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현장에서 27화

죽음을 취재하다 명함이 찢겼다

by 정준영

"사람이 죽었는데 왜 기사를 쓰죠?"


남자는 분노에 치를 떨었다. 그는 내가 조심스럽게 건넨 명함을 갈기갈기 찢어 장례식장 로비 위에 흩뿌렸다. 나는 모멸감을 느꼈지만 드러낼 수 없었다. 떳떳하지 못한 감정이라 생각했다. 그곳은 한 전직 법관의 장례식장이었다. 망인은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그의 생을 멈춰 세웠다. 그의 죽음에 대해 추측이 난무했다.


명함을 찢은 사람은 죽은 이의 직장 동료였다. 유족들도 내게 "그러고 싶으세요?"라면서 경멸의 눈길을 보냈다.


아니,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기자들은 누군가의 죽음을 취재하기 위해 자주 장례식장에 던져진다.


언젠가 '미투' 의혹을 받던 한 인물이 자택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됐다. 타살 의심 정황이 없어 경찰은 극단 선택으로 결론짓고 사건을 마무리했다. 생을 마감함으로써 자신을 둘러싼 논란을 마무리 지은 것이다.


속보가 뜨자마자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빈소엔 다른 언론사보다도 내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 드나드는 조문객은 드물었다. 멀찍이서 상황을 지켜보려 했지만 장례식장 구조가 특이해 빈소 바로 앞에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취재용 ENG 카메라를 대동한 채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유족이 나와 말을 걸었다. 그는 유족에 대한 예의를 지켜달라고 했다. 흥미 위주의 보도를 하지 말라고 했다. 그는 "고인은 언론이 죽인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기만 했다. 그는 말하는 중간 감정이 복받쳤는지 울음을 삼키기도 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언론이 가해자다. 사람을 해친 사람이 장례식장까지 와서 취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포털의 '많이 읽은 뉴스' 1위부터 3위까지가 그 남성에 대한 기사였다. 언론은 속보부터 상보, 종합, 종합2보까지 내며 관련 의혹을 모두 정리했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인간에 의해 심판받길 거부했다. 그렇다면 그의 죽음은 여전히 국민의 알 권리가 적용되는 영역일까.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장례식장 취재를 숱하게 겪는다고 해서 답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2017년 12월엔 충북의 한 스포츠센터에서 일어난 화재를 취재했다. 필로티 구조의 주차장에서 난 불이 삽시간에 건물 전체를 뒤덮었다. 화마는 수십 명의 생명과 함께 타올랐다.


나는 부상자들이 입원한 병원과 사망자들의 빈소를 찾아다녔다. 밤낮으로 상주하면서 유족들과 접촉하기 위해 애썼다. 죽은 이가 생전에 어떤 이었고, 사고 현장엔 어떤 사연으로 가있었고, 얼마나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했으며, 유족들은 얼마나 슬퍼하는지 등의 기사를 쓰기 위해서다. 사회적으로 큰 인명사고가 났을 때 우리가 흔히 포털에서 접하는 기사들이다.


이때도 기자들은 불청객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온전히 슬퍼하기도 벅찬데, 기자가 웬 말인가. 게다가 기자들은 유족들이 슬픈 얘기를 들려주길 바란다.


그래서 기자들은 늘 거부당하고 쫓겨났지만, 데스크들은 어떻게든 유족의 마음을 열어보라고 떠민다. 이때 기자들의 대응은 각양각색이다. 마음이 여려 유족에게 말 한마디 못 거는 이도 있는가 하면, 조의금을 내고 빈소에 들어가 절을 올려 유족과 마주하는 기자도 있다.


하지만 장례식장 취재를 하고파서 하는 기자는 아무도 없다. 그런 기사에 어떤 공익성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있다 한들 누군가의 죽음을 추모하고 슬픔을 위로하는 공간을 억지로 취재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이젠 취재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익상 필요한 경우에만 장례식 취재를 한정하고, 유족이 명시적으로 거부한 때엔 취재를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기자들도 무리한 취재를 강요받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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