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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영 Mar 26. 2023

얼룩말은 왜 타고 다닐 수 없을까

'세로' 탈출 사건으로 보는 얼룩말 길들이기의 역사

반항기(?) 낭랑한 얼룩말 세로(2)/서울시설공단 유튜브 '서시공TV' 화면 갈무리


며칠 전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2살짜리 얼룩말 '세로'가 나무 울타리를 부수고 탈출해 서울 광진구 일대를 활보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경찰과 소방, 공원 사육사들의 협동작전 끝에 세로는 3시간 만에 큰 사고 없이 공원으로 돌아가게 됐다.


세로가 탈출 작전을 벌인 이유에 대해 공원 사육사들은 엄마 아빠의 죽음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오다가 갑자기 홀로 남게 된 상실감에 사로잡혀 반항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린이대공원을 관리하는 서울시설공단이 2개월 전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보면 세로의 반항기(?) 어린 모습이 영상으로 올라와 있다. 세로는 사육사들이 주는 맛있는 간식도 마다하고 다른 동물과 싸움도 벌인다. 뒤늦게 알려진 세로의 사연에 세상 사람들은 가슴 아파했다.


그런데 얼룩말 세로의 공원 탈출이 오로지 부모를 잃은 슬픔 때문만일까? 그렇다면 세로는 사육사들과는 왜 친밀감을 쌓지 못했을까? 애초에 얼룩말의 야생성을 공원에 가둬두기엔 역부족이었던 건 아닐까?


단적으로, 인류는 말을 길들여서 이동수단으로 활용했는데 왜 얼룩말은 타고 다니지 못했을까?


『총,균,쇠』재레드 다이아몬드, 문학사상 / 직접 촬영


유전학으로도 바꿀 수 없는 얼룩말의 불 같은 성깔


세계적 석학 재레드 다이아몬드 박사의 명저 『총, 균, 쇠』(문학사상)에 따르면 20세기 전까지 인류가 육지에 서식하는 대형 야생 초식성 포유류 148종 가운데 음식, 가죽, 털, 육상 운송, 탈것, 쟁기 끄는 힘 등을 얻기 위해 가축화에 성공한 동물은 단 14종에 불과하다.


14종은 양, 염소, 소, 돼지, 말, 단봉낙타, 쌍봉낙타, 라마와 알파카, 당나귀, 순록, 물소, 야크, 발리소, 가얄(인도들소가 야생 조상) 등이다. 말은 있지만 얼룩말은 없다. 그는 가축화 실패 요인으로 6가지를 꼽는데, 얼룩말은 그중에서도 '골치 아픈 성격' 범주에 해당한다.


일례로 얼룩말은 인간을 꽉 물고 악착같이 놓지 않는 위험한 습관이 있다.


19세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선 짐을 옮길 때나 마차를 끌 때 얼룩말을 이용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얼룩말이 나이가 들면서 걷잡을 수 없이 난폭해졌기 때문이다. 얼룩말을 사로잡는 것 자체도 어려웠다. 얼룩말들은 밧줄 올가미가 날아오는 걸 빤히 지켜보다가 고개를 홱 꺾어 번번이 빠져나갔다고 한다.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기르던 얼룩말에게 팔을 공격당한 남성/ABC News 유튜브 화면 갈무리


다이아몬드 박사에 따르면 미국의 동물원에선 호랑이보다 얼룩말 때문에 부상을 당하는 관리자들이 더 많다.


실제로 올해 3월 12일 미국 오하이오주의 한 시골 마을에선 한 남성이 반려동물로 기르던 얼룩말에게 팔을 물어뜯긴 사건이 있었다. 흥분한 얼룩말은 출동한 경찰차의 운전석 문까지 들이받으며 구조를 어렵게 만들었고, 결국 경찰은 산탄총으로 얼룩말의 숨통을 끊어야 했다.


알고보니 오하이오주엔 얼룩말 소유를 금지하는 법이 없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난폭한 야생성 때문에 얼룩말을 직접 기르는 일은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인류는 20세기 들어 유전학까지 동원해 가며 얼룩말 등 6종의 대형 포유류를 가축화하려 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첨단 과학으로도 끝내 인간과 얼룩말은 친구가 되지 못한 것이다. 애초에 유전자 조작으로 성격을 바꿀 수 있었다면 노벨상을 받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다이아몬드 박사는 인간이 얼룩말을 길들이려는 시도를 두고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 쌍을 짝지으려는 결혼 상담원 노릇"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결국 세로는 부모를 잃은 슬픔에 더해, 동물원에 결코 가둘 수 없는 그의 야생성을 해방하기 위해 탈출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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