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평택항으로 들어온 여객선에서 중국인 관광객, 유커 100여 명이 줄지어 내렸다. 지난 2017년 사드 배치를 이유로 중단된 중국인 단체관광이 6년 5개월 만에 재개된 것이다.
어린 아들과 여행 온 재중교포 배 모 씨는 "서울이나 부산, 제주도처럼 좋은 데를 모두 다녀보고 싶다"며 한국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번 여객선엔 여행객뿐만 아니라 보따리상도 함께 탔다. 한 중국상인은 "그동안 코로나19 때문에 한국에 못 와서 아쉬웠는데 앞으로 자주 올 예정이다"며 각오를 다졌다.
코로나19 이후 몰락의 길을 걷던 서울 명동 거리도 오래간만에 활기를 띠었다. 상점들은 저마다 중국어 안내판을 내걸고, 중국어에 능통한 손님을 뽑으며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유커가 본격적으로 들어오면 국내 경제에 활력이 돈다.
우선 여행수지가 개선된다. 여행수지란 내국인이 해외에 나가서 쓴 돈과 외국인이 국내에 들어와 쓴 돈의 차이를 말한다. 올 상반기 여행수지 적자 규모는 58억3000만달러(약 7조8000억원)다.
그간의 여행수지 적자는 중국인 단체관광 중단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016년 807만명에 달했던 방한 중국인은 지난해엔 22만명으로 급락했다. 3%도 안 되는 수준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55만명으로 눈에 띄게 회복됐지만 아직 턱없이 모자라다.
한국은행 계산에 따르면 중국인 관광객 100만명이 증가할 때마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08% 포인트(p) 상승한다. 현재 다수 기관에서 추정하는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은 1.4% 안팎이다. 중국인 관광객이 2016년의 절반 수준인 400만명까지만 회복되더라도 GDP가 0.3% p 정도는 오를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럼 중국이 돌연 관광 빗장을 푼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경제적 이유가 꼽힌다. 현재 중국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은 상태다. 오죽하면 중국의 지난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3%로 2년 5개월 만에 하락세를 기록했다. 물가가 오르지 않고 떨어지다니… 디플레이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것이다. 그래서 한국이나 일본 등 인접국 단체 관광을 재개해 항공, 여행 산업 활성화를 꾀하는 거다.
중국 경제 회복은 우리나라에게도 중요한 이슈다. 좋든 싫든 우리나라 경제는 중국과 긴밀하게 얽혀있다. GDP의 40%를 수출에 의존하고 있고 그중에서도 대중 수출 비중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중국 내수가 위축되면서 우리나라 무역수지는 맥을 못 추고 있다. 수출은 10개월 넘게 마이너스길만 걷고 있다. 단적인 예로 중국에서 스마트폰 소비가 줄었더니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박살 나지 않았는가.
외교적 의미도 적지 않다. 이번 조치는 한미일 정상회의(8월 18일) 약 열흘 전에 발표됐다. 삼국이 결속력을 다지는 상황에서, 한중 관계를 안 좋게 끌고 가봐야 중국의 대외 전략에 득 될 것이 없을 거란 판단일 것이다. 유커의 귀환이 한중일 협의체 부활의 마중물이 될 거란 분석도 나온다.
아무쪼록 이번 중국 단체관광 재개를 통해 한국이 경제·외교적인 실리를 취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