B는 과거 자신들이 몸담고 있던 집단에서 돈을 횡령해왔는데, A에게 발각되자 사건을 덮으려 자신을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미 선악 관계를 정해놓은 언론은 A의 해명을 한두 줄 반영하는 게 전부였다. 기계적인 균형. A와 C는 자신들을 향해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B가 나쁜 놈이라는 확신이 더더욱 들었다.


#기사 작성

인터뷰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와 기사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글은 쭉쭉 써졌다. 마지막으로 B 일당의 반론을 듣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문자를 보냈다. 몇 시간 뒤 전화가 왔다. 그런데 B와 대화를 하면 할수록 B가 나쁜 놈이라는 확신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B는주거침입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돈을 횡령한 건 자신들이 아니라 오히려 A라고 주장했다. 실제 B는 해당 의혹을 수사기관 등 여러 곳에 고발해왔다.


그야말로 진실게임이었다. 돈을 누가 빼돌렸는 지는 수사기관이 밝혀줄 것이지만, 까놓고 보면 둘 다 나쁜 놈일 가능성도 있었다. A가 자신이 나서는 대신 직원과 C를 내세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본인이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사를 이대로 써도 되는지 갈등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데스크에게 물었다. 데스크는 "선악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거지? 그렇지만 누군가 명백한 잘못을 저질렀다면 우린 그 잘못을 지적할 뿐인 거야. 어느 한 쪽 편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고 답했다.


뉴스 시작 전, B로부터 '공정한 보도를 부탁드립니다'는 문자가 왔다. 공정한 보도가 무엇일까. 자신들 편을 들면 공정한 보도가 되는 건가. 아니면 양쪽을 모두 비판해야 공정한 보도가 되는 것일까. 어쨌든 B의 반론은 충분히 반영했다. B는 보도 자체가 나가지 않길 바랐겠지만. 그날 밤 기사는 나갔고, 며칠 뒤 A씨 측에서 문자가 왔다. '그동안 답답했던 마음에 위로가 됐다'며. 칭찬은 그 자체로 듣기 나쁘지 않지만, 마음은 자동차 매연을 들이킨 것처럼 더부룩해졌다. 과연 누가 착한 사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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