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현장에서 29화

법원의, 그리고 언론의 재판

by 정준영
수사 단계, 혹은 그 전부터 대서특필한 사건이라면
과연 그 보도들이 실체적 진실에 부합했는지
끊임없이 검증하는 것이 기자의 역할


일주일 전 경찰서에서 법원으로 출입처를 옮겼다. 취재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경찰팀에선 주로 현장을 돌아다니며 사건의 단초를 캤다. 하지만 법원은 다소 정적이다. 기자들은 재판에 들어가 검사와 변호사의 공방을 속기하고 재판장이 내리는 판결을 받아쳐 기사로 내보낸다.


아무 기반도 없는 곳에 오니 다시 수습이 된 기분이다. 일단 법원 공보관을 찾아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가 핫한 이슈인 '탈북 어민 북송' 사건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은 박지원 전 국정원장과 서훈 전 국정원장을 상대로 수사를 펼쳤다.


"검찰팀이 핫(hot)해질 것 같아요. 원래도 수사기관이라서 기자들이 많이 붙어있었지만 앞으로 더더욱."


그런데 공보판사가 한 마디 한다. "저는 그게 잘못됐다고 봐요."


그의 주장은 이러했다. 수사단계에서 대서특필된 사건이라도 막상 법정에서 보면 실체적 진실보다 부풀려진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는 "일단 재판 단계로 오면 언론의 관심이 떨어져 기사가 나오지 않는다"며 "판결에 상관없이 피고인은 이미 죄인으로 낙인 찍힌다"라고 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27조
①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④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


대한민국 국민은 헌법에 의해 재판받을 권리를 가지고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판결 전 언론보도는 헌법상 재판받을 권리와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는 것일까? 꼭 그렇진 않다.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도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다.


하나의 권리가 다른 권리를 일방적으로 침해할 수 없지만, 모든 권리가 조화해야 하는 비교형량의 문제다. 판결 확정 전이라도 공익상 대중에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면 보도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흉악범죄라든지 공인에 대한 의혹이라든지. 이 같은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개인을 특정할 수 없도록 익명화한다. 반대로 국민의 알 권리나 언론의 자유보다 개인의 권리가 우선시 되는 사안이라면 보도해선 안 된다.


하지만 공보관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 수사 단계에선 소위 '단독'기사가 우수수 쏟아진다. 기자들은 어떻게든 단독 취재를 하기 위해 현장을 누비고 수사기관에서 정보를 캐내려 노력한다. 사소한 팩트 하나하나가 단독기사로 변신한다. 데스크부터 일선 기자까지 취재에 혈안이 된다.


반면 사건이 재판에 넘겨지고부터는 기사량이 줄어든다. 첫 공판기일에서 검사가 공소장을 읽을 때, 선고기일에서 재판장이 주문을 읽을 때 빼곤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단독기사를 위한 취재경쟁이 붙지도 않는다. 일부 성범죄 사건이나 영장실질심사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재판이 공개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열린 정보다.


물론 기사량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일 뿐 기자들은 매 기일마다 재판을 방청하며 내용을 기록하고, 중요한 팩트가 나오면 기사를 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성해야 할 부분은 있다. 수사 단계, 혹은 그 전부터 대서특필한 사건이라면 과연 그 보도들이 실체적 진실에 부합했는지 끊임없이 검증하는 것이 기자 역할일 텐데, 지금껏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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