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준영 Mar 16. 2022

E=mc²그리고 인간 실존

이과생의 독후감 - <E=mc²>, 데이비드 보더니스

"이 이퀄 엠 씨 스퀘어"

 

한국사람, 그중에서도 연배가 좀 있다면 ‘엠씨스퀘어’라는 학습 보조기구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해당 공식과 기계는 별 상관이 없다.

   

공식을 요약하자면 에너지와 질량은 서로 전환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오른쪽 변에 빛의 속도(c)의 제곱이 곱해진다. 빛의 속도는 약 300,000,000m/s. 1초에 3억 미터를 이동할 수 있는 빠르기다. 음속으로 따지면 90만 마하(Mach)에 해당한다. 따라서 질량 변화가 작더라도 c²이 곱해지면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태양은 E=mc² 그 자체다. 수소원자 4개가 핵융합을 통해 헬륨이 되는 과정에서 빛과 열을 발산한다. 질량 1짜리 수소 원자 4개가 더해지면 총질량은 4가 될 것 같지만 실제론 3.993로 측정된다. 감소한 질량은 에너지로 발산된다. 매초 400만 톤의 수소가 핵융합하면서 내는 빛과 열 덕분에 식물은 광합성으로 유기물을 생산하고, 동물은 식물을 섭취함으로써 영양분을 얻는다.


불행스럽게도 인간이 이 공식을 이용해 가장 먼저 개발한 물건은 원자폭탄이다. 질량 235 우라늄에 중성자를 쏘면 질량 92 크립톤과 질량 141 바륨으로 쪼개지고, 중성자 2~3개와 에너지 200MeV가 나온다. 방출되는 중성자들은 중수(heavy water)를 통과하면서 다른 우라늄과 폭발적인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우리는 이 반응의 결과를 제2차 세계대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목도했다.

  

그 외 핵추진 잠수함과 화재 탐지기, 비상등, PET(양전자 방출 단층 촬영), C14를 이용한 연대 측정에도 E=mc² 원리가 적용된다. 인류는 이 공식을 발견해냄으로써 번영의 길을 갈 수도, 파멸의 지름길을 걸을 수도 있게 됐다.


과학자들은 그저 위대하기만 할까

     

이 책은 E=mc²이 탄생하기까지 필요했던 과학적인 이론과 그것을 발견한 과학자의 인생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어떤 과학자가 어떤 시대상에서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연구 활동을 했는지, 그들의 어두운 면까지도 조명한다.     


앙투안 로랑 라부아지에는 극도로 정밀한 저울을 사용해 ‘질량 보존의 법칙’을 발견했다. 물질은 형태가 변할 수 있으나 존재 자체가 생겨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증명했다. 이 발견은 1700년대 가장 중요한 과학적 성취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1768년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 회원 자격을 얻었고, 루이 16세로부터 보조금과 훈장을 받았다.


다만 그에게 시대정신은 부족했는지 모르겠다. 라부아지에는 아카데미 회원이 된 해에 세금 징수 조합에 참여해 징세 청부업자가 되었다. 그리고 담배와 술의 밀수를 막기 위해 파리를 성벽으로 둘러싸고 통행세를 거두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세금은 더 많이 걷혔지만 그만큼 라부아지에에 대한 민중의 분노 또한 커졌다. 결국 그는 프랑스 대혁명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독일은 경쟁적으로 원자폭탄을 개발했다. 위에서 설명했듯 우라늄 핵에 중성자를 쏘아 폭발을 일으키려면 일정 조건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자연 상태의 우라늄 광산은 이미 오래전에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을 것이다.


핵심은 중수(D₂O)다. 일반적인 수소의 질량은 1이다. 그런데 자연에는 질량 2짜리 수소도 존재한다. 이런 수소로 이뤄진 물이 중수다. 엔리코 페르미는 중수를 매개로 중성자의 속도를 낮추면 우라늄 핵과 충돌할 가능성이 높아짐을 알아냈다.


불확정성원리양자역학 연구로 193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독일 과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아인슈타인 이후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로 일컬어지지만, 1939년 독일 나치 핵무기 국에 자원해 원자폭탄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하이젠베르크는 중수를 확보하기 위해 노르웨이 베모르크에 있는 휘드로 화학공단을 접수했다. 한 달 10kg에 불과하던 중수 생산량은 4500kg까지 증가됐다.     


영국은 독일의 원자폭탄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이 공장을 폭파시키기로 했다. 30명의 공수부대가 야간 작전에 투입됐다. 그런데 강한 눈보라 때문에 글라이더가 추락하고 말았다. 일부는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부대원들도 독일 군에 잡혀 총살되거나 고문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영국은 두 번째 공습을 결정했다. 그만큼 원자폭탄 개발을 저지해야 할 필요성이 컸기 때문이다. 2차 작전엔 공수부대원 대신 9명의 노르웨이인 자원자들이 크로스컨트리용 스키로 공장에 침투했다. 대원들은 공장의 정문으로 침투하는 대신 공장 직원들을 포섭했다.


직원들은 공장에 대한 애사심이 전혀 없었다. 한 기술자가 공장에서 잘 이용하지 않는 케이블 수송관을 일러줬다. 대원들은 수송관을 통해 공장으로 침투했고,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10여분 동안 폭발물을 설치하는 데 성공했다. 새벽 1시쯤, 공장 창문 안으로 짧은 섬광이 비치고 곧 '쿵'하고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중수가 공장 배출구에서 쏟아져 나왔다.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대원들은 스키를 타고 유유히 사라졌다.


하지만 독일은 공장을 재정비해 대량의 중수를 생산해냈다. 결국 영국은 중수를 실은 여객선을 호수 위에서 폭파시키기로 했다. 하지만 그 배에는 독일군뿐만 아니라 일반인 등 53명이 타고 있었다. "E=mc² 때문에 물리학자들은 소름 끼치는 도덕적 흥정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결국 원자폭탄으로 인한 대규모 살상을 막아야 한다는 ‘대의’ 아래 12명 이상이 배와 함께 호수 밑으로 가라앉았다. 무엇이 옳은 것일까.


'외로운 천재' 아인슈타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스위스 베른의 특허국 3급 직원이었다. 아인슈타인은 독일 라이프히치 대학 물리학과를 6점 만점에 4.96점으로 졸업했지만, 아인슈타인의 짓궂은 성격을 곱게 보지 않던 교수가 취직이 어려울 만큼 불리한 추천서를 썼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판에 박힌 학습과 교육방식을 경멸했다고 전해진다.     


1904년 그는 2급 직원으로 승급을 신청했지만 누락됐다. 이때도 상사의 평가가 영향을 미쳤다. 그의 경제적 형편은 더 어려워졌다. 당시 아인슈타인은 26세였다. 그간 가까스로 몇 개의 물리학 논문을 발표했지만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했다.      


특허국에서 퇴근할 즈음이면 베른에 하나밖에 없는 과학 도서관은 문을 닫은 뒤였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자투리 시간에 사무실 책상 서랍에서 종이를 꺼내 갈겨쓰는 식으로 연구했다. 그는 그 서랍을 ‘이론 물리학과’라고 불렀다.      


그러던 1905년의 어느 날, 아인슈타인은 대여섯 주 만에 38장의 논문 초안을 완성하고 곧바로 3장의 보충 논문을 썼다. E=mc²의 탄생이었다.      


역사상 위대한 과학자들의 출신은 다양하다. 라부아지에처럼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등 교육을 충분히 받은 경우가 있는가 하면, 마이클 패러데이처럼 중등 교육도 못 마친 제본공 출신이었다. 또 에밀리 뒤 샤틀레처럼 여성이어서, 수브라마냔 찬드라세카르처럼 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당한 성과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아인슈타인은 어떤 유형이라고 규정해야 할까. 어쨌든 그는 당시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없었고 가정 형편도 넉넉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이론 물리학과'에서 세상을 관통하는 위대한 이론을 발견해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을 보면서 ‘어떠한 조건에서도 노력하면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교훈을 얻긴 쉽지 않아 보인다. 애초에 범인(凡人)이 책상머리에만 앉아서 특수상대성 이론을 발견해낼 수 있단 말인가. 그야말로 '외로운 천재'가 아닌지.

E=mc², 그리고 인간 실존


2008년의 어느 날 친한 대학 동기 집 책꽂이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그때 당시만 해도 나는 독서를 거의 하지 않았다. 글을 끄적거리기는 좋아했지만, 남이 쓴 글을 읽는 건 매우 따분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유난히 친구네 집에서 할 게 없었다. 친구가 화장실에 간 사이 시간이나 때울 겸 제목이 제일 특이한 책을 집어 들었다.


한 번 펼친 책을 다시 닫기가 힘들었다.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원소(물론 원소도 양자와 중성자, 쿼크 등등으로 구분되지만)에 일어나는, 정말 더더더 사소하고 하찮을 수도 있는 변화가 태양 에너지의 실체고 원자폭탄의 원리라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어린 시절 동네 만화방 이후로 남에게 책을 빌린 적은 처음이었다. 집으로 돌아가 단숨에 읽어냈다. 그러자 아인슈타인과 그의 업적을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서점으로 달려가 <뉴턴> 잡지 가운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만을 다룬 특집호를 모조리 구매했다.


'사건의 지평선'을 넘은 느낌이었다. 중력으로 일그러진 공간과, 그 공간에서 휘어지는 빛. 시간조차 정지시켜버리는 블랙홀. 눈엔 보이지 않지만 우주를 채우고 있는 암흑물질.  시간여행의 가능성. 나의 기존 지식으로는 제대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우주의 신비에 흠뻑 빠져버렸다.


그러자 인간 실존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누군가 인간을 '점 위의 점 위의 점'이라고 표현했다. 또 다른 이는 '우주먼지'라고도 부른다. 내 생각은 달랐다. 우주적 차원에서 보면 인간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존재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어떠한 권력도 능력도 우주의 섭리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그러면 우리는 왜 사는가.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지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면 편한 게 좋고 돈이 많았으면 좋겠고 불행보단 행복감을 가졌으면 한다. 그런데 그런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같은 질문에 도달한 과학자 가운데 상당수가 신의 존재를 믿게 된다. 학부생 시절 한 생화학과 교수님은 "태초에 RNA(유전물질)가 있었다"며 진화론을 가르치면서도, 그것 조차 신의 섭리라고 설명했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무(無)'에서 우주와 같은 고차원 공간이 만들어진 것일까.


책을 읽은 지 벌써 15년이 다 돼가지만 나는 아직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가끔씩 삶이 힘들 때 우주를 생각한다. 우주를 상상하면 조금은 초연해질 수 있고 조금은 즐거워질 수 있다. 그런데  다음엔?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내서 살아가야 하는 걸? 누군가는 나름의 답을 냈을지. 조만간 니체의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추천 정도 : ★★★★★


※추천 이유 : 과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어도 E=mc²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공식을 이해할 수 있는 책. 이 책을 읽고 나면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이 궁금해질 것. 이제 당신도 우주 덕후가 된다.


※추천 도서 :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브라이언 그린의 <엘러건트 유니버스> 그리고 미치오 카쿠의 <초공간>. 인간의 지적 상상력을 초월하는 우주의 신비를 경험하고 싶다면 꼭 읽어볼 것!

매거진의 이전글 초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