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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영 Mar 20. 2022

*스포 주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과생의 독후감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스포일러 주의※


대학교 2학년 때쯤 천체물리학에 빠졌다. 우연히 대학 친구 집 책장에서 <E=mc²>란 책을 꺼내 읽고 우주의 신비에 매료됐다. 완독 하자마자 서점에 달려가 잡지 <뉴턴> 아인슈타인 특집호를 모조리 사서 읽었다. 지구에서든 우주에서든 적용되는 물리학 법칙은 똑같다. 하지만 우주에선 지구적 스케일로는 확인할 수 없는 갖가지 현상들이 벌어진다. 그게 매력이었다.


예컨대, 빛의 속도는 30만km/s로 1초에 지구 7바퀴 반을 돌 수 있는 빠르기다. 그런데 1초에 지구 한 바퀴를 돌든 7바퀴 반을 돌든 인간의 눈엔 똑같이 ‘찰나’ 일뿐이다. 하지만 우주적 스케일에선 얘기가 달라진다. 지구에서 쏜 빛이 약 48억km 떨어진 명왕성까지 도달하는 데엔 4시간30분이 걸린다. 그 사이 빛은 지구 둘레를 12만1500번 돌 수 있다.


또 우린 빛이 직진한다고 배웠다. 그러나 태양처럼 중력이 큰 물체 주변에선 시공간이 일그러지고, 빛은 그 공간을 따라 휜다. 개기일식 때 태양 주변으로 관측되는 별 가운데 일부는 태양 바로 뒤에 있는 천체다. 원래대로라면 태양에 가려져야 하지만, 공간을 따라 휜 빛이 우리 눈에 들어와 보이게 되는 것이다. 푹신한 침대 매트리스 가운데에 무거운 볼링공을 올려놓으면 그 자리가 푹 들어간다. 그 상태에서 작은 구슬을 침대 한 쪽 끝에서 반대편을 향해 직선으로 굴리는 상상을 해보자. 구슬의 경로는 움푹 들어간 매트리스의 곡면을 타고 어느정도 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은 중력에 따라 다른 속도로 흐른다.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 한 우주인이 ‘밀러’라는 행성에서 3시간 탐험하는 동안 지구에선 23시간이 지나 있다. 블랙홀 중심을 통과하면서는 51년이 지나게 된다. 내가 우주여행을 한다고 상상해보자. 여정을 끝마치고 지구로 돌아오니 친구들은 백발의 노인이 되어 갤럭시S72 모델을 쓰고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

 

우주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현실에 대한 상식이 모조리 깨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나는 그 짜릿함을 좇아 ‘초끈이론(Superstring theory)’에 대한 책까지 사 읽었다. '4차원'이 '시간축'이라는 것까진 알겠는데, 그럼 5차원은 또 뭔가? 그런데 11차원까지 존재할 수 있다고? 상상력에 과부하가 걸려 뇌가 비명을 지른다.


그런데 우주를 공부하면 즐거우면서도 허무해진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일어나는 온갖 위대하고 신비스러운 일에 비하면 인간의 삶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 인간이 어떤 권력을 지니고 있다 한들 우주의 섭리에 미칠 수 있는가.


어린 밀러가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라고 묻자 그의 아버지는 "의미는 없어!"라고 답했다. 아버지는 "지구에게 넌 개미 한 마리보다 덜 중요한 존재라고도 할 수 있지"라고도 말한다. 나는 밀러의 아버지를 공감할 수 있다.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거지. 거기엔 행성들이 있고, 그 너머엔 더 많은 태양계가 있어…


우주의 입장에선 인간이란 지구의 파멸을 앞당기는 생명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근데 또 생각해보면, 애초에 지구가 우주에 있어 어떤 의미란 말인가. 백사장의 모래 알갱이 하나 정도 의미쯤은 되려나.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순수한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은 절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류는 목적이나 의도 같은 것 없이 진행되는 눈먼 진화과정의 산물이다. 우리의 행동은 뭔가 신성한 우주적 계획의 일부가 아니다. 내일 아침 지구라는 행성이 터져버린다 해도 우주는 아마 보통때와 다름없이 운행될 것이다"라고 표현기도 했다.


 이런 생각에 이르고서부터 삶의 태도가 겸허해졌다. 조금은 느슨하고 여유롭게 인생을 살 수 있는 태도를 길렀다고나 할까. 허무주의자까진 아니다. 그래도 난 아직 사는 게 재밌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저자 룰루 밀러 또한 과학을 통해 인생에 대한 통찰을 얻는다. 그는 ‘어류는 단일종(種)이 아니다’는 사실을 통해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우리가 ‘물고기’라고 통칭해온 수중생물들이 사실은 다 같은 종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으면서,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려는 시도가 무의미한 일임을 느낀 것이다.


그는 이러한 깨달음을 자신의 인생에 비추어 본다. 그의 아내가 “당신의 섹슈얼리티를 존중해”라고 말하자 밀러는 “양성애자. 두 가지 성. 둘. 그건 내가 싫어하는 단어였다. 그건 어쩐지 환원하는 동시에 비난하는 말처럼 느껴졌다”라고 서술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았고, 자연을 범주화하려는 인간의 시도는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성 정체성은 규정될 수 있는 것인가?


이 통찰을 통해 밀러는 아이템 하나를 얻게 된다. '물고기 모양의 해골 열쇠'. 바로 '세계의 규칙들이라는 격자를 부수고 더 거침없는 곳으로 들어가게 해 주는' 아이템이다. 밀러는 더 이상 '총이 주는 해방'을 좇지 않고 '하늘에서 다이아몬드 비가 내리며 모든 민들레가 가능성으로 진동하는, 저 창밖, 격자가 없는 곳'을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기대한 만큼의 책이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출판사가 책에 둘러놓은 띠지엔 “책의 모양을 한 작은 경이”라는 리뷰 문구가 적혀 있다. 이를 읽고 책을 산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고 여기저기서 호평이 쏟아졌다. 저자가 과학 기자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밀러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생과 ‘어류’가 단일종으로 구성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고 무언가를 느꼈다면, 밀러의 개인적인 경험으로서 존중할 수 있다. 하지만 어류가 단일종이 아니라는 점은 현재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이다. 우린 고래가 바다에 살지만 인간처럼 새끼를 임신하는 포유류라고 배웠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가면 ‘종속과목강문계’를 줄줄 외며 계통수를 배운다.      


저자도 책에 서술하고 있다. “1980년대에 분류학자들이 타당한 생물 범주로서 ‘어류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라고. 그렇다.  과학계에 어류 단일종이라 주장은 찾아보기 힘들다. 과학도 귀납법적인 탐구 과정을 통해 계속 지식이 무너지고 재정립되면서 진보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미 책을 읽기 전 어류가 단일종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독자로서는 책의 반전 포인트에서 ‘경이’를 느끼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밀러는 "내가 물고기를 포기할 때 나는 과학 자체에도 오류가 있음을 깨닫는다"라고 썼는데, 이 책이 40년 전에 나왔다면 어땠을까. 개인적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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