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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영 May 01. 2022

개인적인, 모두의 체험

이과생의 독후감 - <개인적인 체험> 오에 겐자부로

『개인적인 체험』의 주인공은 '버드'라는 별명을 지닌 남자다. 신혼부부이자 아내의 출산이 임박한 예비 아빠다. 동시에 아프리카에서의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이율배반적인 철 없는 청년이다. 그는 가족을 '감옥'에 비유했다. 결혼 후 자신은 '뚜껑 열린 감옥'에 갇힌 것이며, 태어날 아이가 그 뚜껑을 쾅하고 덮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인 버드는 날지 못하는 새다.


지난 2015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늬들은 결혼하지 마라..... 진심이다...>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의미심장한 제목과 달리 본문엔 아무 내용이 없었다. 한 네티즌이 "왜"라고 덧글을 달자 글쓴이는 "그냥 하지 마 이 XXXX야"라고 이유 없이 욕을 내질렀다. 왜 결혼을 하면 안 되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1도 없었지만, 기혼 남성들의 공감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후 이 글은 결혼에 대한 남성의 인식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밈(meme)'으로 끊임없이 쓰이고 있다. 버드가 가족을 감옥에 비유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극 중 버드가 이 글을 봤다면 열이면 열 격하게 공감했을 것이다. 대신 버드는 과거 자신의 리즈 시절을 추억하며 오락실에서 악력 기계에 도전하고, '용을 수놓은 점퍼를 맞춰 입은 젊은이들'에게 덤벼든다. 물론 결과는 처참했지만.


그런데 버드에겐 보다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자신의 아들이 기형아로 태어나 식물인간이 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산부인과 의사는 아이의 뇌가 두개골 밖으로 흘러나왔다고 묘사했다. 그때부터 버드는 아이를 살릴 것인지 죽일 것인지 갈등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후자를 택한다. 제대로 된 분유를 주지 않는 방법으로 아이를 서서히 죽게 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곤 대학교 때 사귀었던 히미코의 집으로 도망친다.


아이가 태어나면 새로운 인생이 열린다고들 표현한다. 부모의 생활은 '귀여운 작은 폭군'에 온전히 맞춰진다. 부모들은 육아에 온몸이 파김치가 되면서도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가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태어나면 어떨까. 평생 아이를 뒷바라지하며 살아야 한다면? 『개인적인 체험』이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카프카가 아버지에게 쓴 편지에 있는 말이지만,

아이에 대해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찾아오는 아기를 맞아들이는 것뿐이랍니다."


『개인적인 체험』은 오에 겐자부로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그의 장남 히카리는 태어나자마자 두개골 이상으로 수술을 받았다. 그는 에필로그에서 "절망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다고 하는 정경을 어디선가 읽은 적은 있었다"라고 당시 심정을 드러낸다. 작품을 옮긴 서은혜 전주대 교수의 해설에 따르면 그는 장남을 낳고 난 후 만취한 채 바다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하루 종일 동네 언덕을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 남자가 한 명 있었다. 그는 동네 누구보다도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았다. 그의 뒤를 키 작은 노인이 늘 따라다녔다. 그의 어머니였을 것이다. 그는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중년이 돼서도 언덕을 뛰어다녔다. 학교에서 생명과학을 공부하며 그가 '다운증후군' 환자라는 것을 알게 됐다. 유전질환이기 때문에 치료는 불가능하다.


그 남자를 키운 어머니의 인생이 어땠을지 상상하기 쉽지 않다. 낙태가 죄가 되는지 여부를 떠나, 만약 아이가 기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카프카의 말처럼 그저 아기를 온전히 맞아들일 수 있을까. 지난 3월 2일 경기 수원과 시흥에선 부모가 발달장애인 자녀를 살해하는 사건이 각각 발생했다. 한 부모는 '다음 생에는 좋은 부모를 만나거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하지만 부모는 자신의 생을 끊지 못했다). 비극적인 일이다.


작가는 자신의 아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버드처럼, 아이가 장애를 가진 채 평생을 살아갈 바에 죽는게 낫다고 생각하진 않았을지. 하지만 그는 이후로도 아들과 살아갔고 '당시처럼 온몸으로 절망한 자신을 발견한 일은 두 번 다시 없었다'고 회상한다. 그리고 아들과의 공생을 주제 삼아 작가로서의 생애를 결정했다. 작가가 『개인적인 체험』을 자신이 쓴 최초의 '청춘 소설'이라고 설명하는 이유다.


소설의 끝부분에서 버드는 도망치기를 멈추고 아이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몸 깊은 곳에서 '실로 견고하고 거대한 무엇인가가 벌떡 일어'서서 한때 버드의 육체와 정신을 지배했던 위스키를 토해 내게 만들었다. 버드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대학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마침내 '기만의 마지막 올무에서 벗어'나 '버드라는 어린애 같은 별명'이 어울리지 않는 남자가 된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워지면서도 작가의 솔직한 표현에 나의 일처럼 몰입된다.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나는 어떤 부모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리고 세상 모든 부모에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이 소설은 오에 겐자부로의 개인적인 체험에서 출발한 작품이지만, 결혼을 하고자 하는 그리고 부모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다가올지 모르는 '모두의 체험'일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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