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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영 Mar 12. 2022

초연

이과생의 독후감 - <성공을 부르는 일곱 가지 영적 법칙>, 디펙 초프라

#2021년 11월 8일 씀


 스물넷, 순수한 호기심으로 토론 학회에 가입했다. 난제를 만나 며칠을 끙끙거리다가도 끝내 탄탄한 논리를 만들어냈을 때의 희열, 실전의 팽팽한 긴장감, 토론 뒤 관객의 날 선 평가. 모든 것이 매력적이었다. 누군가는 스펙이 목적이었지만, 토론은 내게 그저 ‘즐거움’ 그뿐이었다.     


 밤낮으로 토론에 탐닉하다 보니 제법 실력이 붙었다. 처음 나간 대회에서 은상을, 두 번째 대회에선 아예 우승을 했다. 토론에 승패가 어디 있겠느냐만 인정받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내친김에 모 방송사의 토론배틀에도 참가했다. 결과는 준우승이었지만 MVP에 선정되는 등 꽤나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후 심심찮게 방송 섭외가 들어왔다. 지상파 토론 프로그램의 대학생 패널로 용돈을 쏠쏠히 벌었다. 한 대선 후보의 TV 토론에 나간 적도 있다. 그 토론은 온 방송사에서 생중계됐고, 길거리에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생겼다. 교양 예능 프로그램 고정 출연 섭외도 몇 번 있었다(성사되진 않았다).     


 언젠가부터 ‘에고’가 형성됐다. 남들보다 똑똑하다는 우월감, 대단한 사람이 될 거라는 자만심. 토론배틀 MVP에게 주어졌던 PD 채용 특전도, 대치동 입시 컨설턴트 제의도 거절했다. 모두 내 그릇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법조인 논객이 되고 싶었다. 사회 유명인사가 되고 싶었다. 변리사 자격증을 딴 뒤 로스쿨에 가고자 마음먹었다.     


 계획은 틀어졌다. 5년 수험생활은 실패로 끝났다. 수험생이던 나는 항상 번뇌에 사로잡혀 살았다. 특출 난 점 없다고 생각했던 지인이 잘 나간다는 소식을 들으면 질투심에 공부를 그르쳤다. 남이 잘 되는 건 본인 능력보다는 배경 때문이라고 여겼다.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분노했다. 세상 모든 일을 ‘분별’하며 지냈다.       


 하지만 실패가 거듭되면서 깨닫는 바가 있었다. 내 ‘달란트’는 법조인에 있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합격자 발표 날, 성적을 확인한 나는 조용히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예전처럼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몇 시간 뒤 침대에서 나와 노트북을 켜고 지원서를 썼다. 운 좋게도 나는 해가 바뀌기 전에 기자가 됐다.     


 과거 내가 토론을 잘할 수 있었던 건 순수함 때문이었다. 돈이나 명예, 취업을 위해서가 아닌 ‘사랑의 동기’로써 최소 노력으로 순수 잠재력을 끌어냈던 것이다. 하지만 욕망에 이끌려 ‘안전’이 보장되는 법조인을 목표하고부터는 초연함을 잃었다. ‘까르마’를 바꿔야겠다는 용기를 갖기까지 5년이 필요했다.      


 늦지 않은 나이에 취직을 하고 새로운 목표를 가질 수 있어 감사했다. 형식에 차이가 있을 뿐 기자도 논객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를 등에 업고 권력을 감시한다. 오히려 직업 덕에 수없이 많은 현장을 누비며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겸손하려 노력했다. 거들먹거리지도, 사익을 위해 펜을 들지도 않았다. 자신의 ‘참나(순수의식)’와 능력을 발굴하고 인류에 봉사할 수 있는 길은 어디에나 있었다.     


 의도와 소망을 순수 잠재력의 토양에 심었으니 불확실성 안에서 꽃피길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불확실성이 주는 불안감이 없지는 않다. 일상에 치이다 보면 과거의 교훈을 망각하곤 한다.


다만 초조하진 않다. 주어진 소명에 따라 역할을 하다 보면 개화할 것이다. 현재는 5년 전의 내가 갈구했던 미래다. 다음 5년은 지금보다 더 행복하고 충만할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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